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가 먹는 것은 다 우리가 키웠거나 아는 사람이 키운 것들이네.
쌀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작년에 농사지은 것이고, 오이랑 콩은 우리가 어제 따온 것이고, 감자는 시헌이네서 온 것이고.... 열무김치는... 이 것도 할머니가 농사 지어서 담가주신 거지? 맞지?
일요일 아침, 식탁에 앉아서 아루가 무언가 알아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상을 차리면서, 우리 스스로, 그리고 가족, 친구가 직접 농사 지은 것만으로 식탁을 차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아루도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모양이다.
텃밭에서 자기가 직접 따온 것을 먹는다는, 자기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느꼈을 테고.
텃밭을 하면서 얻은 것중에 하나가 채소 본래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따서 바로 먹는 상추, 깻잎, 쑥갓, 오이, 고추의 맛과 향이 얼마나 좋은지, 몇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쳐 마트에서 사 먹을 때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채소의 맛을 잘 알지 못했을 때에는 어떤 요리의 재료로만 생각해서 이걸로 무얼 해 먹을까, 어떻게 요리할까,하는 고민을 했었는데
요즘엔 아주 간단하게 굽거나 찌는 방법으로 채소가 지닌 본래의 맛을 그대로 살려서 먹는다.
밥을 할 때마다 감자와 콩을 넣어서 하고 상추, 당귀, 신선초, 쓱갓 등의 쌈채소는 약간의 소스를 뿌려 샐러드로 먹고 호박이랑 가지는 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다.
이렇게 먹기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도(!)라서 밭에서 채소를 따오면 3~4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분량만 두고 나머지는 이웃에 나눠준다. 나눠 먹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근대나 아욱은 살짝 데쳐 냉동을 하고, 오이랑 깻잎은 항상 바로 따온 순서대로 먹고 남은 것은 따로 열흘 정도 모아서 김치나 피클을 담근다.
전에는 된장찌개를 자주 끓였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먹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니 더운 날씨에 멸치 육수를 따로 내는 것마저 귀찮게 느껴져서 요즘엔 뜸해졌다.
여름엔 된장찌개 대신 시원한 오이 냉국!
지난 봄에 누가 놀러와서 돼지고기 수육을 해 먹고 당장 치우기 귀찮아서 돼지고기 삶은 국물울 뒷베란다에 하룻밤 두었더니 추운 날씨에 국물 위에 돼지기름이 하얗게 굳었다.
버리려고 하다가 하얀 기름만 살짝 걷어내고 나니 국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펫트병에 넣어 얼렸는데, 그리고 두어 달 뒤에 김치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반 통이나 남은 동치미를 발견하고 역시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어찌할까 하다가 이 두가지를 섞어서 냉면 육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실 냉면이랑 냉국을 좋아하는데 시중에 파는 육수에는 MSG랑 첨가물이 들어있어서 집에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였다.
돼지고기 삶은 물을 녹여서 다시 한 번 끓이고 여기에 멸치, 다시마 육수를 섞고 동치미 국물을 섞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식초와 매실엑기스로 맛을 내었다.
너, 마녀지? 지금 마녀 스프 만드는 거지?
내가 중얼중얼 하면서 이것 저것 섞어보고 맛보고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좌린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육수, 일명 마녀 스프를 조금씩 나눠서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얼렸더니 손쉽게 오이 냉국, 열무 국수를 해 먹을 수 있다.
오래전에 읽은, 요즘도 종종 들춰 보는 책,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해 가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나는 또 검약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했다. 검약이라는 말은 서구에서는 늙은 아주머니들이나 자물쇠가 채워진 식료품 저장실 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라다크에서 보게 되는 검약은 이 사람들의 번영의 기초가 되는 것인데, 아주 다르다. 제한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쓰는 것은 인색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것이 검약의 본래의 뜻, 즉 작은 것에서 더 많이 얻어내는 일이다. 우리가 어떤 것이 다 낡아서 아무 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내버릴 만한 경우에 라다크 사람들은 무언가 그 용도를 찾아낼 것이다. 어떤 것도 그저 내버리지는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짐승에게 먹일 수 있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은 땅에 거름이 될 수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밥상, 그리고 내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다른 용도를 찾아보는 것,
텃밭을 삼년째 하면서 얻은 선물이다.
요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 우리의 주요 강은 자유롭게 흐르지 못해 문제지만-_-;;;)
쉼없이 조잘대고 쉼없이 생각해내고 쉼없이 만들어낸다.
우리, OO 놀이 할까,
시작은 분명 OO놀이 였던 것 같은데 놀이에 필요한 무언가를 그리고, 오리고, 만들고, 레고로 조립을 하다보면 또 다른 놀이가 되어 있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어지르고 분주하게 오간다.
아침을 먹고 나서 유치원 놀이를 한다고 하더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날이라고 책장으로 달려가서 한동안 조용히 책을 읽다가 '행복한 미술관'에 나오는 놀이를 한다고 그림 도구를 꺼내 왔다.
