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아버지 생의 기록을 정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당시 누나들이 시큰둥했고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정리하는게 쉽지 않을 듯 해서 포기를 했는데 지인이 아버지 기록을 책으로 펴냈다. ‘기억의 책이라는 프로젝트인데 가족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주는 사회적 기업으로 올해부터 열심히 활동 중이다.


언젠가는 엄마의 이야기를 한번 담아보고 싶어서 농사이야기를 장장 한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여 팟캐스트로 내기도 하고 가끔 옛날엔 어떻게 살았는지 매일 전화로 물어보곤 했는데 이번이 기회다 싶어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저의 어머니 책을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가능하죠”. 지인이 새로 시작하는 사업을 돕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엄마의 마음속 이야기를 한번 듣고 싶었고 엄마 본인의 삶을 정리해보는 기회를 드리는 것도 좋을듯하여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제주에서 창원으로 찾아가 엄마와 나눈 구술을 정리하고, 가족들의 이야기도 참조하여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인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엄마와 창원 가족들에겐 비밀로 했다. 아내에게만 빼고.


누나들에게 비용을 분담하자고 제안을 하려고 했지만 엄마가 본인 책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누나들에게 꺼내버렸고, 누나들은 평생 고생한 이야기를 남들한테 해서 뭐하냐고 싸늘한 반응을 보인터라 비용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출판시장에 나오는 책이 아니라 가족들과 몇몇 지인에게 배포되는 작은 출판인데 시작부터 오해가 있었던 것이다. 본인 책을 내자고 제안을 하니 엄마는 안 그래도 요새 내 살아온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서 매일 저녁마다 조금씩 쓰고 있었다, 우야라고 했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싶었고 곧 구술의 날이 찾아왔다.


창원에서 아주 시골동네에 있는 우리 집주소를 지인에게 찍어준 날, 엄마는 아침 일찍 전화를 했다. “친구 온다는데 뭐를 좀 해주면 좋겠노. 촌이라서 먹을 것도 없고..”, “엄마, 친구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밖에 나가서는 못 먹을거 같고 엄마 점심 먹는거 같이 먹으면 안되겠나라고 했다. 엄마 목소리가 약간은 기대반 우려반으로 들렸다. 이런저런 생각에 전날 밤 잠을 못 이루셨다고 한다.


인터뷰한지 4시간이 좀 지난 오후에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잘 이야기해주셔서 구술을 잘 마쳤어요.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창욱씨 태어난 것이 참 기적 같더군요”, “, 잘 되었네요. 천천히 풀어주세요”. 엄마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친구한테 이야기 잘했다. 누나들이 엄마 힘들게 살았던 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조금만 이야기했다”. 지인은 다른 일정이 있어 해외로 향했고 엄마는 구술한 다음 며칠 동안은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더 이야기할 무엇이 있는지, 아니면 뺐으면 하는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3달이 지난 오늘, 드디어 초고가 내게 왔다. 엄마의 평생이 담긴 이야기, 비밀일기장을 들춰보는 느낌이기도 하고 나와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했다. 아무도 모르게 초고를 펼치고 엄마의 어린 시절을 읽어 나가는데.. 그 속엔 지금의 나이든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엄마(나에겐 외할머니)를 끔찍이 아끼는 한 소녀가 있었고 그 소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


내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고 나는 어릴 때 어떤 환경이었다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는데 왠지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설정이고 영화속의 주인공 같은 삶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엄마가 담담히, 혹은 눈물을 흘리며 4시간을 구술했을 생각을 하니 내 마음도 참 힘들었다.


한 사람의 생애구술을 책으로 내는 일이 6.25전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변한 가족의 어려웠던 역사를 담고, 옛날 마을 풍경을 그리며 자식들의 유년시절 추억을 되살리며, 어찌보면 서운할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회복해줄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자체가 한 권의 책인 만큼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엄마가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받았으면 한다.

    

<엄마책의 제목은 '고마운 삶'이다. 엄마는 누구에게 그토록 고마워했을까?>

엄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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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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