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어깨에 둘러 멘 오래된 가방을 보며 지나가다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가방 하나 사야겠네.”

가방에 관심이 생긴 건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였다. 그 가방은 동대문에 있는 쇼핑몰을 돌아다니다 그마저도 비싸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차도에서 고른 가방이었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쇼핑몰에 진입하지 못한 지하통로 가게를 돌아다니며 가격을 물으며 산 가방이었다. 학습은 모방을 통해 이뤄진다는 이론이 적어도 물건을 고를 때만큼은 나에겐 꼭 적용됐다. 어렸을 때 물건 하나를 고르더라도 오랜 발품을 팔고 흥정하시는 어머니를 보았던 난 어느새 물건을 고르는 방식이 어머니를 그대로 닮았다. 가게 몇 곳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저렴한 가격을 파악했고 그 가격에서도 몇 천원을 더 깎아 어깨에 거는 갈색 가방 하나를 장만했다. 구입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래전 일이었다.

거친 현장만 찾아 다녔던 사회부 기자시절엔 가볍고 튼튼한 가방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주부가 되고 보니 가방 욕심이 났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방은 그냥 책과 노트북 이외에도 넣어야 할 게 많은 물건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아이가 아플 때에는 각종 약을 넣어야 하고, 더운 여름날에는 갈아입을 옷을 넣었고, 학교에 다녀와 놀러나간 아이를 찾으러 갈 때에는 간식거리도 챙겨 넣어야 했다. 게다가 여성들은 급하게 밖으로 나올 때 각종 화장품도 넣어 다녀야 하니 가방은 더 크고 가벼워야 할 것만 같았다. 여성들에게 가방은 남자들에게 자동차와 비슷한 의미일 것 같았다. 누구나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만 이왕이면 디자인도 예쁘기를 바라는 그런 물건. 좋은 가방 하나쯤 갖고 싶어하는 여성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가방.JPG

 

오래된 내 가방을 보면서 구멍이 난 것도 아닌데 새 가방을 산다는 건 사치라는 생각과, 가끔 강연회도 있고 대학원도 다니니 예쁜 가방 하나쯤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가방을 볼 때마다 서로 충돌을 했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가방 매장이 보였다. 어떤 가방들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매장에 들어섰다. 괜찮아 보이는 가방 앞에 멈추자 점원은 한번 어깨에 메어 보라며 가방을 건넸다. 가격을 물어봤다. 유명 메이커 운동화와 비슷한 가격이었다. 운동화 가격과 비슷한 가방이란 생각보다 예전 가방보다 터무니 없이 비싼 가방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알겠다 는 말과 함께 매장 밖으로 나왔다.

 

가격을 알고나선 머릿속에서 지웠다고 생각한 가방이  ‘30% 세일’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또 다른 매장을 보고 다시 생각이 났다. 30% 세일 앞에는 최대 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장으로 들어섰다. 마음에 들었던 가방이 매장 한 가운데에 보였다. 이번엔 물건을 하나씩 둘러볼 필요가 없었다. 엄두를 낼 수 없는 가방과 눈길은 줄 수 있는 가방이 무엇인지를 이미 다른 매장에서 파악했으니까. 단 하나의 가방 가격만 알면 그만이었다. 점원은 다른 곳에서는 아직 세일에 들어가지 않았다며 구매를 부추겼다. 세일 가격을 파악하고 이번에도 매장을 그냥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브랜드 이름을 넣고 훑어보니 찾았던 그 가방이 보였다. 최저가가 얼마인지를 검색했다. 그런데 매장가격보다 더 쌀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점원 말이 정말이었구나.’
세일에 들어간 매장 가방의 가격보다 더 싼 가격은 인터넷에도 없었다. 이제 막 세일에 들어간 매장이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인터넷 가격도 더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가방 구입을 미뤘다.

 

그 뒤로부터 매일 전철이나 버스로 이동을 할 때면 스마트 폰에 원하는 가방을 검색해 최저 가격을 확인했다. 숫자 일곱자리 사이에 영어 알파벳 하나가 섞여 있는 모델명도 자연스럽게 외울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그 가방 가격은 줄곧 매장 세일 가격과 비슷하거나 더 비싼 채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가방 모델을 검색한지가 어느새 두 주가 다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박근혜 대통령를 향해 ‘하야’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나간 시간이기도 했다. 집에 TV가 없는데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적 관심도 멀어져 갔지만, 가방 가격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할 때마다 가방 가격보다는 뉴스 속으로 빠져들었다. 요즈음은 현실이 더 소설같아 소설이 안 팔린다던데 정말 그럴만한 기사들이 매일 쏟아졌다. 그래서 가방 생각이 나 가격을 검색하는 시간은 곧 뉴스 기사를 읽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뉴스를 읽으면 읽을수록 내 내면엔 점차 ‘화’라는 감정이 뿌리를 내리더니 하루하루 크게 자라났다.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해서 여러 매장을 다니고 인터넷으로 가격을 따지고 있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하게 보였다.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였는지 최순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였는지 더 따져봐야하겠지만, 한 스포츠 재단을 설립하니 288억 원대 기금이 뚝딱하고 모이고 이 기금 가운데 80억 원은 독일에 있는 개인 회사로 빼돌린 정황을 보도한 기사를 보면서 가방 하나 사는 거에도 절절 매는 상황이 억울하면서도 못마땅했다. 상황이 못마땅하면 못마땅할 수록 그 크기만큼 분노의 감정도 함께 커져갔다. 특정한 사람들은 애써 일을 하지 않아도 힘들게 땀을 흘리지 않아도 수 백억 원의 돈을 쉽게 모으고 이 가운데 일부 돈을 빼 자신의 회사에 넣었다는 생각을 하니, 돈을 아끼는 노력을 악착같이 하는 상황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 분노는 하루종일 계속돼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가방을 사고 싶은 나’와 절약을 해야 하는 ‘나’ 사이에서 지난 2주 동안은 점점 화를 키운 시간이었다.

