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와 세 번째 유치원 면담을 갔다. 가족끼리 하는 유치원 행사가 있거나 선생님 면담이 있을 때는 항상 아내가 시간이 되는지를 묻는데 그럴 때면 항상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스케줄을 확인하고 메모하고 나면 매주 스케줄을 확인할 때 항상 챙기는 편인데 아내는 내가 출근할 때 한 번 더 확인을 하는 꼼꼼한 스타일이다.
다른 유치원 행사가 있을 때는 안 그랬는데 나는 유독 선생님 면담 일정만 잡히면 사고를 쳐왔다. 그래봐야 두 번이긴 한데 아내가 두 번 째 면담 때에 화를 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상세하게 기억한다. 상담은 오후 5시 즈음에 잡혀있었고 나는 제주시의 일정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약간의 여유를 부렸던 것 같다. 보통 오후 5시 조금 지나서 퇴근을 하는데 오후 4시가 지나서 일이 끝났기 때문이다.
서귀포 집에서 서남쪽 대정으로 출근하여 다시 제주시로 향하는 바쁜 일정 속에 아이 유치원 면담이 머릿속에 까맣게 잊혀진 사이.. 막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성판악에 차가 지나가고 있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서 이상했고 순간적으로 면담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차에 부착된 시계를 보니 집까지 20분, 다시 유치원까지 10분 빠듯하게 달려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아내는 이미 내가 깜빡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듯해서 미끄러지듯 성판악에서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고 다행히 시간이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화가 났는지 다음부터는 절대 유치원 면담을 함께 가지 않겠다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가정에 무심할 수 있냐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아내가 내게 안 되면 안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를 해달라며 재차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내 성격 탓이기도 한데 일도 잘 하고 싶고 가정도 챙기고 싶은 것이 욕심이지만 바쁠 때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하는 것은 가정이며 육아일 때가 많다. 그럴 때 일수록 아내가 이해를 해주는데 다 받아 주다보니 가끔은 선을 넘을 때가 있다.
왠만하면 수긍하는 아내지만 아주 화가 날 때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타입인지라 세 번째 유치원 면담 앞에서는 바쁜 일도 잠시 멈추고 집으로 달려왔다. 첫 번째 타임에 면담이 잡혀서 이른 시간이었지만 둘째와 함께 유치원에 들러 여유롭게 선생님을 기다렸다. 첫째가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 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자주 듣게 되는데 유치원에서의 모습은 어떨까 싶었다. 본인의 외모가 못생겨서 혹은 머리가 짧아서 친구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을 때는 황당하기도 했는데 아이 입장이면 얼마나 유치원 생활이 어려울까 생각하니 아이의 고민이 내게 직접 전달되더라. 내가 괜히 친구 역할을 해주며 놀아준 것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나 싶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어른들 노는데 자주 끼다보니 그런가 싶기도 했다. 동네 친구들도 사겨야 되는데 나는 직장이 멀고 아내 또한 동화창작에 바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함께 놀아줄 동생이 생겨서 다행이다 싶다.
주말에 시간이 나면 아내는 도서관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다닌다. 다행히 새로 시작한 정원공부모임에 아이들을 동행하는 것이 가능할듯하다. 어제는 따라비오름을 오르며 여러 식물의 종자를 모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첫째와 용눈이 오름을 오른 것이 벌써 3년이 되었다. 제주 오름의 아름다운 억새가 지기 전에 아이들과 나서야 겠다. 집에 와서는 채종한 종자를 꺼내어서 정리하는 작업을 첫째와 함께 했다. 종자의 이름도 알려주고 다음 달에는 함께 파종을 하자는 약속도 했다.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정원공부를 기대하시라.
<광화문에 100만명이 모인날, 첫째와 나는 따라비오름의 식물 씨앗들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