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부부만 살 때는 다투고 갈등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낳겠다고 결정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아이 키우는 엄마는 언제나 남편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 낳고 3년은 무조건 엄마가 키워라’ 등의 발언으로 수많은 엄마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 그만큼 널리 읽힌 육아서 <엄마 수업>에서 법륜 스님이 한 말씀이다. 지지든 볶든 아이 낳기 전에 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사랑으로 가정을 이끌란 말이다. 요즘 이 말에 크게 공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산후조리하는 아내를 두고 유럽 출장을 떠났던 남편의 만행을 고발한 지난 칼럼이 나간 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내 남편도 그랬다’, ‘그 기분 너무도 잘 안다’는 공감의 댓글부터 ‘얼마나 힘들었냐, 내가 봐도 화가난다’는 위로의 메시지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일부는 공감을 너무 격하게 한 나머지 남편을 향한 심한 욕설이 담긴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러한 피드백은 내게만 온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회사 동료들로부터 "부인한테 잘 좀 하세요"와 같은 말을 들은 남편은 하루종일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나중에 칼럼을 읽고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남편 완전 삐침." 난 그만 전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 남편을 흉본 것 같아 끝내 미안해지고 말았다.

 

IMG_2226.JPG » 곤란이를 목욕시키는 곤란이 아빠, 내 남편의 모습. 남편, 칼럼에 대고 흉봐서 미안!


 사실 유럽 출장 때 서운하게 한 일을 빼면 남편은 여러모로 ‘좋은 아빠’ 였다. 누구보다도 ’노키드’로 여행이나 하며 자유롭게 살길 원했던 남자인데도 아기를 낳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180도로 변모한 모습을 보였다. 출산 전에는 아기 용품을 직접 알아보고 사들이더니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칼퇴근을 해 집에 와서 아기 목욕을 시켰다. 아침마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나 대신 아기를 돌보고 아기가 예쁘다며 쪽쪽 빨며 "까꿍 까꿍"을 연발하다가 지각을 하기 일쑤였다. 주말이면 평일 내내 집에만 있는 내가 답답할까봐 아기를 데리고 집 앞 카페라도 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아기를 돌보느라 외롭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남편의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분노가 치밀곤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기를 낳기 전 같으면 열두번도 싸웠을 상황이 매일같이 아슬아슬 벌어진다. 그럴 때마다 격렬한 부부싸움을 벌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그럴 수 없다.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에잇, 싸워버리자! 싸우고 나면? 자, 상황을 보자.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아빠가 고함을 치니 아기가 놀라 운다. 아기에게 하늘이고 땅이고 공기고 우주인 엄마와 아빠가 싸운다는 건 세상이 두 쪽이 나는 일이다. 남편을 욕하며 아기를 껴안아 달래고는 젖을 물린다. 순간, 혹시 내 분노가 젖에 이상을 주지는 않았을까, 나쁜 기운이 아기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진다. 잠든 아기가 자꾸만 놀라서 깨면, 아까 우리 싸울 때 놀라서 그런가 죄책감에 가슴을 친다. 화해를 하지 않고 남편이 출근해버리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지옥이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서 산후우울증이 오나 걱정도 된다. 결국 내가 만든 감옥에 갇혀 바둥거리게 된다.


 사실 그렇다. 결혼하고 나서는 싸울 때마다 ‘결혼만 안 했으면, 사귀는 사이였으면 당장 헤어졌을 텐데’ 한다. 결혼을 하질 말지, 해놓고 그렇게 된다. 아기를 낳고 나면 ‘아이고, 애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레퍼토리가 바뀐다.


 계속 그렇게 살 텐가? 아니다, 법륜 스님처럼 수양을 해서라도 마음을 바꿔먹어야겠다. 따지고 보면, 남편 그가 누구인가? 내 아기의 아빠이다. 나와 육아 공동체를 꾸린 사람이다. 아기를 함께 키워나가는 파트너다. 그 귀중한 사람과 의가 상하는 일은 부질없다. 공동체를 깰 것인가? 지금 분노하는 사건이 그만큼 심각하고 중요한 일인가? 아니다 싶으면 멈추는 게 상책이다.


 그는 나와 함께 아기의 웃음, 아기의 아픔, 아기의 성장을 보고 듣고 기억하며 늙어갈 사람이다. 세상에서 나의 아기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이며, 그 아기를 사랑하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남자다. 아기 없이 함께 살았던 지난 5년의 시간과 아기가 태어난 지금, 그와 나의 관계는 매우 다르다. 곤란이는 우리 부부에게 좀더 성숙한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순간, 남편 때문에 속병을 앓으며 마음 감옥에 갇혀 있는 분들이여, 보시라. 이렇게 대놓고 남편 뒷담화를 했다가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쓰는 어리석은 여자도 있답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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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한겨레21> 기획편집팀, 사회팀, <한겨레> 사회부 24시팀을 거쳐 현재 오피니언넷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 생각 없다”더니 한 눈에 반한 남자와 폭풍열애 5개월만에 결혼. 온갖 닭살 행각으로 “우리사랑 변치않아” 자랑하더니만 신혼여행부터 극렬 부부싸움 돌입. 남다른 철학이라도 있는양 “우리부부는 아이 없이 살 것”이라더니 결혼 5년만에 덜컥 임신. 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메일 : sun21@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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