지난 봄 그 땡볕에 뽀뇨를 안고 올레길을 걸었던 기억을 잊은 걸까?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이번엔 한라산 등반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뽀뇨를 데리고 윗세오름 정도는 갈수 있겠지?

세 살아이를 데리고 세계여행도 하는데 뭐 대수람'

하고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대절버스는 오고  버스를 탄후 1시간도 안되어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출발지에 도착했다.

 

'과연 잘 오를 수 있을까? 분명 안아달라고 할텐데 그땐 어떻게 할까?'

한라산 기념관을 도는 내내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딱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

함께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말을 주고 받는다.

 

"세살 아이가 과연 오늘 코스를 소화할 수 있을까? 힘들거 같은데",

"우리 조카가 세 살 때 아빠랑 같이 등산했어. 우리 내기할까?"

그들의 내기처럼 내 마음도 된다, 안된다가 씨름을 하다가

역시나  '어떻게 되겠지'로 귀결되었다.

그래, 가는데 까지 가보자.

평지에서 아빠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 드디어 오르막.

절대 안아서 단 1미터도 움직이지 않아야한다는 원칙을 세운 채

손만 붙잡고 한 계단 두 계단 올랐다.

이미 일행은 보이지 않고 내려오는 한 아줌마가 툭하고 말을 던진다.

"니가 고생이다. 엄마아빠, 잘못 만나서"

부모가 애 고생시킨다는 얘기,

결국 면전에 대고 욕한건데 듣고 보니 참 재밌다.

한번의 핀잔을 제외하고는 올라가며 만나는 대다수 아줌마, 아저씨들은

"대단하다", "용감하다"류의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 말이 자기에게 향하는줄 아는지 뽀뇨도 내려오는 아저씨, 아줌마의 "파이팅"에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난리가 났다.

 

중간에 만난 한 이모는 뽀뇨의 다른 쪽 손을 붙잡고 10여미터를 신나게 올라갔다.

양손을 잡힌 뽀뇨는 어찌나 신이 났는지

"오리, 꽥꽥"하며 올라갔고 아빠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하는 방법'만이 살 길이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30분 정도 올랐을까,

'고래'도 산을 오르느라 지쳐만 갔다.

 

'힘들어하는지' 혹여 '아픈 곳은 없는지' 세심히 살피며 함께 오르는 아빠도,

뽀뇨가 안아들라는 말을 자주 하게되자 힘이 빠지고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우리를 살린 것은 산에서 만난 여러 명의 아저씨가 건네준 초코바.

초코에 땅콩, 카라멜까지 섞인 초코바는 뽀뇨에게 환상적인 맛이었을 터.

아빠가 한입 뺏어먹었다가 사방이 떠나가도록 울고

우리는 다시 기분 전환을 하고는 등산에 집중하게 되었다.

작년 사라오름 등산이후 이렇다 할 산행을 하지 않은 아빠여서 힘들 듯도 한데

뽀뇨의 템포에 맞추다보니 전혀 힘이 들지는 않았다.

세발자욱 올랐다 쉬고, 뽀뇨 한번 안았다 내려놓고 또 쉬고,

까마귀로 시선을 끌며 한 발짝 오르고 고양이 찾으러 가자며 또 한 발짝 오르고..

 

사실 힘들기보다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뽀뇨가 못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아니 이미 올라 올대로 올라왔는데 내려가는 건 어떻게 하지'였다.

마음이 급해지니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동산까지 얼마나 남았나요"를 묻게 되고

그들은 "20분 정도만 가면 되요", "아직 2/3가 남았어요" 제각각이었다.

 

갈수록 막막해지는 상황,

어떻게든 하늘은 보고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20미터 정도는 뽀뇨를 안고

뛰었다. 간신히 헉헉 거리며 도착한 곳이 바로 '사재비동산'.

900미터가 넘는 출발지에서 어느덧 1400미터를 넘어 평지에 다다른 것이다.

 

목적지 중간이지만 애시당초 포기하고,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지만

하늘이라도 봤으니 김밥 먹으며 쉴 공간이 필요했다. 

마침 발견한 나무데크가 깔린 넓은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만난 아줌마들은

뽀뇨가 자신들을 '할머니'라 부르는 걸 보고 한바탕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뽀뇨 표정도 많이 풀리고 뱃속에 밥이 들어가니 이제 내려갈 용기가 생긴다.

무모한 도전에 용기까지 잃은 상황이었지만 밥심이 우리를 살렸다.

이제 이 힘으로 한달음에 내려가는거다.

어떻게 안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뽀뇨를 기저귀 가방에 앉히는 방법이었다.

 "뽀뇨, 조심해서 잘 잡아"하고는 정신없이 뛰어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 수 십번을 쉬었던 길을

한달음에 내려왔다.

내려오는 도중에 가방을 잘 붙잡으라고 한 얘기를

"아빠, 조심해서 잘 잡아요"라고 뽀뇨가 따라하자,

한 등산객이 "효녀났네"라고 치켜세운다. 기운이 불끈 솟았다.

 

"와, 대단한 아빠다"

 

올라갈 때 뽀뇨가 들었던 칭찬을 이제는 아빠가 들으며 뛰어내려오는데

얼굴은 술을 마신듯 화끈거리고 장단지는 출렁였다.

 

뽀뇨 평생에 들은 "대단하다", "용감하다" 얘기를 하루만에 듣게 된 날.

아빠는 "엄마아빠 잘못 만나서"로 시작해서 "대단한 아빠"로 마무리한 하루였다.

 

그리고 다음날 뭉쳐서 오리걸음을 걸어야 하는 아빠 다리를 주무르며,

아내는 "뽀뇨는 멀쩡한데 자기는 왜 그래요".라고 한다.

입이 있으되 할 말이 없어 오늘 글로 남겨둔다.     

 

<등산이 바로 이맛이야.. 라는 표정ㅋ>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뽀뇨의 달리기가 시작됩니다.

등산4.jpg

 

<기분 무지 좋아 조릿대 수풀에 빠져주는 센스. 웃는 표정 작렬해주시고 흐흐>

등산3.jpg

 

<이렇게 한달음에 내려갔다... 사실 어느정도 내려가서는 뽀뇨를 내려놓고 싶었다. 근데 뽀뇨는 아빠의 가방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ㅠㅠ>

등산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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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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