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일본인인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가 단독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외국에서 부러워하고 극찬하는 시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는 과학연구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기업에 도움을 주어야만 인정을 받는 분위기에

대한 걱정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과학 연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물론 적지는 않지만,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개개인 연구자들의 끈기와 장인정신과도 같은 노력으로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한국도 일본도 정부와 국가보다는

개개인의 시민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노벨상은 국가가 받은 것이라기 보다

50년 동안 한 연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뛰어난 시민이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과학교육,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어린이 논픽션 작가로 유명한 '이지유' 작가의 글을 잠깐 살펴보자.

좀 길지만, 과학과 창의성이란 점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왜 다른지 쉽게 설명해주는 글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이미 독립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스토리와

매력 만점의 다양한 캐릭터들, 그것을 게임의 세게에서 구현할 수 있는

아이티 기술과 프로그래밍 능력, 거기에 구글 어스를 만든 경험이 있는

프로그래머의 협업으로 '포켓몬 고'는 세상에 나왔다.

이 게임이 나오자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도 그런 걸 할 수 있는데!'

또는 '이미 했는데! 라든가, '우리도 뽀로로로 이와 같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라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불과 얼마 전 게임 방지법을 만들고

국민이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침을 튀기며 주장하던 이들이다.

어제 말 다르고 오늘 말 다르다. 이러면 곤란하다.

물론 우리도 저런 게임을 만들 수 있다.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캐릭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현실은, 없다.

이유가 뭘까? 정말이지 다양한 원인을 들 수 있는데

그 원인들을 부으면 깔대기를 따라 한곳으로 모인다.


우리는 놀 줄 모른다."                 - <창비어린이 2016.가을호> 중에서 -


오스미 교수도 어쩌면 자신이 연구해온 '오토파지'현상과

50년 동안 열심히 놀았던 결과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처음 현미경으로 단백질의 분해과정인 오토파지를 지켜보았을 때,

거기서 눈을 뗄 수 없을만큼 신기하고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한다.


이지유 작가의 말처럼,

저성장과 불경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

지금도 노벨상이 나오고, '포켓몬 고'가 나오고,

평범하고 흔해보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품질로 유일무이한 이미지를 얻은 기업들이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태어나는 배경에는 잘 노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크기변환_DSCN7075.JPG

16년째 일본에 살면서 갈수록 느끼게 되는 건,
일본인들은 뭔가 배우는 것을 참 좋아하는구나.. 라는 것이다.
어려운 과학연구까지 가지 않아도,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을
요리조리 분석하고 종합해서 자기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한다고 할까.

위 사진은 일본 텔레비젼 방송의 일기예보 장면이다.
비가 유난히 많이 왔던 9월을 맑음/흐림/비가 온 날로 계산한 그림이 인상적인데,
마침 가을 운동회 시즌에 맞춰 아이들의 공던지기 그림으로 날씨를 분류한 게 재밌다.
뭐든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심플한 그림과 꼭 필요한 정보의
방송이나 기사, 생활 팁, 같은 걸 일본인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9월 초 무렵에는 이 일기예보에서 '수박과 밤' 일러스트가 등장해
여름과 가을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이들과 저녁 먹으면서 아주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쉽고 재밌는 일기예보는 아이들이 날씨와 계절의 변화, 태풍이 오는 이유,
내일과 주말의 날씨에 대한 궁금증 등, 호기심을 가지도록 도와준다.
섹시한 언니들이 너무 많은 한국의 일기예보는
너무 어른들 중심 아닐까 하는 생각, 가끔 하게 된다.

크기변환_DSCN7115.JPG

실생활에 도움되는 새로운 물건의 개발, 편리한 도구나 기계의 발명,
뭐 이런 뉴스나 보도도 참 많다.
위 사진은 인공지능 탁구대를 소개하는 방송인데
혼자 탁구를 쳐도 기계가 상대를 해 준단다.
재밌는 건, 이 사람의 탁구실력과 수준에 맞춰 인공지능이 공을 던져준다는^^
그러니까 잘 못 치는 사람도 안심하고 칠 수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또 하나, 화면 왼쪽에 보면 일본 어느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자막으로 뜨고 있다. "쓰나미의 걱정은 없습니다." 라고 안내되고 있는데
큰 영향을 주는 지진이 아닐 경우엔, 방송을 중단하지 않고
이렇게 자막만으로 소식을 전달한다.
일본인들에겐 이렇게 매일 어느 지역에서든 자잘한 지진이 일어나고 있으니,
자연현상에 대해 민감하다고 할까. 예민하게 지켜보고 관찰하다 보니
관심이 가고 더 알아가게 되고, 피해를 대비하기 위해 뭔가 곰곰히 생각하면서
과학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더 커진 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본다면,
어떤 나라에 닥친 재난이나 어려움이 꼭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찬찬히 분석해서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 그런 계기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과학을 실험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가두지 말고,
요즘 우리 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해가는 힘도
시민들이 함께 키워가면 안되나?

