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기 전에 아이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아빠 일어나.”
무거운 눈꺼풀을 살짝 들어 손목 시계를 바라봤다. 7시를 막 넘은 시간이었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쳐다보니 민호가 눈을 뜬 채로 말을 다시 걸었다.
“아빠 일어나.”
까만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조금만 더 자자.”
등교 시간까지는 그래도 1시간 남짓 남았으니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아빠, 먼저 일어나.”
일어나고 싶으면 알아서 일어나지 왜 아빠 먼저 일어나라고 하는 건지. 침대에서는 꼭 내가 먼저 일어나야 민호가 뒤따라 일어났다. 맛있는 음식은 자기가 먼저 먹으려고 하면서 이럴 땐 꼭 어른이 먼저란다.
“민호야 넌 10시에 잤지만 아빤 1시에 잤거든.”
좀 봐주라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부탁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민호는 아빠 옆에서 잠을 잤다. 이사를 온 뒤 집이 조금 넓어져 좋은 건 해가 서산에 기울기 전까지만 그랬다. 민호에게 잠을 잘 때에는 오히려 큰 집이 무서웠다. 민호는 아빠를 깨우는 소리 대신 피융~과 같은 의성어를 속삭이며 이불 속에서 놀았다. 피곤한 아빠를 배려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쳐다봤다. 8시가 넘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엔 아이 눈망울 대신아이 뒷통수가 보였다. 꺄.악. 지각이다.
“민호야~ 8시가 넘었어!”
 꼭 소방서나 경찰서에만 비상이 걸리는 건 아니다. 주부가 늦잠을 자는 집 안에서도 비상사태는 발생한다. 생각보다 자주.
 “아빠 바지”
 “두 번째 서랍”
 “아빠 양말은”
 “잠깐만.”
 서둘러 아이를 차에 태웠다. 아이 머리는 붕 떴고 이를 닦았는지 확인조차 못했다. 그런 아이 얼굴을 보며 자동차 거울로 보니 내 머리도 붕 떴다. 그리고 난 이를 닦지 않은 건 확실했다.
이사를 오면서 민호는 전에 있는 학교까지 자동차로 등하교를 해야만 했다. 차에 올랐는데 가슴이 빨리 뛰었다. 가슴이 뛰는 건 아이 지각이 온전히 아빠의 늦잠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의 속도는 이미 한참 과속 중이었다. 차에 안전띠를 메면서 안전운전이라고 혼잣말로 짧게 다짐을 했다.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출근시간 지하철 플랫폼엔 직장인들이 가득찬 것처럼, 등교길 거리엔 아이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다행히 겨우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도착했다. 아이에게 다 왔다고 말을 할 무렵, 아이 얼굴을 보자 전날 아이가 꼭 챙겨야 한다는 준비물이 생각났다. 꺄.악.
 “민호야, 쌀!”
아이와 아빠는 순간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입으로는 아무런 말을 하지않았지만 우리는 눈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큰일났다는 말을 그렇게 멍한 눈빛으로 주고 받았다. 눈은 짧은 순간에도 많은 말을 한다. 준비물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 집으로 가야 하면 지각을 하고, 제 시간에 등교를 하려면 준비물을 챙길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눈빛이었다. 아이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빠 다시 돌아가?”
 그렇다고 아이를 지각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늦잠을 잔 건 아빠이니까.
 “아빠가 혼자 집에 가서 준비물 가져올게. 그리고 복도에 있는 신발주머니 위에 준비물 가져다 놓을게 쉬는 시간에 챙겨가. 예전에 우산 갖다 놓은 것처럼.”
 민호도 준비물 챙기는 걸 깜빡하곤 했다. 우산도 자주 잃어버렸는데 그런 아이를 보며 화를 낼 수는 없었던 건 그 아이의 모습은 나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서로를 보며 ‘빡빠들’이란 별명까지 부르며 깔깔대며 서로를 놀리며 웃어댔다. 깜’빡’하는 아’빠’와 아’들’을 줄여 붙인 두 사람의 별명.  빡빠들.

