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아이와 살기,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미운 네 살,’ 미국에서는 ‘테러블 투(terrible two)’니 ‘트러블썸 쓰리(troublesome three)’니 하는 말들이 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일테다. 웬만한 건 말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으니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 하고, 아직 한참 어리면서 막상 어른들이 애 취급 하면 드러내놓고 싫어하는 시기. 가뜩이나 체력적, 정신적으로 지치는데 이런 아이와 매번 실랑이 하며 힘 뺄 수 없다.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뭐 거창하고 세심한 전략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저 양육자와 아이가 조금 더 편하고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집에는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적용해 온 여러 원칙들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 이런 원칙들이 몬테소리의 철학과도 맞닿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몬테소리의 저작을 여러 권 따라 읽게 된 이유도 바로 그런 유사점 때문이다. 미국에서 보육교사 자격증 과정을 준비하면서 여러 아이들을 만나보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 있는 지금, 우리의 원칙, 여러 유아교육 이론, 그리고 보육 현장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상황을 비교해보고 접목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육아 전략을 재정비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소개하는, 그간 우리가 지켜온 육아 전략 몇 가지.  


1. 늘 아이에게 말 걸고 이야기하면서 행동하기


01283501_P_0.JPG » 아기와 대화하기. 한겨레 자료 사진.아기 적부터 기저귀를 갈때나 씻을 때나 재울 때, 먹을 때, 병원에 갈 때 우리는 그때 그때 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이야기해주고 우리의 계획이나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임신 중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갓난 아이에게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말없이 옷을 갈아 입히고 기저귀를 가는 행위가 아이에겐 때로 매우 위협적일 수 있다는 대목을 접한 적이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이제 아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들과 계획된 일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따르는 데 능숙하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옷을 차례로 갈아입고 옷과 신발을 제자리에 넣어두고 손을 씻는 일련의 과정을 다 마친 다음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는 이제 외출하고 돌아오면 그에 맞추어 행동한다. 어떤 때는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아침밥을 먹으며 “오늘 뭐할까?” 하고 물으면 “오늘 아침엔 블럭을 좀 하고 그 다음에 놀이터 가서 놀거야” 하는 식으로 답을 하고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 그렇게 서로의 계획과 기대를 공유하면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에 맞추는 일을 줄이면 아이와 감정적으로 부딪힐 일이 줄어든다.
부작용이 있다면...눈 뜨자마자 그 날의 계획과 일정을 꼬치꼬치 묻는 아이에게 마치 비서가 일정 보고하듯 일일이 다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


2. 지시하기보단 협조를 구하기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기 보다는 협조를 구하는 편이 계획을 실행하는 데나 좋은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한창 제 의지로 무언가를 하는 데 의미를 두는 유아기의 아이에게 명령이나 지시는 잘 먹혀들지 않는다. 내게는 이게 좀 어려운데, 30년을 모난 말투의 소유자로 살아 온 나로서는 “~해 줄래?” 같은 부드러운 말투가 입에 잘 붙지 않기 때문. 그래서 찾은 방법이 하나 있다. 어느 책에서 일러주기를, 명령이나 지적질보다는 가급적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는 편이 낫단다. 가령 신발이 현관문 앞에서 뒹굴고 있을 때 “신발 올려놔야지!” 하면 명령조일 뿐 아니라 이미 아이도 알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는 지적질이기도 해서 아이에게 반감을 사기 쉽다. 그럴 때 “어? 신발이 현관문 앞에 뒹굴고 있네?” 하고 넌지시 그 상황을 묘사하는 편이 아이의 관심과 협조를 유도하는 데 더 낫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 이 전략을 써 보니 정말 그랬다. 아이는 바로 “아, 그러네. 잊어버렸다.” 하고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신발을 제자리에 올려놓는다. 부작용이 있다면…. 아이가 제가 하기 싫은 일을 엄마/아빠에게 시키고 싶을 때 바로 이 전략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 “엄마, 신발 좀 봐! 저게 왜 저기 있지?” 하면서 나의 협조를 강요(아 이 형용모순..!)하는 아이를 마주하면 대.략.난.감.


