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면
같이 몽골 초원에 가서 3년 동안 살고 싶어요."



지난주에 엄마가 된 배우 탕웨이가
자신의 꿈을 묻는 질문에 한 대답인데
시원시원한 성격인데다 대륙의 엄마인
그녀다운 꿈이다 싶어 웃음이 났다.
원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몽골에서 3년쯤 살고 싶었는데
결국 해 보지 못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함께 해 보고 싶단다.

제.발.
꿈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꼭 이뤄봤으면 좋겠다.
남편이 한국인 영화감독이니, 배우 엄마와 어린 딸, 이렇게 셋이서
몽골에서 3년 산 경험을 육아 다큐멘타리 같은 걸로 찍으면 어떨까.
책으로 써 줘도 재밌을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에게
여행육아에 대한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여행육아라는 말이 흔히 들리는 걸 보니
점점 육아의 세계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이런저런 육아서가 너무 차고 넘쳐서 혼란스럽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좀 더 많은 엄마들이
다양한 육아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양적으로 왕성한 때가 있으면 언젠가는,
불필요한 요소들이 빠지면서 질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때가 올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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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여행을 좋아해
여행 중에 만난 게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된 우리 부부는,
2003년 큰아이가 태어나 백일이 막 되었을 때부터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생활비에 드는 돈 중에 우리 자신과 아이의 노력으로
대신할 수 있는 비용을 여행 경비로 오랫동안 모아오고 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 해에는
첫째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되겠다 싶어
시골에서 한달 살기도 해 보았다.
둘째가 내 뱃속에서 막 꿈틀거리던 2008년 여름이었다.

그 둘째가 태어나 초등학생이 된 2016년 올 여름.
우리 가족은 드디어 차를 버려두고
각자 배낭을 맨 채 하루종일 걷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일본의 동쪽과는 정서도 문화도 음식도 전혀 다른,
서쪽 간사이 지방에 다녀왔다.
첫째는 워낙 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해서 익숙한 지,
처음 가는 곳임에도 차분한 편이었는데
초등2학년이지만 아직 만7세인 둘째는 정말이지,
너......................무 좋아했다.

어느 집이나 막내들은 다 그렇듯이
애교장인이라 불러도 좋을 듯한 둘째는
자기가 보일 수 있는 온갖 언어와 몸짓으로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기쁨을 5일 내내 실황중계해 주었다.
사교육비에 쓸 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여행경비로 준비해온 고충을
둘째의 모습을 통해 다 보상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사교육비도 원없이 쓰고
여행도 마음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면 물론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될까.
가정마다 어떤 가치를 선택할지는 다 다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여행지가 어느 곳이든
여행육아는 남는 장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여행육아는 어른의 욕구와 아이의 욕구를

여행이란 틀 안 에서

가족이 동시에 해소하고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나절은 엄마아빠 취향의 문화 코스로 돌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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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완전 아이들 취향으로 테마파크로 돌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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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 할 것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감동하며 흡입하듯 먹는
여행지의 유명 음식들..
(여행 중, 이 때가 유일하게 서로 안 싸우고 사이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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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음식간판들을
앞다투어 발견하고 입맛을 다시며 거리를 걷는 재미..
이때만큼은 36도나 오르는 폭염을 잊었던 것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식욕 앞에서는 부모자식 모두 공평했다는 것..
새삼스럽게 확인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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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도 가족이 있어 좋구나 .. 싶던 나는

기차역에서 셀카를 찍던 젊은 20대 언니들의 여행스타일을 구경하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언니들, 가진 것 없어도 조금이라도 어릴 때 마니마니 여행해요..

맘속으로 폭풍응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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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가본 멋진 곳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맛나는 것도 먹고
느낀 것도 깨달은 것도 많은 여행이었지만,

내 마음에 가장 인상깊게 남은 장면은
어처구니없게도 둘째의 여름옷에 그려진 악어 그림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화장실을 다녀온 아이가
내가 앉은 자리로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아! 내 곁에 아직 저런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는 어린 아이가 있다니!'

머잖아, 이런 옷 창피하다며 쳐다보지도 않을 날이 곧 올텐데.
아무렇지 않게 입고 낯선 거리를 활개치듯 뛰어다니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눈에 습기가 가득..;
이 무슨 주책이란 말인가.
집에서는 그렇게 구박하고 잔소리친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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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7살에겐 꽤 힘든 일정이었을 텐데도

불평 않고 가끔씩 먹는 아이스크림 하나에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행복해하던 둘째.


이 아이 덕분에 이번 여행은 몇 배나 보람되고 즐거웠던 것 같다.

잔소리 대마왕이었던 엄마가 아이 옷에 그려진 그림 하나에

이렇게 감동하게 되었으니,

여행육아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가 아닌 엄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약효가 얼마나 갈 지는 모르지만, 뭐 어떤가.

곧 시작될 가을, 겨울 육아동안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험악해질 때마다

여행지에서 훈훈하고 아름다웠던 그 한 때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처방을 얻었으니.


이 글을 쓰고 있는 밤,

둘째가 갑자기 잠자던 방 문을 열고 나와 이런 말을 한다.


"귀뚜라미 소리 땜에 잠을 못 자겠어.."


아.. 아들아. 너를 어쩜 좋니.

너의 어린이 시절이 막을 내리기 전에

배낭이 마르고 닳도록 여행을 다녀주마.


엄마들이여,

유아기까진 전집 책 안 사도 괜찮아요.

거기에 들어갈 비용만 모아도 훌륭한 여행 여러번 할 수 있어요.

여행육아의 황금기를

이참에 우리 함께 만들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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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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