 

 

 아이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 쌀 한 움큼을 준비해 다시 학교로 향했다. 오히려 편했다. 지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도 뻗친 머리는 마음에 걸렸다. 차를 주차 시키고 학교 정문으로 향하는데 교장 선생님이 보였다. 어쩌지? 내 머리는 뻗쳤고 옷은 거의 잠옷 차림인데.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점점 다가오셨다. 그러더니 눈을 마주치면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내가 세수는 했던가?
 “민호 아버지,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은 꾀죄죄한 내 눈을 마주친 채 온화한 미소를 지으셨다.
 “민호가 밝게 웃으면서 등교를 하더라고요. 참 밝아요.”
 등교하는 민호를 보신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면 교장 선생님은 등굣길에 거의 매일 정문 앞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시며 안녕 이라는 인사말을 아이들에게 건넸다. 곱고 맑은 피부를 지닌 모습도 좋았지만 난 교장 선생님의 그 웃는 눈빛이 좋았다. 지각을 겨우 면하고 준비물까지 챙겨가지 않았지만 아이가 웃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닦지도 않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민호가 씩씩하다는 말에 그까짓 내 몰골이야 중요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시했다.
 “민호가 웃었던 건 교장 선생님께서 항상 활짝 웃으셨기 때문일 겁니다. 웃는 얼굴을 보면 미소가 나오니까요.”
 
  교장 선생님을 처음 뵌 건 입학실 날이었다. 입학식장 표지판을 따라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학교 내부로 들어서던 날, 1층 입구에서 낯선 분이 인사를 먼저 걸어오셨다.
 “안녕하세요, 민호 아버님.”
 가끔씩 주변에서 모르는 분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던 때라 별다른 생각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 학교 교장입니다.”
 ‘교장’이라는 말에 다시 인사를 했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치 내가 1학년이 된 듯 나도 모르는 사이 고개는 90도 가까이 내려갔다. 사회에서 내가 어떤 대우를 받던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난 그냥 아이의 학부모일 뿐이다. 그 때에도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는 그 인상이 좋았다. 눈에 띈 건 교장 선생님이 입고 계신 빨간색 모자에 빨간색 코트였다. 입학식장에서 교장 선생님은 빨간 옷을 입은 이유를 학부모와 아이들을 마주보며 설명을 하셨다.
 “여러분, 교장 선생님이 빨간 색 모자와 빨간 옷을 입고 있지요? 전 빨강머리 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빨강머리 앤처럼 빨강색 모자를 썼고 옷도 이렇게 입었어요. 저는 여 러분들이 빨강 머리 앤처럼 씩씩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앤처럼 힘든 일이 있어도 기죽지 말고 씩씩하게 자라났으면 좋겠어요.”
 교장 선생님은 자신을 빨강머리 앤 선생님이라고 스스로를 불렀다. 책 ‘빨강 머리 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교장 선생님 덕분에 ‘앤’이 어떤 인물인가를 나중에 찾아봤다. 눈이 크고 하얀 얼굴에 주근깨가 있으며 머리가 빨강색이었다는 정도만 기억했는데, 줄거리를 찾아보니 앤은 어렸을 때 부모님 두 분을 열병으로 잃었다. 부모님이 없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앤은 밝게 웃으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었다. 빨강 머리 앤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읽은 날, 난 민호가 빨간머리 앤처럼 슬픈 현실 속에서도 가끔씩은 눈물도 흘리겠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기를 소망했다. 그 날부터 그 맑은 눈빛을 지닌 교장 선생님을 ‘앤 선생님’으로 기억을 했다. 교장 선생님도 앤처럼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특히 상대를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가 따뜻했다.

 

1989년 미국 심리학자인 캘러먼과 루이스는 서로 알지 못하는 남녀 48명을 모아 한 그룹은 2분동안 눈을 마주보게 했고 다른 한 그룹은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은 실험을 했다. 그리고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로 좋은 감정이 솟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할 때에도 나를 잘 쳐다보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아이가 더 예뻐 보였다. 본다는 것. 그리고 상대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는 건 상대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상대의 관심을 더 키우는 노력의 행동이기도 했다. 교장 선생님은 그랬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눈으로 대화를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앤이 씩씩하게 성장한 것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자라나기를 눈으로 속삭였을 것만 같았다.

 

민호가 준비물을 놓고 갔다는 말에 교장 선생님은 더 한 걸음 다가왔다.
 “이리 주세요. 제가 가져다 주겠습니다.”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자 다시 한 번 주라고 하시면서 내 손에 있던 쌀 주머니를 가져가셨다. 그리고 다시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시며 작별 인사를 하신 뒤 학교 안으로 들어가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근처 한 학교 담벼락에 써 있던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가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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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한다면서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머리로만 하는 사랑일 것만 같았다. 너를 위한다면서 밖으로만 머문 채 서로 마주볼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그 밖에서 머무는 건 너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일 것만 같았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보좌관들에게 평일 오후 6시 30분부터 2시간 정도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그 시간동안만큼은 대통령을 방해하지 않아야 할 신성한 시간으로 여겼다.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상대와 눈을 마주치는 시간을 갖는다. 대통령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가족들을 바라봤고, 교장 선생님은 등굣길에 나와 아이들과 눈을 마주보며 인사를 했다. 아이를 자주 보며 자주 웃자고, 그렇게 교장 선생님을 생각하며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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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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