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어머니께서 전화를 걸어왔다. 안부를 묻는 인사도 없이 그냥 그렇게 다급하게 부탁을 했다. 목소리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막내 아들이면서 중학교 3학년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들은 중학교 생활을 힘겨워했고 그런 아들에게 다가가자 아들은 문을 소리내 닫은 뒤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안에서 문까지 잠가 버렸다. 문을 열라고 해도 아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분노의 목소리는 곧 슬픔으로 바뀌었다. 한참동안 그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5년 동안 많은 엄마들의 눈물과 슬픔을 가까이서 보았다. 언젠가 그 분들을 모두 한 자리에 초대해 지난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창밖을 보니 나무와 흙이 보였다.

 

//

 

하늘에서 씨앗 하나가 땅 위로 떨어졌습니다.

 

흙은 하늘에서 온 씨앗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외로웠던 흙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씨앗 때문에 웃을 수 있었고
누군가를 껴안는 행복의 의미를 하루 종일 느꼈습니다.

 

흙은 매일 매일 그런 씨앗과 이야기하고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씨앗에서
작은 싹이 나오더니 어느새
흙을 뚫고 나왔습니다.

 

흙은
땅 위로 올라간 씨앗이
자신과 멀어지는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자신만 바라보던 씨앗이
자신을 떠날 것 같던 두려움도 다가왔습니다.

 

흙은 온 몸으로 씨앗을 더 품었습니다.

 

하지만 씨앗은 이제 흙이 자신을 안아주는 게
따뜻하기보다는 답답했습니다.

 

흙은 더욱 세게 씨앗을 안았습니다.

그러자 씨앗은 흙을 거세게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흙은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론 속도 상했습니다.

나무 일러스트1.jpg

그런 흙을 바라보던
아름드리 나무가 말을 건넵니다.

 

“이젠 씨앗을 놓아주어야 해”

 

그러자 흙은 나무를 향해 소리칩니다.

“씨앗은 내 안에서 자라났어. 오랫동안 품었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씨앗이란 말이야”

“땅 위로 나가려는 씨앗을 막을 수는 없어. 그건 자연의 섭리야”

흙은 더 큰 소리로 나무에게 외쳤습니다.

“그건 고통이야. 여름엔 장맛비를 맞아야 하고, 겨울엔 거센 바람과 눈을 맞아야 한다고. 그런 시련을 맞느니 내 안에 있으면 포근하고 걱정할 게 없잖아.”

나무는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뒤 말을 이었습니다.

“씨앗은 자신을 누르는 흙의 힘을 이겨야만 땅 위로 오를 수 있어. 힘들지만 햇볕을 보기 위해 씨앗이 견디어야 하는 시간이야. 하늘과 햇볕을 보고 싶은 씨앗의 마음을 들여다봐줘. 씨앗을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이야”

 

“겨울에는 추워. 여름에는 덥고. 눈과 비는 너무 고통스러워.”

 

“가슴 아프구나. 씨앗이 겪어야 할 고난과 시련을 생각하니 속이 상하지. 그런 너의 마음이 무척 따뜻해. 걱정과 불안은 사랑의 크기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씨앗이 네 안에 있으면 포근하고 별다른 걱정이 없겠지. 대신 씨앗은 싹을 틔우는 새싹 친구들을 만날 수 없어. 파란 하늘과 지붕 같은 나뭇잎과 행진하는 개미들과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없어.”

 

흙은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흙을 뚫고 나와야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봄비 맞고 웃자라고 여름 비를 맞아야만 열매를 맺어. 가을 바람을 맞아야만 단풍 옷으로 갈아입고, 겨울 추위를 견디어내야만 새로운 잎사귀와 과일을 맺을 수 있는 몸으로 바뀌지.”

 

“걱정돼. 혹시나 그러다 좌절하고 슬퍼할까 봐.”

 

나무는 촉촉히 젖어가는 흙을 한참 바라보며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씨앗이 잘 자랄까?”

“응. 나를 보렴. 나도 씨앗이었거든”

흙은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 보는 느티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느티나무는 자신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흙을 향해 미소 지었습니다.

 

“씨앗의 힘을 믿으렴. 씨앗 안에 잠자고 있는 엄청난 생명의 힘을 말이야. 그 씨앗 때문에 많은 생명들이 행복할 거야. 그 씨앗의 힘을 믿어주렴”

 

///

 

그러고 보면 부모인 우리도 모두 작은 씨앗이었다.

나무 2.jpg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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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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