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3956.JPG » 사우나 아줌마 부대의 고만고만한 아기들. 함께 모이니 즐겁기만 하다.

  

 늦은 밤 사우나를 좋아한다. 평일이면 더 좋다. 평일 밤 사우나는 조용하다. 탕 안에도 혼자 앉아 있을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뜨끈한 습식 사우나에 들어앉으면 사방이 조용하니, 평화다. 어깨에 힘을 빼고 모래시계 쏟아져내리듯 주저앉으면 딱딱하게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를 떨쳐버리는 기분이다. 처녀 적에도, 노키드 유부녀 시절에도 평일 밤 사우나는 사랑이었다. 


 그런 평화의 시간을 깨는 적은 ‘아줌마 부대’다. 적게는 두세 명부터 많게는 대여섯 명까지 벌거벗고 둘러앉아 커피나 식혜통을 옆에 두고 사우나가 떠나가라 수다를 떠는 이들 말이다. 뜨거운 사우나를 어찌나 잘 참는지 좀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법도 없다. 너무 더우면 사우나 바닥에 찬물을 끼얹고 문을 열어놓는 신공까지 발휘하니 시끄럽고 뜨거우면 내가 자리를 떠야 한다. 그런 아줌마 부대를 만나면 그날 사우나비가 아까울 정도로 짜증이 났었다.

 

 아아 그러니까 나는, 2013년 1월16일 수요일 밤 11시에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 줄 몰랐던 거다. 그날 밤, 나는 ○○마트 뒤편 24시간 찜질방의 습식 사우나 안에 동네 아줌마 3명과 둘러앉아 목욕탕이 떠나가라 수다를 떨었다. 솔이 엄마와 유나 엄마 옆에는 커피와 식혜통도 있었다. 현소 엄마 뒤쪽에 누워 있던 한 여성이 우리가 와르르 하고 웃자 화르륵 신경질이 난 눈으로 우리를 째려봤다. 눈이 마주쳤지만 피했다. 그의 소중한 시간을 우리가 방해하는 게 분명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애 낳고 처음 목욕탕 온 거예요.” 2012년 아이를 낳은 애엄마 4명이 의기투합해서 이날 밤, 잠자는 아기를 남편에게 맡긴 뒤 사우나에 집합했다. 목욕탕 주인에게 안 해도 될 설명까지 하며 우리는 너무도 신이 났다. 동네에서 이제 막 얼굴을 익힌 사이였던 우리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만난 지 3번 만에 벗다니, 이건 신랑보다도 빠르네!” 우리는 목욕탕이 떠나가라 웃었다.

 

 아기를 재우고도 그 곁을 떠날 수 없어 늘 답답한 밤을 보내던 애엄마들이다. 젖 먹이고 안고 어르느라 어깨·손목·허리 안 아픈 데가 없는데도 애가 울까봐 샤워 한 번 맘 편히 하지 못했던 이들이다. 그런 우리가 땀이 뜨끈하게 나는 사우나에 둘러앉았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남편 흉도 보고 서로 몸매 비교도 하고 이 사우나 식혜가 맛없다고 흉도 보려니 목소리는 커져만 간다.

 

 그날 목욕탕 안에 계시던, 혼자 와서 조용히 몸 좀 풀고 가려 하셨던 분들께 죄송하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후 우리는 또다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사우나로 달려갈,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늦은 밤 사우나는 이제 내게 전혀 다른 의미다. 아아 겪어봐야 그제야 상대를 이해하는 이 모자란 인간이여! 그동안 눈 흘겼던 아줌마 부대에게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아줌마 부대 파이팅, 기다려라 사우나야!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임지선 기자
<한겨레21> 기획편집팀, 사회팀, <한겨레> 사회부 24시팀을 거쳐 현재 오피니언넷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 생각 없다”더니 한 눈에 반한 남자와 폭풍열애 5개월만에 결혼. 온갖 닭살 행각으로 “우리사랑 변치않아” 자랑하더니만 신혼여행부터 극렬 부부싸움 돌입. 남다른 철학이라도 있는양 “우리부부는 아이 없이 살 것”이라더니 결혼 5년만에 덜컥 임신. 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메일 : sun21@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sunny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96868/a41/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725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이눔아 어머니도 짜장면을 좋아한다구! imagefile [14] 김은형 2013-02-20 21200
72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여기까지만 imagefile [2] 홍창욱 2013-02-20 18656
72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종일 싸우고, 종일 놀고.. 세 아이와 보낸 겨울 방학 imagefile [4] 신순화 2013-02-19 20308
722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목소리도 아이에겐 스킨쉽이 된다-옛이야기 들려주기 imagefile [7] 윤영희 2013-02-18 20948
721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21편]시어머님 안색이 안좋아보여요 imagefile [12] 지호엄마 2013-02-15 32793
720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30년 된 아빠의 장난감 imagefile [9] 윤영희 2013-02-14 24784
719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설 직후 핵폭탄 날린 베이비시터, 그래도… imagefile [13] 양선아 2013-02-13 20702
71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씨월드 11년차, 며느리도 진화한다!! imagefile [2] 신순화 2013-02-13 23591
717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이해받는 부모가 되고 싶다 imagefile 김외현 2013-02-12 18145
» [임지선 기자의 곤란해도 괜찮아] “만난 지 3번 만에 벗다니…” 사우나 습격사건 imagefile [2] 임지선 2013-02-08 21164
71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7천 원짜리 바지를 처음 산 날 imagefile [2] 홍창욱 2013-02-07 15448
714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디테일한 생활멜로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imagefile 윤영희 2013-02-05 18176
71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그리움'을 알아버린 만 네살^^ imagefile [1] 윤영희 2013-02-05 15964
71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짜장로드'를 아시나요? imagefile [4] 신순화 2013-02-05 22594
711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울어도 괜찮아 imagefile [4] 김은형 2013-01-31 21529
710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40대 엄마가 30대 엄마에게 imagefile [6] 윤영희 2013-01-29 25240
70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설거지 데이트'로 아들과 사이 좋아졌다! imagefile [10] 신순화 2013-01-29 24999
708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혹시…넷째 임신? 악몽 같았던 ‘50시간’ imagefile [7] 김미영 2013-01-29 42492
707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20편] 살다보니 만 오년이 되었구나~ imagefile [4] 지호엄마 2013-01-25 30598
706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아이의 기억에 리셋버튼은 없다 imagefile [2] 김외현 2013-01-24 17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