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언제부터, 얼만큼의 용돈을 주어야 할까?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아루, 해람이가 아직 어리다는 생각에 막연히 먼 훗날의 일이라고만 여겼다.

 

아루에게 용돈을 주게 된 것은 지극히 충동적이었다.

 

‘해람이랑 맛있는 거 사 먹어.’
친정 식구들이 대천에 모여 며칠 놀고 헤어질 때 친정 엄마가 아루에게 만원짜리 한 장을 찔러 주셨다.
조카들도 모두 한 장씩 받았는데 그중에 성격 급한 녀석이 받자마자 가게로 달려가서 뭔가를 사 들고 왔다. 조잡한 장난감이 들어 있는 불량 식품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것을 유심히 보더니 돈이 생기자마자 사 온 것이다.
‘엄마, 할머니가 주신 돈 여깄어.’
하던 대로 내게 돈을 맡기던 아루가 저와 동갑인 조카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전까지는 아이들에게 돈이 생기면 내가 맡아 두었다가 통장에 입금을 해주곤 했다. 그러다가 슬쩍 내가 써 버리는 일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뭔가를 물려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아이들이 받은 돈엔 손대지 말자, 라고 생각하고 있다. ‘엄마, 내 돈 통장에 넣었어?’ 아루가 조금 큰 뒤로는 이렇게 챙기는 통에 그럴 수도 없었고.

 

‘아루야, 이 돈은 네가 갖고 있으면서 네 마음대로 한 번 써 볼래?’
조카 아이를 바라보던 아루의 표정을 살피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루에게 부모가 정한 테두리 바깥의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다. 원래 부모가 엄격히 통제해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애롭게 허용해주고 그러는 거 아닌가. 할머니가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하셨으니 해람이랑 의논해서 마음껏 써 봐라, 해 본 것이다.
아루의 표정에 환한 웃음과 한 줌의 긴장이 서렸다.

 

‘그 돈으로 뭐 할거야?’
‘아이스크림 사 먹어야지!’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당연하다는 듯 아루가 말했다.
우리집에서 공식적으로 아이스크림이란 내가 과즙을 얼려주거나 조금 부지런 떨어 생크림에 과일잼 넣어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오시는 할머니가 사주시는 하겐다즈 한 통이다.
가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다른 가족과 여행을 같이 갈 때 이른바 ‘슈퍼에 파는 아이스크림’이 허용되는데 아루가 말하는 아이스크림이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돼지바, 알껌바, 죠스바, 한 번 먹어 본 것은 이름이며 색깔, 모양까지 마음에 새겨두는 듯, 가끔 뜬금없이 제가 먹어본 것들을 자랑스럽게 내게 설명해주곤 한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겠다는 생각에 들떠있는 아이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에선 내가 잘한 건지, 걱정도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엔 용돈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직접 쓰게 하지 않은 데는 아이들이 돈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최소한 겉으로는 돈 밝히는 것을 낮추어 보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누가 봐도 돈이 훨씬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더 이상 돈은, 순수한 이상에 다다랐을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해주는 들러리가 아니다. 노골적으로 부자 되고, 대박 나라고 외치는 사회, 인생 최고의 꿈이 돈 많이 벌어 펑펑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 살려면 돈에 대해서 잘 알고 잘 쓰는 훈련도 필요할 것이다. 솔직히 아이들이 우리보다는 조금 더 셈에 밝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돈에 관해서라면 좌린과 나는 한심할 정도다. 결혼 한지 십 년이 넘었지만, 남편 월급이 얼마인지 모른다. 해마다 연초에 연봉 협상을 하고 나서 내게 보고를 하지만 대략 어느 정도라는 감만 남기고 정확한 숫자는 금세 잊어버린다. 맞벌이할 때는 각자 알아서 쓰고 큰 지출은 의논해서 썼다. 좌린이 혼자 버는 요즘에는 좌린에게 돈을 받아 쓰는데 사사건건 결재를 맡는 것이 아니라,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통장에 돈 좀 넣어줘.’ 하면 넣어주는 식이다. 가계부를 꼼꼼히 적거나 계획하고 결산하고 그러는 거 잘 못 한다. 사실 쓰는 돈이 뻔하고 주로 생협에서 먹을거리와 생활용품 사는 것이 지출의 대부분이므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회사 다닐 때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주로 하는 이야기는 재테크에 관한 것이었다. 부동산 붐이 일었고 어디 아파트가 몇 달 사이에 얼마가 올랐다더라, 어디 어디에 투자하면 좋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한 동짜리라서 가파르게 오르는 주변 시세와 무관하게 값이 오르지 않았다. 아, 그때 조금 더 무리해서 대단지 아파트를 샀어야 했어, 라는 후회가 들려고 할 때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 능력 밖의 일에 휘둘리지 말자고, 아마 그랬으면 대출 갚느라고 여행은 꿈도 못 꾸었을 거라고. 학교 앞 월세, 하숙을 전전하다가 결혼하면서 장만한 우리집은 시세와 상관없이 우리에겐 무척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사람들의 화제가 부동산에서 어느 순간 주식으로 옮겨갔다. 주식은 귀동냥으로 들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주식 공부 한 번 해볼까?’ 했더니 좌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모니터에 뜨는 숫자에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숫자 따위에 마음 졸이며 살지 말자고!

여러 가지 통로로 미래를 위해 돈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때면 우리가 피터팬처럼 환상에 빠져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태까지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돈을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돈을 좇지 않으려는 태도가 우리의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것은 우리 아이들이 배워도 괜찮을 것 같다.

