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8_3.JPG » <내 아내의 모든 것> 한겨레 자료 사진.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 다녀왔다. 아이가 생기고부터는 1년에 한번 갈까말까다. 오랜만의 감수성 자극 기회에 나는 블록버스터를 바랐고, 아내는 콕 집어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자고 했다. ‘남의 아내의 모든 걸 내가 왜 봐야 해’라는 말을 애써 삼키고, 난 군말없이 아내를 따랐다.

요즘 뭇 기혼 여성들의 공감을 사며 입에 깨나 오르내리는 이 영화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입에 독설을 달고 사는 아내(정인·임수정)와 그런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 싫증이 난 남편(두현·이선균) 이야기다. 남편은 꿈에도 그리는 이혼을 유도하기 위해, 이웃에 사는 희대의 바람둥이(성기·류승룡)를 돈을 주고 고용한다. 영화는 이 바람둥이가 아내를 유혹하다가 되레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그리고 아내를 뺏길 것 같은 위기감에 남편이 아내의 매력을 재발견한다는 줄거리다.

남성들이 이 영화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잘 모르겠다. 대뜸 ‘아내가 임수정인데 왜 싫증이 나냐’는 엉뚱한 질문으로 영화를 깎아내릴 수도 있다. 하긴 요리를 잘 해서 날마다 나만을 위한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는 임수정이라면…헙!

그러나 이 영화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외로워서 독설을 내뱉고, 독설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떠나서 더 외로운 여인, 한 남자가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자주 함께할 수 없어서 외롭고, 집에서 살림하려니 딱히 소속한 집단도 없어 더 외로운 여인의 이야기다.

실제로도 많은 기혼 여성들이 외롭다. 결혼한 ‘아줌마’는 ‘아가씨’ 친구들과 예전처럼 자주 어울리지 못한다. 미혼의 친구들은 “너는 남편 있잖아”라며 잘 끼워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늘 바쁜 ‘남(의) 편’이다. 결국 외로움에 독설이 늘어 남편을 닦달하기도 하고, 그 탓에 남편과 소원해져 더한 외로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정인-두현 부부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을 하지만, 사실 아이가 생기면 여성의 외로움은 강도가 더하기 십상이다. 아이는 말도 통하지 않는데 요구사항만 가득하다. 아이는 걸핏하면 울고, 여성도 따라 울고 싶다. 임신·출산·수유로 몸도 마음도 힘들고, 망가진 몸매에 자신감도 잃는다. 아이는 축복이되, 인고의 시기를 전제로 한 축복이다. 남편은, 가사 분담과 육아 참여는 물론, 아내의 이 처절한 외로움에 대한 최우선의 조력자가 돼야 한다.

영화의 바람둥이를 보자. 사실 모든 여자가 좋아할 만한 남자다. 눈에 불을 켜고 아내의 매력을 찾아 칭찬한다. 항상 아내의 일상과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인다. 삶에는 늘 이벤트가 가득해서 아내는 항상 기쁘다. 섬세한 취향은 아내와 닮았고, 폭넓은 취미는 늘 아내에게 관심거리를 준다. 왠지 데자뷔가 느껴진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연애 시절의 나도 여자친구(였던 아내)에게 그런 남친이 돼주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이 바람둥이는 남편에게서 받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이란 파일이 있다. 남편이 아내 몰래 “진중권, 공지영, 나꼼수”로 시작해,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세세하게 적어서 바람둥이에게 넘긴 자료다. 바꿔 말하면, 역시나 아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남편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 영화 보면 어떻게 해야 여자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가 나온다며?” 나는 답했다. “그런가. 나한텐 한 번 얻은 마음을 어떻게 지키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2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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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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