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직 잠들지 않고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마 내 아버지가 느꼈던 감정이 아닐까 싶다.
한참 자던 잠에서 깨거나 아니면 아직 잠을 못 자고 있는 아내가
가끔은 눈을 흘길 때도 있겠지만
나는 과거의 내 아버지가 그러하였듯 밤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면
그렇게 아이가 보고 싶고 좋을 수가 없다.
물론 술 냄새 풀풀 풍기며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어릴 때는 그렇게 싫었다.
졸리는 나를 붙들고 한참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고
몸에 베인 술 냄새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30년이 흐르고 보니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의 깊이를
내 아버지의 모습을 마치 거울처럼 비춰보며 확인하게 된다.
물론 자는 아이를 깨우지도 실수할 정도로 과음을 하지도 않지만.
오늘 밖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보니 뽀뇨가 잠을 안자고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재우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아내가 내 머리를 보더니 흰머리가 있다며 뽑아준다.
그 옆에서 아빠의 머리를 만지는 뽀뇨.
아내가 흰머리를 뽑으며
“뽀뇨야, 아빠가 너 키운다고 이렇게 흰 머리가 생겼다. 우리 뽀뇨도 커서 아빠 흰머리 뽑아줘야지.
근데 뽀뇨 나이가 세 살 밖에 안 되었고 동생도 없는데 벌써 흰 머리가 왠일이냐. 괜찮아. 조지클루니도 있는데”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눈가 주름살도 많은데 흰머리까지 늘어가나 싶어
갑자기 서글프다.
수십개를 넘어 뽑을 수준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데 아내가 뽑은 흰머리는 고작 여섯 가닥.
이런 뻥쟁이를 봤나.
뽀뇨가 내 머리를 만지는데 왠지 어릴적 아버지가 자는 내 종아리를 쓰다듬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어머니와 함께 내 종아리를 만지며 '우야가 이렇게 컸구나' 하던 것이 어제 같고
그 찬 손길이 생생하여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군대에 다닐 한창 예민한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끄적였던 시가 생각나 옮겨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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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아리
어머니 흙탕물에서 큰 고기를 잡아 올리듯 내 종아리 잡고 엄첩해라*
여보 이 종아리 보이소 하며 소근대는데
물이 올라 살 붙은 종아리는 매일 밤 차디찬 손을 타고 올라 알을 배었다
먹지 않고도, 자는 잠에 배었다
*엄첩해라 : 대단하다, 대견하다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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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가 그랬고
내가 그러하였듯
뽀뇨 또한 내 손길을 기억하고 언젠가 시를 쓰리라.
그때 까지 살아 남아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자는 뽀뇨의 종아리를 사진 찍었다. 아빠 닮아 종아리가 토실토실하다>
*아래 사진을 누르시면 몇 안되는 뽀뇨 고까입은 사진을 보실수 있어요. 50일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