3. 짐작하기보단 관찰을 하고, 가르치기보단 본보기가 되기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무엇을 왜 원하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할 지, 아이에게 어떤 자극을 주어야 할 지 답이 나온다. 또래 다른 아이가 무엇을 할 줄 알거나 좋아한다고 해서 내 아이에게도 같은 것을 쥐어줄 필요는 없는데, 집집마다 같은 장난감, 같은 책을 갖춰놓고 있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남의 집에 갔을 때 하나의 장난감을 놓고 아이들이 서로 싸웠다고 해서 우리 집에 똑같은 장난감을 구비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같은 장난감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이유는 상황과 장소, 놀이 상대, 놀이의 흐름, 감정 상태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막상 같은 장난감을 사 줘도 집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일이 벌어지는 것. 남과의 비교, 혹은 육아서를 바탕으로 지레짐작해 ‘아, 우리 아이도 저걸 해 줘야 겠구나’ 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서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편이 가정 경제와 평화(!)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발달이나 학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집 아이들, 혹은 육아서와 비교하면서 똑같은 것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익힐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부모가 본을 보이면 힘도 돈도 덜 들일 수 있다. 특히 유아기의 아이에게는 ‘학습’에 해당하는 내용보다는 스스로 하기, 자기 관리/정리정돈, 실내/실외 활동시 필요한 여러 규칙 익히기 등 일상적인 내용을 반복적으로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작용이 있다면...아이 역시 부모를 자세히 관찰하며 배워 나가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무심결에 물건을 휘릭, 날려 던지거나 했다가는 당장 “그러면 안 되지! (우리 집에선) 공만 던질 수 있는데!” 하고 타박이 날아온다.


4. 재촉하기보단 기다리기

유아기 아이가 옷 갈아입기, 세수/양치하기, 방 정리하기, 안전하게 승/하차하기, 안전하게 걷기 등 일상 속에서 꼭 필요한 습관을 익히는 데는 상당한 시일과 노력이 든다. 그럴수록 항상 아이에게 기다릴게, 천천히 해, 하고 말하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서툴다고 해서, 혹은 시간이 없다고 해서 자꾸 대신 해주려 하거나 안전을 이유로 무언가를 못하게 하기보다는 뭐든 스스로 해 보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편이 좋다. 물론 처음엔 힘이 들지만,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아이는 많은 걸 혼자 해 낼 수 있게 되어 양육자로서 할 일이 조금이나마 빨리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나중엔 우리의 경우처럼 아이가 먼저 “나 이거 혼자 할 건데, 좀 오래 걸릴 것 같아. 기다릴 수 있어?” 하고 묻고 양해(!)를 구하는 신통방통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렇게 한 가지 과제를 하는데 충분히 시간을 들여 연습에 몰두할 수 있게 되면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아이가 그 과제를 완수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도움이 필요할 땐 말하라고 일러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가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때 충분히 혼자 해 본 다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늘 자신을 믿고 존중하며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게 해 주면서도 도움이 필요할 땐 즉각적으로 도와준다는 느낌, 그런 믿음을 쌓아가는 데 중요한 전략이다.


이렇게 죽 나열하고 보니 결국 이 모든 전략을 포괄하는 건 인내와 여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그래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의 엄마 아빠들에게 인내와 여유를 기대하는 건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인내와 여유가 정서적, 물리적 양육 조건에만 좌우되는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온전히 개별 주체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우리 어른들에 비해 무엇이든 서툴고 미숙한 존재라고만 여기면 아이에게 말을 걸고 협조를 구하기보다는 무조건 어른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고 지시하고 다그치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무조건 보호하고 사랑할 대상으로만 여기면 아이가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무언가를 대신 해주려 하거나 아이가 다치지 않는 편하고 안전한 길을 미리 찾아주려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고 오래되면 아이는 어쩌면 제 발로 세상 밖에 나가는 법을 영영 알지 못한 채 부모 곁을 맴돌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는 결국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는 존재. 그 첫 걸음을 우리는 유아기 아이와 살면서 목도하게 된다. 아이의 그 첫걸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존중하기, 그것이 유아기 아이와 살면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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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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