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ingbaby.jpg » 이유식은 뜨거워서 식혀야 하고, 막 세탁기서 꺼낸 빨래는 널어야 하고, 내가 먹으려 데운 찌개는 끓고 있는데, 택배 아저씨가 딩동 벨을 누르는 순간, 아이가 저렇게 울어버리면…아아아...육아를 전담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웬만한 건 모두 해봤구나 싶었다. 먹이는 것도 씻기는 것도 재우는 것도 놀아주는 것도 다 잘한다고 여겼다. 주위에서 ‘애 아빠가 곧잘 하네!’라는 칭찬도 종종 들었다. 그래서 자신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재취업으로 육아를 전담하게 된 그날 새벽부터, 난 이미 ‘내가 무식해서 용감했구나!’를 되뇌고 있었다. 칭얼대는 소리에 새벽잠을 깬 뒤부터다. 눈은 반밖에 못 뜨고 손으론 아이를 토닥이면서 뭘 해야 하나 고민했다. 잠든 아내를 깨워서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는 첫 출근을 앞둔 사람, 난 ‘집에 있는 사람’이었다. 한참을 다독여주니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창밖이 밝아왔다. 아내는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옷 입고 거울 보더니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출근길에 나섰다.
 
아이와 단둘이 남은 집에서 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아내가 나간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졸음에 겨운 나를 쳐다봤다. “아빠, 이제 뭐 할거야?”라고 묻는 듯했다.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유식 끝. 목욕 끝. 이제 뭐하지?”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책 읽어주기. 그림 보며 이야기해주기.” 그렇지.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다 해본 건데.
 
한참 놀아주고 났더니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또 미궁이었다. 애가 잘 땐 뭘 해야 하지? 또 애가 일어나면 뭘 하지? 매시간 나는 ‘뭘 하지’를 궁리했다. 아내에게 SOS 문자를 몇 번이나 보냈는지 모른다. 그 덕에 끼니때도 안 놓쳤고, 산책도 다녀왔지만 ‘뭘 하지’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시계만 보며 ‘애 엄마는 언제 오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를 직접 계획한 적이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육아의 과업을 대부분 경험했다고는 해도, 따지고 보면 응가 하면 기저귀 갈아주기나 졸려 하면 자장가 불러주기처럼 ○○하면 △△하기식의 ‘조건부 과업’에 지나지 않았다. 바꿔 말해서, 아무 조건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보채는 아이 달랠 줄이나 알았지, 사실상 짬짬이 돕는 ‘조건부 육아 도우미’였던 게다.
 
육아를 전담해보지 않으면, 소털 같은 시간을 뭐로 메우는지 알기 쉽지 않다. 가사 노동의 비중이 물론 크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순환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같이 놀아주는 아이와의 일상도 한나절의 큰 부분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들다.
 
여기에 아이가 어디가 얼마나 자랐고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와 같은 발달 수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그걸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아이와의 시공간을 능동적으로 꾸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간간이 책이며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시간은 늘 모자라기 일쑤다. 아내가 집에서 아이 보던 시절, “오늘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어”라는 푸념을 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다. 난 언제쯤 느긋하게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여유 누려보느냐는 하소연 속에, 능동적 육아는 그저 이론에 그치고 만다.
 
사실 육아는 엄마 아빠 모두에게 낯선 환경이다. 여성은 언젠가부터 ‘나도 언젠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가 되겠구나!’를 막연히 생각하지만, 육아의 실체를 날 때부터 모두 알 리 없다. 남성은 말할 것도 없다. 육아 전담의 경험은 그래서 소중하다. 나는 아이에게 ‘남자는 부엌일 하는 것 아니다’ ‘애는 여자가 키우는 거다’ 따위를 가르칠 생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 이 글은 육아휴직중이던 시절에 작성해 디자인하우스 간행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 2011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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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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