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초경을 맞았다. 그 한 두 해 전부터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 봉긋 솟아오르던 터였다. 다행히도 내게는 곧바로 생리대 사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엄마가 곁에 있었고, 그 때부터 내 서랍장에는 엄마가 사다 넣어주는 생리대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03937476_P_0.JPG » 첫 생리. 한겨레 자료.
 

종종 우리 집에 들러 머물다 가곤 했던 외할머니는 내가 생리 주간에 배가 아파 힘들어하면 맨스 왔나? 이리 온나하고 나를 불러다 배를 만져주곤 했다. 중고등학교 때 그렇게 많은 영어 단어를 배우고 외웠어도, 할매가 말하던 그 맨스가 영어로 생리를 뜻하는 ‘menstruation’이라는 건 고3쯤 되어서야 알았다. 그 단어를 처음 보던 날,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할매는 영어라곤 전쟁 피난길에 딱 한 번 썼다던, “I go Busan, baby two!”(나 부산 가오, 애가 둘이요!) 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영어단어를 아는 걸까. 그리고 이 단어엔 왜 women이 아니라 men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걸까. (나중에 알았지만 menstruation men[s]은 라틴어의 months[, 개월] 에서 온 것이다)

 

초경을 맞았던 그 때, 생리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까지 엄마가 알려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이런저런 책을 보며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날 같은 반 친한 친구가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도 초경을 시작했다고 알려왔던 것도, 그 전화에 대뜸 우와, 축하해!”하고 말해버렸던 것도, 아마 그래서일 거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분명 그 때 우리들이 읽은 책에서 생리는 그저 뭔가 신성하고 좋은 것으로만 포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도 이렇다 할 성교육 한 번 받아본 기억이 없으니, 초등학생 시절 시중에 돌아다니던 아동 도서에 생리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을 리 없다. 초경 이후로 생기게 될, 여성으로서 겪게 될 불편하고 아프고 불쾌하고 위험한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채, 그저 여성의 몸은 신비하며 생리는 축하할 일이라고만 말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생리를 하게 되면 반드시 필요해지는 생리대에 대해서도 나는 그저 엄마가 사다 주는 것, 엄마가 알려주는 것 이상으로는 알지 못한 채 자라왔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값을 지불하며 매달 생리대를 사면서도, 이것이 내겐 기호품도 사치품도 아닌 그야말로 생활필수품이라는 걸 별로 자각하지 못했다.

 

얼마 전 크게 화제가 되었던 생리대 관련 뉴스를 읽으며, 또 그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보며, 바로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에 무지하고 무감각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 않을 때에도 굶거나 생필품이 완전히 떨어지는 일을 겪은 적이 없다. 전화세, 전기세를 못 내 전화, 전기가 끊기거나 그럴 위기에 처하는 적은 있었지만, 휴지나 생리대가 떨어져 본 기억은 전혀 없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해외에서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는 경제적 여건 속에서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이곳에서 저소득/학생 가구의 일원으로 살면서, 그래서 자연히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시설에 빈번하게 드나들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생리대 가격이 저렴해지면 우리의 생활에, 또 나의 품위 유지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생리대와 탐폰을 즉시 구입할 수 있는 간이 자판기를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왜 이곳 사람들이 철마다 저소득/빈민 가구, 노숙인 쉼터, 청소년/여성 임시 보호소에 들어갈 구호물품을 모으면서 휴지와 생리대, 탐폰 등의 개인위생/여성용품을 빼놓지 않고 함께 넣는지도.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비록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겪게 되어 있는 일. 그런 일이 생리이고 그런 일에 필요한 물품이 바로 생리대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물품이 왜 이제껏 공공재로 인식/인정되지 못했던 걸까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생리는, 생리대는 공공연한 비밀, 그야말로 위스퍼의 대상이었고 여성들이 매달 겪는 실체와 무관하게 두루뭉술 좋은 느낌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이 이곳 미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미국의 운동 단체 <프리 더 탐폰스>(Free the Tampons)는 전국의 공중화장실에 생리대를 무료로 비치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에게 생리는 언제 어디서든 갑작스럽게 시작될 수 있는 일인 만큼, 집 밖에서 언제든지 생리대를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셸 오바마가 어느 연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에서도 빈곤층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구하지 못해 학교를 빠지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결국 생리대 접근권은 어느 누군가에겐 건강은 물론 교육의 기회를 얻고 잃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미국과 EU 회원국, 아시아 여러 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도 이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이 생리대/탐폰에 붙는 세금을 없애는 쪽으로 얘기되고 있지만, 이 문제는 민간에서, 기업에서 선심 쓰듯 후원하거나 보조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여성의 몸을, 나아가 여성이라는 인간의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나는 최근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 유튜브에서 소위 언니가 알려주는 생리 팁을 주제로 영상을 올리는 18세 영국 여성 브리아니(Bryony Farmer) 덕분이다. 브리아니는 손수 만든 면 생리대를 판매하는 일을 시작으로 생리대와 생리컵 사업에 뛰어들면서 생리 용품 사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을 제작해 함께 올리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초경 이야기와 생리 때문에 당황했던 경험, 피임과 피임약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내가 본 어느 영상에서 브리아니는 이런 것들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없는 다른 여자 친구들에게 특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브리아니를 보며, 나는 이것이야말로 여성 연대이리라 생각했다. 여성으로서, 언니로서,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나의 경험을 드러내 이야기함으로써 다음 세대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자신의 경험을 조금 덜 낯설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 말이다. 먼저 경험한 여성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포장하지도 숨기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들려주고 대응법을 일러주는 것.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 다음 세대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여성의 몸을, 여성의 경험을 조금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까지도

team-building-1381084_960_720.jpg » 사진 pixabay.com

이런저런 이유로 면 생리대를 쓰기 시작한 지 2. 나는 이제야 생리에 대한 나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 가고 있다. 임신과 출산, 또 그 이후에 이어진 피임약 복용, 복용 부작용을 차례로 겪어나가면서 비로소 내 몸의 생체 리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조금 더 깊이, 민감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남편과도 스스럼없이 생리 주기와 생리 전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면 생리대를 세탁/건조하는 과정에서 여성만이 겪는 이 특유의 일상을 남편과 아이에게 자연스레 내보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많은 엄마들과 언니들이 좀 더 나서주면 좋겠다. ‘매직이라고, ‘그 분이 오신다고 두루뭉술 말하기보다 드러내놓고 말하면 좋겠다. 포장하지도 숨기지도 않으면서 우리 딸, 아들들에게 이 일이 무엇을 뜻하며 왜 중요한지, 왜 이 일과 관련된 물품들이 공공재로 인식되어야 하는지 조금 더 세심하게 일러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다음 세대 딸 아이들이 건강과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보다 나은 사회에서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우리 딸들의 건강한 자아와 건강한 몸, 배울 권리를 위해 사회에 요구하는 것. 비록 내 아이는 다른 성별을 갖고 있다 해도 나 자신이 여성이기에 기꺼이 이런 요구에 동참하는 것. 그것이 우리 엄마들이 해야 할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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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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