 

혼자 있다가도 화가 나면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욕이 나오기도 했다.

당신 새끼만 새끼고 다른 자녀들은 당신 인생의 들러리로 보이나요? 머리가 없으면 노력해서 대학 들어갈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뒷문으로 말타고 들어가니 없던 자식 머리가 총명해지겠습니까? 당신은 수사를 받으러 가는데에도 프라다 명품 신발 신고 갔더군요. 난 가방 하나 못 사 이렇게 절절 매면서 사는데 말입니다. 우리 아빠들이 열심히 일한 돈으로 기업이 이익을 내면, 그 기업들 돈 가져다가 니 마음대로 주무르니 마음이 편합디까? 쉽게 돈벌고 아빠의 피눈물로 배를 불리고 등을 따뜻하게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든가요? 혹시 지금도 친구가 자신을 봐줄 거라고 생각을 하겠지요. 검찰총수를 임명하는 사람도 당신 친구이니까요. 당신 친구는 그러고 싶겠지만  난 도저히 당신과 당신 친구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만 뒤로 빠져 고고한 척하는 대통령은 더 미웠다.

 

오늘은 겉옷을 뭐 입을지 고민할 시간에 화장품 뭐 바를지 고민할 시간에 공부하고 책 좀 읽읍시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에서 뇌가 없는 대통령을 풍자한 만평까지 냈겠습니까. 당신 친구가 당신 머리 속에 들어간 건 당신 머리가 비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저 만평을 보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최순실이 아니어도 제2의 최순실 제3의 최순실도 있었겠지요. 경제위기이니까 국정은 계속되어야 한다고요? 간만에 크게 웃었습니다. 그 꼬라지보고 사람들은 일할 의욕을 잃었거든요. 난 요즈음 일하기가 싫거든요. 경제가 위기인 주범은 외부사정이 아니라 바로 당신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40년 전에 잘 살아보자고 외치더니, 결국 끼리끼리 잘 살겠다는 구호였다는 생각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박근혜 만평.png

<출처 : 뉴욕타임스 11월 6일 만평>

난 화가 났다. 그 화는 아끼고 절약했을 때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날 거라는 내 믿음에 균열이 가면서 나온 화였다.

 

학원에서 <인지행동>이란 심리상담 수업에서 ‘분노’의 감정이 갖는 이유는 바로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 때라고 했다. 그러니까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지나친 시어머니의 간섭 또는 부모의 강압을 당할 때 화가 나는 건 불공정하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불공정하다는 생각은 곧 분노라는 감정과 만난다는 걸 떠올리니 지금 전국적으로 세대를 넘어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화를 내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사람들의 집단적 분노는 이 사회가 ‘불공정한 사회’라는 생각이 그 감정과 맞닿은 결과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게 나라냐?’ 라는 구호는 불공정한 사회를 질타하는 분노의 목소리였다. 부모가 누구인지에 따라 자녀가 입학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니까. 부모를 보고 입학을 눈감아준 대학총장이 있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니까. 기업들이 수 백억 원을 모금해 뚝딱 자신 앞에 가져다 주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니까. 그리고 재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사용했다고 하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나라도 아닐 테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검찰 수사를 받는 당사자는 수사 기관 안에서 팔짱을 끼고 웃음을 짓고, 그 모습을 보며 같이 웃는 검찰 수사관이 있는 나라도 나라가 아니라는 분노가 점점 더 분노의 크기를 부풀렸다.

 

분노란 감정을 배웠던 수업시간, 교수님이 물었다.
“각 감정은 긍정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감정에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는 말이 의아했다. 그리고 분노의 감정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화의 긍정적인 기능은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현실을 상대로 공정한 대우를 요구하게 합니다.”
그러고보면 이번 사태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촛불을 드는 건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촛불의 숫자만큼, 분노하는 사람들 수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목소리 수만큼 그리고 그 성량만큼, 사람들의 내면에는 비뚤어진 이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바꾸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렇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만큼은 지난 시간 속에서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하면, 그 노력으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꿈꿨던 사람들일 것만 같았다.

 

난 더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기를 바랐다.

그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져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나이와 나이를 뛰어넘어 우리가 열망하는 사회가 바로 공정한 사회이며 그 열망이 분노로 촛불로 드러낸다는 걸 알리기를 희망했다.

 

지금의 분노가 미국 대선의 결과로도 덮을 수 없을 테다.
검찰 수사 결과로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총리를 바꾸는 정치적 꼼수로는 더욱 막을 수 없고
대통령이 하야한데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분노는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공정한 사회 가능성을 확인할 때

희망으로 바뀌며 조금씩 줄어들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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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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