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
추석 지나고 채일주일이 안되어 시어머니의 환갑이 있었답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선 친척분들을 모시고, 밥 한끼 드시고 싶다고 하셨지요.
모임 전날밤 8시. 어머님께 전화가 왔어요.
예쁘게 화장하고, 잘 꾸며입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미역국과 불고기라도 좀 해서 갖다드릴까 생각하던 찰나에
잘 꾸며입고 오라는 어머님 말씀.
순간 뿔난 며느리는 '어머님~저 옷 없어요~~~아무 것도 없어요~~' 라고 말씀드렸고,
어머님은 그럼 이번 기회에 옷 한벌 해 입고 오라고 말씀하셨지요.
어머님 전화중에 동서에게 날라오는 카톡 메시지^^;
정말이지. 결혼이후로 정장 한 벌, 구두 한켤레 변변한거 사입은 적 없는지라
대략 난감이었던 두 며느리들.
신세한탄만 한시간을 했습니다.
다음날. 저는 어찌하셨을까요?
동네 유치원 엄마들의 힘을 빌어서 신데렐라 변신하듯, 완벽한 변신을 하고 갔어요.
전업주부이전에 전직 모델출신인 엄마의 화려한 메이크업 박스 출동!
햇님군 절친 어머니의 숨겨진 화장품과 구두, 옷이 쫘악 펼쳐졌습니다.
매일 아침. 추리닝이나 입고 민낯으로 만나던 우리들의 꾸밈용품을 보니
어찌나 재미있던지요..
아이들은 거실에 쫓겨나서 자기들끼리 노느라 바쁘고..
엄마들은 각종 화장품 구경하고, 화장하는 모습, 변신하는 모습에 재미있어하고..
정말 훈훈한 시간이었어요.
물론. 이렇게 동네 품앗이가 안 되었다면, 정말 암담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중요한 자리이긴 하지만, 몇 시간을 위해서 화장하고 머리한다고 돈 몇만원 쓰는건, 너무너무 아까운 아줌마가 되었으니까요.
평소에 화장이라도 좀 하고 다녔으면, 화장품이 있었으니 그걸로 자가수공업이 되겠지만. 색조화장을 위한 화장품들이 전무한 엄마로선, 대략 난감이었답니다.
* 화장하고 찍은 모자간 사진. 밤에 아이폰으로 찍은거라 화질은 좀 별로에요 ^^;
에피소드 2.
지난주 금요일. 햇님군 유치원에서 가을음악회가 열렸어요.
각 반 별로 노래 2곡만 부르기 때문에, 행사가 금방 끝난다고 하더라구요.
아이들이 힘들게 연습하는거 같지도 않고, 부담 없는 행사인가보다 생각했어요.
정말로 부담없이 민낯에 오리털 잠바 하나 걸치고 음악회 시작 10분전에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유치원에서 6시 50분까지 오라고 해서, 진짜 6시 50분까지 갔어요)
악! 이게 웬일일까요.
거의 대부분의 엄마들. 모두 정장에 철갑 화장을 하고, 꽃다발을 준비해왔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오셔서 행사장의 자리는 만석. 자리가 없어서 서있는 사람들이 잔뜩이었어요.
아이들도 하얀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꽃단장을 했더라구요.
유치원 안내문에 행사날 흰색 상의를 입고 오라는 글이 있었는데, 한참 전 이야기라 까먹었지요.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핸드폰메시지는 아이아빠가 받는데, 아이 아빠도 바빠서 흰색 옷을 준비해야한다는 사실은 까먹었어요.
하얀 옷들속에서 햇님군은 파란색 아디다스 추리닝을 걸치고 있었지요 ^^;
제 꼬라지는 둘째치고,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
다행히도 햇님군 절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망토를 빌려입혔어요.
* 아래 사진에 파란색 옷 의자에 걸쳐진거 보이시나요? 햇님군입니다 ^^;
# 일련의 사건들로 얻은 교훈
시어머니의 전화에 빈정상했던 못난 며느리. 아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었답니다.
동생 왈. "언니! 평소에 시댁갈때 막 입고 갔지? "
아. 아.
할 말을 잃었습니다.
명절맞이 농담중에 며느리들은 시댁에 갈때 예쁘게 꾸미고 가면 안된다던데..
하지만! 예쁘게 꾸미지 않는 며느리. 그것도 한계가 있나봅니다.
오죽하면 저의 시어머니께서 그런 전화를 하셨을까요?
유치원 부모참여수업 때 어떤 복장을 하고 가야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해줬던 햇님군.
덕분에 없는 옷 다 꺼내서 그나마 구색맞춰 유치원에 갔던 저.
음악회 가기전에도 차림을 어찌할까 고민하긴 했지만, 금방 끝나는 자리 부담없는 행사로 저 편하게 생각해버렸어요.
사실 꾸며야한다고 생각하면, 또 옷 걱정을 해야했거든요.
햇님군도 아무 생각없었으니 저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정작 음악회 현장에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저 또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는데 말이죠 ^^;
애 키우고 살림하다보면,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나'에게 최소한의 것도 챙겨주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먹을 것을 먹을 때도, 가장 예쁘고 좋은 부위를 아이에게 먼저 주고, 혹여 음식 모자랄까 아이 먹는거 지켜보며 조금씩 먹는 엄마.
애 옷 살때는 척척 사면서, 정작 내 옷 한벌은 안 사입고, 아이꺼 챙겨주느라 바쁜 엄마.
물가는 점점 오르고, 아이 클수록 들어가는 교육비는 많고.
줄일 구석을 찾으면, 결국 나에 대한 소비를 줄이는 것인데,
그것의 절정이 옷 한벌이 아닌가 싶어요.
그나마 직장생활을 하면, 전업주부보단 낫지않을까 싶지만
직장맘들의 형편도 그리 녹록치는 않은가봅니다.
비가 내리고나니 단풍도 많이 지고, 겨울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들! 옷 한벌 없으면, 우리 모두 한벌씩 지를까요? ^^
올 겨울. 내 안의 시린 가슴은 뭘로 채워야할지 고민해봐야할 것 같아요.
우리는.
엄마란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는.
아이 이전에 나를 위해 잘 살고 있는지.
질문해볼 시간
가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