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생을 기록한 초고를 받아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 책은 엄마의 생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함께 읽어야 할 사람은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을 펴내야겠다고 결심한 사람, 나중에 형제들이 비용분담을 할지 모르겠지만 비용을 들인 사람 또한 엄마 본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점이다.


초고를 읽고 엄마 인터뷰를 진행했던 작가님께 전화를 했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작가분은 더 보충해야되는 부분에 대해 짐작을 했을 것이다. 그 또한 본인의 아버지 삶을 기록하여 책으로 냈기 때문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엄마에게 내 친구가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그런지 초고에는 4명의 자식들 중에 아들이야기밖에 없었다. 같은 자식인데 엄마의 삶을 기록한 책에 본인 이야기가 빠져있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내가 제주에 오고 나서 엄마에 대한 부양과 여러 가지 물심양면의 지지는 누나들이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분을 직접 만나서 한번 더 물어봐야 했다. “혹시 누나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나요?”, “, 4시간 동안 이야기하면서 특별히 이야기는 없었어요. 어머니 인생의 굴곡에 대한 이야기가 워낙에 많다보니 조금 빠진 것도 같기도 하구요”, “작가님, 이 책은 엄마의 삶의 기록이긴 하지만 모든 가족이 읽고 나누는 책이라서 누나들 이야기가 반드시 들어가야 해요. 혹시 가능하시겠어요?”


작가님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엄마에게 누나들 이야기를 하나씩 다 듣고 정리된 초고를 누나들이 모두 모이는 추석 때에 짠하고 공개하려고 하였으나 여러 사정이 있어선지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추석 때 누나들과 집에서 일박을 할 수 있었는데 엄마의 기억의 책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난 며칠 후, 작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자식들 자랑을 술술 했다며 정리된 내용을 보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혹시나 딸들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지난 미팅에서 누나 세 명의 삶에 대해 작가님께 조금씩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잘 정리가 되었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정리된 초고를 캡쳐하여 누나들과의 단톡방에 띄웠다. 그 중엔 첫째를 아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엄마를 닮은 둘째에 대한 이야기, 셋째를 어렵게 얻은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었다. 누나들이 감동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이 누나들과 엄마의 감정의 벽을 허무는데 작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그 세대의 엄마들이 누구나 아들, 우리 아들하는 것처럼 내 엄마 또한 그러는데 유독 표현을 많이 하다보니 누나들이 싫어한다. 똑같은 자식인데 누구를 더 편애한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감정일 듯 한데 편애를 당하는 나 또한 마음이 편치를 않다. 엄마 곁에 있는 것은 누나들이고 실제 도움을 받는 것도 누나들인데 머릿속으로는 이해해도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내 작은 바램이 누나들에게 전달되었는지 단톡방에서 누나들이 처음 보인 반응은 엄마 삶에 대한 동정이었다. 엄마를 더 잘 모시자고. 누나들에게 기억의 책 발간프로젝트도 설명하고 내가 원하는 반응도 이끌어 내어서 기분이 좀 풀렸는데 초고 이후에도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첫 번째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엄마가 추가로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고 전화를 했는데 바로 친정 제사를 혼자 준비하며 고생을 많이 한 내용이었다. 멀리 읍내 장에 제사음식을 사서 걸어와 혼자 장만한다고 근 10년을 고생했다는 이야기. 엄마에게 이 부분이 참 억울했나본데 어릴 적 언니오빠들은 모두 공부하러 혹은 시집을 가서 대도시로 가고 혼자 남아 불쌍한 엄마를 도왔다는 맥락이다. 큰외숙모가 서울에 있어서, 교회를 다녀서 한 번도 제사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 이야기를 정리하여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는데 아내가 반응을 보였다. “자기는 어머니를 참 몰라요”. 아내의 이야기인즉슨 큰외숙모가 교회를 다녀서 제사에 안 온 것이 아니라 큰외삼촌과의 다소 소원한 관계 때문에 안 온 것이라는 이야기였고 이 모든 이야기를 엄마는 며느리인 아내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중간에서 내가 엄마를 잘 모르는 아들입장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한 사람의 책에 대한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되었다. 과연 엄마의 구술에 의존하여 책을 펴내는 것이 맞을까, 혹여 잘못된 구술이 가족 간의 불협화음을 만드는 건 아닐까라고. 하지만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역사책이 아니고 엄마의 삶을 본인이 되돌아보게 하고 자식들이 엄마의 몰랐던 면을 알게 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혹여 생길 수 있는 오해나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으려면 좀 더 가족의 범위를 넓혀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엄마 형제들을 전화인터뷰 해볼 생각이다.

 

<단톡방의 누나 반응.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누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을 많이했더랬다>


  단톡방 메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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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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