'행복한 미술관'에 나오는 그림 놀이는 이런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우리에게 재미있는 그림놀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엄마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랑 했던 놀이래요. 처음에 누가 모양을 하나 그립니다. 어떤 모양이든 괜찮아요. 무엇을 그릴 건지 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모양이면 되지요. 그러면 다음 사람이 그 모양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거예요. 정말 멋진 놀이였지요. 우리는 집에 오는 길에 내내 그림놀이를 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 행복한 미술관)
해람이의 그림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보기 좋게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예전에는 주로 자동차, 기차, 길과 바퀴 등을 그렸는데 요즘엔 누나를 따라서 온통 하트와 아이스크림이다. 가끔 꽃치마도 그린다. 엊그제는 남자 공주를 그렸다고^^
요즘 해람이를 보면 아기티를 벗고 '남자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머리를 짧게 잘라서 더 그런지, 아루 입던 분홍색 내의를 입히면 어색하고 웃긴다.
지리산을 다녀 온 후로 부쩍 큰 느낌이 드는데 정말 다행스럽게 밤마다 코가 막히던 증상이 사라져서 잠을 잘자고, 피부도 덜 긁고, 그러면서 예전보다 잘 먹고 몸의 움직임도 훨씬 씩씩해졌다.
아루는 손 재주가 좋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날마다 종이, 합성 점토, 펄러비즈 등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아기고릴라 둥둥이, 왼쪽은 좌린이 만든 것이고 오른쪽은 아루가 만든 것.
우리 해람이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될까,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될까?
어느날인가, 아루가 유치원에 간 사이 해람이랑 둘이 뒹굴뒹굴 누워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었는데 문득 내가 한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즐겁게 노래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꼭 화가나 가수가 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인데, 누구나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경쟁과 효율이 지배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남다른 재능이 있는지 살펴서 그 길로 달려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평생 그 것과 담을 쌓고 살게 된다.
나도 어릴 적에는 제멋대로 흥얼거리고 제멋대로 끄적이면서, 내가 누구보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의식하지 않고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끼곤 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잘 못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면서 즐기기는 커녕 기피하게 되었고 어떤 노력이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몸을 움직여 노는 것이 처음에는 얼마나 어색하고 부끄러웠던지!
유치원에 가서 보니, 아루의 장래희망은 화가란다.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아루가 화가가 되겠다고 명함을 만들더니 정말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라고,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라고 종용하는 교육이 나는 좀 불편하다.
어릴 때 재능을 발견해서 거기에 집중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삶의 가치를 효율로만 따질 수 있을까.
선택과 집중의 논리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찍부터 순수한 열정과 기쁨의 싹을 잘라버려도 될까.
음악, 미술, 체육 시간은 거의 자율학습을 하던 고 3의 어느날, 체력장 때문에 오랜만에 운동장에 나가서 힘껏 달렸을 때 점수나 기록과는 상관없이 가슴이 후련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졌던 것을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나는 요즘에서야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와 인라인을 타면서 몸으로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음치라는 강박을 내려놓고 목청껏 노래도 불러본다.
해람: 엄마, 뭐라고?
나: 해람이는 지금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즐겁게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라고.
올림픽과 함께, 우리집에서는 활쏘기가 한창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들이랑 올림픽 경기를 함께 봤는데 아이들의 해석과 따라하는 모습에 웃을 일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양궁, 수중발레, 리듬체조가 인기였다. 양궁은 장난감으로 해 보던 것이라서 그랬고 한참 꾸미기 좋아하는 아루가 리듬체조를 보며 황홀해하는 것은 예상했던 바인데 잠깐 본 수중발레에 이렇게 열광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깔깔 거렸고 나중에는 소파에 누워 발을 위로 쭉쭉 쳐 들며 흉내를 냈다. 그러고보니 과장된 몸동작이 조금 우스워 보이기도...
운동 경기에 관심을 가지고 몰입해서 보거나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응원을 열심히 하는 축에 끼지도 못하지만 누군가의 승리와 누군가의 패배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오래 전에 김연아 선수가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신문 일면을 가득 채운 사진을 보며 좌린이 내게 물었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신문 일면에 나면 기분이 어떨까? 좋을까?
글쎄..., 뿌듯할까?
사진 속의 김연아 선수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멋있어 보였지만, 나는 선뜻 아루나 해람이의 모습을 그 속에 투영시키지 못했다. 자신의 길에 최선을 다하고 몰입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일찍 남보다 앞서 어떤 고지에 이르는 것이, 경쟁과 효율의 논리를 온 몸으로 체화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헌신할 자신도 없고.
강동풀빌라에 사는 비니입니다.
닉네임을 spica77에서 beanytime으로 바꾸었습니다. 한겨레 싸이트에 가입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로그인해서 글쓰는 것은 처음이라서, 닉네임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네요. spica77은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닉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