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도쿄를 여행하시게 되면 꼭 추천해 드리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도쿄 관광 안내책자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유명한 하라주꾸와 오모떼산도 근처,

패션과 문화와 젊은이들이 넘치는 이 번화가에

일본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꽤 유명한 어린이전문서점이 있다는 것, 들어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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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어린이전문서점, 크레용하우스>>

 

몇 십년의 역사를 지닌 이 서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쿄의 명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지하 1층은 유기농레스토랑과 유기농야채와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가 있고

지상 1층은 어린이전문서점

2층은 장난감전문매장

3층은 여성전문서점과 유기농화장품과 소품들을 파는 가게로 이루어져 있어요.

어린이서점이라 부모와 아이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편견을 깨고

데이트나온 젊은이들, 지하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 잔을 하며 식사를 즐기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잡았지요.

 

1층 서점은 1년내내 책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가운데 큰 테이블에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부모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어린이서점이 전집 상담 혹은 전집 할인판매 전문점 역할을 한다는 얘길 듣고

무척 놀랐어요. 아직도 아이들의 책을 전집으로 사는 문화가 남아있나요??

 

한국과 일본의 어린이책 문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책을 전집으로 구입하지 않는다. 는 게 아닐지요.

물론 요즘은 좋은 기획의 전집도 무척 다양하고 많겠지만

아이들에게 책이란 양보다 질입니다. 몇 권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단 한권이라도 깊이있게

충분히 즐긴 후에 그 다음 관심을 자극해 줄 수 있는 책으로 한 권씩 넘어가는 거죠.

이 <크레용하우스>에서는 모든 책이 단행본으로 판매되고

몇 권의 전집묶음이라 해도 싸게 파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여러 책을 함께 고르고

몇 권씩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사고, 2층에 장난감을 구경하다가

지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케잌도 먹고 그렇게 쉬면서 서점나들이를 마치지요.

(이곳 케잌은 아주머니들이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소박하지만 맛이 좋아요^^)

 

그런데 다 좋은데, 저는 아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좀 힘들고 아쉬운 점이 느껴지곤 했어요.

어른보다 아이들은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어른이 더 천천히 책과 가게를 둘러보고 싶어할 때, 이미 싫증을 내거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는 것, 레스토랑이 야외테이블도 있어 식사도 하고 잠깐 쉬기도 하지만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잠깐 나가 거닐 수 있는 마당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땅값이 비싼 도쿄 한복판에서 그런 생각은 사치... 좋은 서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늘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었죠.

 

그런 이야기를 지난 주에 소개한 부산의 <책과아이들>을 운영하는 선배와 한국에

다니러 갈 때마다 자주 나누곤 했습니다. 저희집 아이들은 일본에서도 아파트에 살고

한국에 가도 할머니집이 아파트라 그런 답답함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책과아이들이 마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아...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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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대앞, 어린이서점 <책과아이들> 입구>>

 

마당이 있고, 북카페가 있고 서점, 갤러리가 있는 공간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곳을 가까이 둔

부산 시민들이 부럽기도 하고 ... 그런데,

제가 멀어도 아이들과 전철을 몇 번 타고 다녔던 도쿄의 <크레용하우스>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죠. 그게 뭘까... 했는데, 크레용하우스는 어린이서점이란

이름처럼 식당, 장난감가게 그 어느 곳보다 서점에 사람이 바글바글한데  이곳은 서점 공간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였어요.

한국은 책을 이제 할인이 많이 되는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탓인지

서점에서 천천히 아이들과 책을 고르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사실은 서점보다는 우리 사는 동네에

자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어린이도서관이 있으면 더 좋겠죠.

예전 일본에서 어린이책 운동이 활발할 때   <우체통 수만큼 많은 도서관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어린이도서관의 중요성을 인식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어린 아이들일수록

멀고 근사한 곳이 아닌, 작고 소박하지만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 이야기와 책을 통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 그러다 지치면 편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곳 -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이런 시간과 공간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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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마당에서 독서캠프를 즐기는 아이들>>

 

근사한 쇼핑몰이나 아시아최대, 세계최고 규모의 시설을 짓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주변의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켜나가고 그 안에 담을 문화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봤음 합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서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이쁜 도서관이 있고, 새로 나온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박한 책방이 있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 있고,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원과 작은 숲이 있다면

도시의 일상과 삶도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 거 같아요.

90년대부터 한창 번성한 한국의 어린이서점은 전국에 150개까지 생겼다가

지금은 20개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크고 유명했던 서점뿐 아니라 동네책방, 동네수퍼마켓도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는데

1년에 한 번, 겨우 갈까말까 하는 저의 부산친정나들이 때마다

마당이 있는 이 서점이 없어지진 않을까 늘 조마조마하네요.

도쿄의 크레용하우스는 마당도 없고 닭도 토끼도 기러기도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용으로 늘 생기있어 보이고, 몇 십년에 걸쳐 이곳을 도쿄의 명소로 자리잡게 한

시민들의 힘이 무척 부러워보였습니다. 서점에서 가까운 전철역에는 이 서점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가 있을 정도니까요.

한국에서도 <구름빵>이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화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어린이 책이 좀 더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권정생>의 생가마을에 <강아지똥> 캐릭터가 그려진 마을버스가 달리고

유치원 버스에 그림책 캐릭터 그림이 그려지고 하면 아이들이 즐거워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정권과 함께

아이들의 문화도 함께 성장하기를

좋은 공간과 시설을 그냥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용해 생기를 불어넣는 시민의 역할과 힘도

기대해봅니다. 좋은 것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지만, 아직 세상의 숨은 골목골목에는

'제대로 된 한 부분'이 남아있다고 믿습니다.

크레용하우스와 책과아이들이 그런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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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책과아이들 서점, 마당에 핀 나팔꽃.. 저희집 마당에서 키우던 나팔꽃 씨앗이 저곳까지

날아가 꽃을 피웠답니다. 지금쯤 나팔꽃 가지를 모아 리스는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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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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