청소와 정리정돈 붐이 일고, 삶을 심플하게 재정비하기, 엔딩노트의 보급 등은
거품경제가 끝나고 저성장, 대지진을 겪으며 스스로 반성하고 교훈을 정리해 얻은
일본 시민들의 생활 발명품이라 생각한다.
한국도 얼마전, 저소득층 아이들의 생리대 문제를 SNS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모든게 다 시민들의 힘이었다.

크기변환_DSCN7118.JPG

오스리 교수가 연구한 '오토파지'에 대한 설명을 방송으로 보는데
이런 얘기가 나왔다.
'오토파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생명이 시작되는 태아는, 처음엔 엄마를 통해 그리고 나중에 서서히
스스로 단백질을 분해하는 '오토파지' 기능을 갖추게 된다고.
전문가의 이 설명을 다 듣고난 사회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 몸 속 '오토파지'의 시작은 결국 어머니였던 거군요."

어쩐지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모성을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것도,
어머니는 이토록 위대하다 식의 예찬을 늘어놓는 것도
끔찍히 싫지만
그래도 인체의 기막힌 재활용 기능이 내 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 아이들이 이런 기능을 갖추게 된 시작도 내 몸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존재가, 그리고 여성인 나의 존재가
참 소중하구나 싶었다.
산적한 육아와 교육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것도
이런 인간의 존엄함을 잊지말고 하나씩 지금부터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생명에 대해 매순간 놀라고 신기함을 겪는 연속이다.
아이들과 함께 식물이 자라는 걸 지켜보고, 날씨가 변하는 걸 느끼고,
어느 순간 매미가 사라지고 귀뚜라미 소리 땜에 밤잠을 설치는..
나 혼자일 때보다 아이가 있어, 더 크게 느끼고 놀라게 된다.

다음 글은 오스미 교수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지금은 아이들이 자신의 호기심을 표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누군가는 꼭 지켜보고 있을 거라 믿고 도전해 보세요."

크기변환_DSCN5620.JPG

초등 2학년인 둘째가
요즘 보고있는 곤충 그림책의 한 장면이다.
여러 곤충들 틈에 남자 아이 하나가
그들과 같이 낙엽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있다.
감, 사과, 배가 나뒹굴고 있는 걸 보니, 가을인가보다.

곤충들은 이제 뜨거운 여름을 마무리하고
겨울 채비와 함께 자연 속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가 보다.
내년 여름이 될 때까지 좋아하는 곤충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울 테니,
저 남자 아이는 이렇게라도 잠시 얘네들과 함께 있고싶었던 게 아닐까.
아마 이 그림책 작가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마음이지 싶다.
일본인들은 이 그림책을 보고   '음, 곤충 덕후구나..' 하지 싶다.ㅋ

교육은 물을 바가지로 퍼붓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불꽃 하나를 붙이는 것이라 했다.
아이들이 가진 호기심의 불꽃을 꺼지지 않게 끝까지 지켜주는 것,
스스로 활활 타오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과학교육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좋아하는 대상에 흠뻑 빠져 한바탕 실컷 노는 것처럼
무언가에 빠져 보는 것.
과학공부 이전에 그런 삶을 한번만이라도 살아보았으면 좋겠다.

"쇠똥구리가 열심히 똥을 굴리면서 가는데,
어느 순간 그게 너무 맛있어 보이는 거예요.
정말이라니까요."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난 독후감을 이렇게 표현한 사람이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건, 어쩌면 그 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몰입을 가장 극대화시켜 경험하는 사람이란 뜻인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어떤 것에 호기심을 품고 있을까,

함께 지켜보고 이야기 나누는 가을이 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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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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