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민규.jpg » 설때 한복 입은 민지 민규 모습.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 연휴가 끝난 밤, 오후 늦게 커피를 마셔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페이스북도 들여다보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으면서 새벽까지 앉아 있었다. 새벽 5시에 잠들어 아침에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베이비시터(나는 ‘이모님’이라 부른다)께서 내 옆에 살포시 눕는다.
 
“민지 엄마~ 오늘 출근해?”
“에고고. 당연히 출근하죠~ 이모는. 새삼스럽게. 이제 일어나아겠네요… 밤에 잠이 안와 새벽에 잠들었어요.”
“나 민지 엄마한테 할 말 있는데…”
 

“나 민지 엄마한테 할 말 있는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들이 “나 할 말 있는데…”라고 말하는 것은 일을 그만두겠다거나 평소 불만 사항을 얘기하거나, 월급을 올려달라는 뜻이다. 정신을 차리고 이모와 함께 거실로 나갔는데, 이모께서 준비했다는 듯 차분하게 말씀하신다.
 

“나, 이번 달까지만 일해야 할 것 같아. 나이도 들어서 몸도 안좋은데 딸 옆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남편도 없이 혼자 사는데 아프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딸이 결혼해서 오산쪽에 집을 얻었는데 주말에 왔다갔다하기에도 너무 멀고, 딸과 사위도 그쪽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가려고. 없는 살림에 딸이랑 내가 두 집 살림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민지 엄마 사람 구하라고 미리 말하는거야. 2월 달 안에 사람 차분하게 구해서 내가 민규 2~3일 적응시켜주면 우리 민규 금방 적응할거야. 나도 민규 계속 키우고 싶지만 영영 함께 살 것도 아니고, 나도 딸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데 딸 말 잘 들어야지.”
 

이모님의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듯 멍했다. ‘새해 벽두부터 웬 핵폭탄이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나 잠시 3초동안 망설였다. 그러나 첫째를 돌봐주시던 이모님께서 내게 이별 통보를 하실 때와는 사뭇 내가 느끼는 감정도 달랐다. 3초 정도 침묵을 한 뒤 나는 감정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아, 이모. 당황스럽네요. 이번 달 말까지는 별로 안남았는데…”
“에이. 충분하지 뭘. 보름 정도 기간 남았으면 사람 충분히 구할 수 있어.”
“민규 어린이집 안보내려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민규 어린이집 보내고 적응할 때까지만 계시면 안 될까요? 이모 혹시 다른 집 가기로 하셨어요? 민규가 이모와 완전 찰떡 궁합이라 전 이모랑 계속 함께 했으면 했는데…”
“3월3일 딸이 결혼하니 결혼식 준비도 해야하고 2월까지만 시간이 있을 것 같아. 다른 집 구한 것은 아니고 그동안 나도 열심히 일했고 일 구해질 때까지 좀 쉬고 싶기도 하고. 민규는 순하고 애가 너무 착하니까 누구든 들어와도 사랑 받을거야.”
 

이제까지 여러 명의 시터를 경험해 본 결과, 이렇게 이미 마음이 정리된 분에게는 아무리 매달려도 소용없다. 설사 매달려서 좀 더 일하게 된다해도 결국 문제가 터지거나 불만이 생겨 언젠가는 떠나고 서로 감정만 안좋아질 수 있다. 오히려 내 경험상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상처가 덜하다. 서로에게.  
 

“그래요. 이모한테는 이모 딸도 중요하고, 가까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해요. 두 집 살림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이모 다니는 교회에 괜찮으신 분 있으시면 소개나 해주세요. 그래도 우리 이모가 민규 9개월 때 들어와서 30개월까지 계신 것이니 정말 오랫동안 잘 키워주셨네요. 이모가 잘 키워놓으셨으니 앞으로도 잘 적응할 거예요. 아무튼 이모 감사드려요. 그리고 주변에 좋은 분 있으면 소개나 해주세요. ”
 

이모와 나는 2월 중 새 시터를 구하기로 결정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들 아침밥을 먹이고 출근 준비를 했다. 이모와 함께 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민규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한 뒤에 가시면 좋으련만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고맙고, 그래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빼꼼이 고개를 들었다. 착하고 성실하고 강하고 긍정적인 현 이모님께서 우리 둘째를 잘 키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이모님과 크게 언성 높인 적 없고, 얼굴 붉힌 적 없고, 서로를 신뢰하며 잘 지내왔다. 사실 이모께서 첫째보다 둘째를 너무 편애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도 했지만, 둘째는 그런 이모 덕분에 밝고 씩씩하게 잘 컸다.  너무 일찍 이별하지 않고, 그래도 어느정도 커서 이렇게 이별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이른 나이지만, 민규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연습을 할 기회라 생각하자 생각했다. 어차피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별을 겪는가. 너무 애달퍼하지도 말고, 이런 내 상황을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민규가 어떤 이모님을 만나든 잘 적응할 것이라 믿고 나는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자 마음 먹었다. 나는 지금 민규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입장이다. 나는 엄마니까.
 

원래 인생은 이렇게 예측불가능하고 좀 살만하다 싶으면 문제가 터지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인가보다. 첫째때는 이모님들이 속 썩일 땐 울고불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 난리 부르스를 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깜깜했다. 그런데 시련과 고통과 문제도 자꾸 부딪히고 겪다보니 나도 이제는 제법 맷집이 생겼나보다. 의외로 이번에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새로운 시터를 구하기 위해 소개소에 전화하고 일사천리로 문제해결에 나섰다. 나의 최고의 장점인 긍정의 힘을 발휘해 이런 시련이 더 좋은 시터를 만나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해야겠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주변에 적극 문제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바로 오늘밤부터 면접을 봐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해나가면 또 좋은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으며 지금 내 앞에 놓인 상황을 잘 해결해나가야겠다.
아자아자 화이팅! 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힘내!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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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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