 

아루가 돈을 써 보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초등학교 2학년이었나, 어쩌다 생긴 용돈을 들고 인형 옷을 살까, 군것질을 할까, 만화책을 빌려볼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꽤 오랜 시간 학교 앞에서 서성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의 최종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지만, 고심 끝에 선택한 어떤 욕구를 채우고 나니 왜 그리 허무하던지. 돈을 들고 무엇을 살까 고민할 때는 뭐든 다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내 손에 놓고 보니 금세 하찮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배신감만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루가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어떻게 쓸지 고민해보고, 원하던 것을 가졌을 때의 기분도 느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졸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덧 집 근처까지 왔다. 아루 유치원 근처를 지나갈 때 ‘다음 주면 개학이네. 자전거 타고 유치원 다녀야지.’ 했더니 대뜸 자전거 타기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루가 다니는 유치원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직접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한다. 왕복 3km의 거리를 제 자전거로 통학하는데 봄에는 싫단 소리 없이 잘 다니더니 날씨가 더워지니까 자전거 타기 싫다고 종종 입을 내밀곤 했다.

 

‘아루에게 환경 보상금을 줄까? 자전거를 타서 자원을 아끼고 공해를 줄이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좌린이 내친김에 아루에게 보상금 명목으로 용돈을 주자고 의견을 내었다.

 

‘돈을 걸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데...’
‘돈을 줄 테니 자전거를 타라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서 에너지와 기름값을 절약하는 것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자는 거잖아.’

 

좌린의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렇게 해 보자고 했다. 하루 왕복에 200원으로 정했다, 아루의 환경 보상금.

 

집에 온 다음 날, 벼르던 대로 집 앞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둘이서 보석바 하나씩 들고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처음이라서 따라가긴 했지만 조금 떨어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기만 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한 입, 한 입 베어 물며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맛, 얼마나 황홀할까? 그러면서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이 또 얼마나 아쉬울까?
아이스크림을 뚝딱 해치우더니 아루가 종이에 무언가 열심히 그렸다.

 

‘엄마, 앞으로 보석바 18개 더 먹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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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얼마나 더 먹을 수 있는지 계산을 한 것이다.

 

다음날엔 보석바 대신 빵빠레와 비얀코를 먹었다.
‘엄마, 이건 좀 비싸. 보석바 두 개 값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엔 또 보석바.
잠깐의 일탈도 좋고, 스스로 셈을 해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날마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 어떡하나,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아이들은 더이상 아이스크림을 찾지 않았다. 흥밋거리가 다른 것으로 옮겨간 것이다. 너무 싱겁게 끝나서 마음 한 편에선 조금 아쉽기도 했다. 더 내질러보지 그랬어? 내가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다 쓰고 더 달라고 해 보지 그랬어? 십만 대군이 몰려 올 거라고 대비를 했는데, 에게게, 만 명도 안 되네? 뭐, 이런 심정.

 

지난주에 드디어 아루에게 아이스크림 사 먹는 것 말고 돈을 쓸 기회가 생겼다. 유치원에서 바자회를 연 것이다. 유치원 가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제 지갑에서 2천원을 꺼내 갔다. 초등학교와 함께하는 행사라서 규모가 제법 컸다. 도우미로 나온 엄마들이 아이들을 서너 명씩 데리고 다니면서 물건 사는 것을 도왔다. 나는 매대에서 물건 파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시장을 한 바퀴 다 돌고 아루가 나를 찾아왔다.

 

아루야, 뭐 샀어?
키티 인형이랑 고깔모자!

 

아루가 산 물건은 맥도날드 사은품 키티 인형이랑 파리바게뜨 사은품 고깔모자였다. 옆에서 같이 물건을 팔던 다른 애 엄마가 그걸 보고 ‘어머, 아루는 사은품을...’ 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걸 내가 재빠르게 말을 끊었다.

 

‘내일이 할아버지 생신이라서 고깔모자를 샀나 봐요. 하하하.’

 

아루가 산 파리바게뜨 고깔모자에는 분홍색 하트가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아루가 그걸 보고 얼마나 황홀해했을지 짐작이 간다. 물론 그 황홀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되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기준으로 그 자리에서 타격을 주고 싶지 않았다. 예쁜 걸 잘 골랐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예상했던 바대로, 일주일이 지난 지금, 방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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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과 고깔모자를 사고 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땅콩이 푸짐하게 토핑된 커다란 콘 아이스크림이었다. 나한테 자랑을 실컷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는 반도 더 먹은 아이스크림을 내밀며 ‘엄마도 좀 먹어볼래?’ 한다. ‘맛있는 부분 다 먹고 이제야 먹으라고 하다니, 배부르니까 나 주는 거지?’ 따져 물으려 했는데 왠지 모르게 얼굴이 곤란해 보여서 군 말없이 한 입 베어 먹었다.
그제야 하는 말이,
‘엄마, 우리 반에 OO는 남자앤데 네 살짜리 자기 동생 준다고 원피스를 샀다.’
아하, 친구가 제 물건 대신 동생 것을 사는 것을 보니 내 생각이 나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아루가 내미는 아이스크림을 불평하지 않고 먹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루는 요즘 별로 싫은 내색하지 않고 자전거 타고 유치원을 다닌다. 주말이면 일주일 보상금을 정산해서 받는다. 착실하게 지갑에 잘 모셔둔다.

 

‘이제 날씨도 선선해서 아이스크림 먹을 일도 없고. 돈 많은 것 같은데 뭐에 쓰려고?’
‘응, 이제부턴 과자 사 먹을 거야.’

언제 아루한테 한 번 얻어먹어야 하는데.
좌린과 나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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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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