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캠핑은 임신 6개월 때였다. 그러니까 1년 전 가을, 10월이었다. 그때 우린 당분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오롯이 둘이서 텐트를 펼쳐놓고 앉아 함께 먹을 밥을 지었다. 임신 뒤 고기 굽는 냄새를 싫어하게 된 아내를 위해 남편은 소고기무국을 끓이고 무생채를 무쳤다.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앉아 있으니, 이제 곧 만삭이 되어 출산을 하게 되면 이런 둘만의 여유 있는 시간도 갖기 어렵겠지 싶어 아쉬움이 밀려왔다. 밤늦도록 둘이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너무 추워 덜덜 떨며 ‘이놈의 캠핑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하며 이불을 둘둘 말아 필사적으로 배만은, 뱃속의 ‘곤란이’만은 따뜻하게 해주려 노력했다.

 

그땐 몰랐다. 아기 낳고 백일 만에 몸이 근질근질해질 줄 말이다. 주말에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나날이 이어지자 남편은 애꿎은 캠핑 장비만 손질하며 동동거렸고, 나는 ‘백일 아기 캠핑 괜찮나요’ 등의 키워드를 슬며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고 오는 건 무리지만 당일치기라면 괜찮을 것 같아”라며 우리는 어느새 캠핑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곤란이는 백일 무렵부터 캠핑에 나섰다. 덥진 않으려나, 춥진 않으려나, 벌레 물리진 않으려나, 힘들어하진 않으려나 걱정에 걱정을 하고 나섰는데…!

 

야외에 자리 펴고 앉은 곤란이는 참으로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둘레둘레 나무도 보고 흙놀이하는 형아 누나도 보며 방글방글 웃었다. 무엇보다 화롯불과 모닥불을 보며 불꽃보다 환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텐트에서 젖 먹고 잠도 쿨쿨 잘 잤다.

 

135238258547_20121109.jpg

 

나도 신이 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동굴’ 같은 집에 갇혀 아기 얼굴만 보며 먹이고 먹고 재우고 자는 나였다. 젖 먹이고 새끼 보듬으며 짐승 같은 생활을 하는 내게 주말 캠핑은 그야말로 사람 냄새 나는 숨통 틔는 순간이었다. 외출이라고는 애 업고 동네 슈퍼마켓 다녀오는 것이 전부인 내게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 모두 감동이었다.

 

이번 가을,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제철 맞은 새우를 소금 깔아 구웠다.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나도 먹고 남편도 먹고 아기도 먹었다. 석양이 질 무렵에는 셋이서 산책을 했다. 텐트 안에서 젖 먹이는 사이 남편이 쪼르르 뛰어가 소리 없이 반짝이는 불빛을 내는 폭죽을 사왔다. 곤란이를 가슴에 안고 세 식구가 불꽃놀이를 했다. 아기가 까르르 웃었고, 우리는 가슴이 벅찼다.

 

곤란이가 오면, 아기가 생기면 더 불편해질 줄로만 알았다. 우리의 낭만과 자유와 여유가 사그라질 것만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셋은 예전보다 더욱 편안하고 신나고 즐겁다. 곤란이가 있어 캠핑 이 더욱 아름답다. 곧 아기가 걷고 뛰고 함께 밥까지 먹게 되면 캠핑이 더욱 풍요로워지겠지. 별을 보며 아기에게 말했다. “고맙다, 고마워. 늘 부족한 우리에게 와줘서.”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임지선 기자
<한겨레21> 기획편집팀, 사회팀, <한겨레> 사회부 24시팀을 거쳐 현재 오피니언넷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 생각 없다”더니 한 눈에 반한 남자와 폭풍열애 5개월만에 결혼. 온갖 닭살 행각으로 “우리사랑 변치않아” 자랑하더니만 신혼여행부터 극렬 부부싸움 돌입. 남다른 철학이라도 있는양 “우리부부는 아이 없이 살 것”이라더니 결혼 5년만에 덜컥 임신. 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메일 : sun21@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sunny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87563/ba5/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64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지브리의 어린이집, 에니메이션 성공보다 사원들의 복지가 우선 imagefile [8] 윤영희 2012-11-16 17657
64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깜빡했던 사후지급 육아휴직급여 오호라~ imagefile [5] 양선아 2012-11-15 20788
64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스트레스에는 갓구운 빵냄새가 효과적이라네요. imagefile [2] 윤영희 2012-11-15 15107
64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천사아빠는 밉상남편? imagefile [4] 홍창욱 2012-11-15 19722
641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이사 imagefile [5] 윤아저씨 2012-11-14 16577
64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 없는 2박 3일, 엄마만 신났다!! imagefile [2] 신순화 2012-11-14 25806
639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아들 둘…, 축복을 해달란 말이다! imagefile [10] 김외현 2012-11-13 21022
638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육아, 10년해도 여전히 힘들다.. [4] 윤영희 2012-11-13 15612
» [임지선 기자의 곤란해도 괜찮아] 아기와의 캠핑, 곤란하지 않아요 imagefile [1] 임지선 2012-11-09 23137
636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의 어린이집 이야기 imagefile 윤영희 2012-11-09 20846
63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노벨상 수상과 아이들의 과학교육 imagefile [8] 윤영희 2012-11-08 30056
63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막내 때문에 울고, 웃고... imagefile [6] 신순화 2012-11-07 20393
633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우리집 `강남 스타일' 배꼽이 떼굴떼굴 movie [11] 양선아 2012-11-06 17014
63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무엇이 아내를 춤추게 하는가 imagefile [8] 홍창욱 2012-11-06 16154
631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옷 한벌 갖춰입기 어려운 그대. 엄마라는 이름. imagefile [13] 전병희 2012-11-05 17256
630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전업맘과 워킹맘이 함께 육아모임을 만들다! imagefile [6] 윤영희 2012-11-04 18885
629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아파트의 공동부엌 이야기 imagefile [10] 윤영희 2012-11-03 30621
628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봄날은 간다? imagefile [1] 김외현 2012-11-01 24944
627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16편] 쌀쌀한 가을 날씨엔 뿌리채소로 유아반찬을~ imagefile [11] 지호엄마 2012-11-01 80317
626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의 육아는 아직 아날로그 감성시대 imagefile [3] 윤영희 2012-10-31 2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