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미래'


올해 들어 부쩍 자주 보고 듣게 되는 말이다.

입시와 취업을 둘러싼 현실을 쫒아가기도 벅찬데

이제 기계와도 경쟁을 벌여야한다니.

초등2, 중등1학년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교육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는 갈수록 난감해진다.


그래서 틈만 나면 현명하고 합리적인 조언들을 찾아보는데

그 중에 공감가는 이야기 하나를 발견.


"한국사회는 '돈'이외에 사회적 합의가 들어설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로봇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들을

만들어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높일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은

'뇌 전체를 골고루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다.

교육방향도 그 쪽으로 유연하게 변화해가야 한다.

이과적이면서도 문과적이고 예술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입시공부보다 더 어려운 과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나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40년 넘게 지켜보고

또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과학이나 수학 / 문학과 인문학 / 음악과 미술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한 아이의 내면에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가지 특정분야만 잘하기도 힘들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한가지 뚜렷하게 잘하는 걸 가지기도 어렵다는 것,

역시 맞는 말이다.

여러 교과목 중에서도 특히 예체능은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따로 돈을 들여서 배우지 않으면 익히기 힘든 분야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예체능 교육엔 기술이나 효과, 성과만을 너무 중요시하고

감상이나 정서,정신적인 부분을 소흘하게 해서 그런 건 아닐까.


누구나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느끼는

다양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자기답게 즐기고 표현하는 기회가 부족해서인 건 아닐까.

이번에는 큰 비용을 들이거나 틀에 박힌 학원교육을 거치지 않아도

예체능을 즐기고 잘 하게 된 실제 사례들을 함께 찾아보자.

당신이 아이들을 키우며 생활하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그렇지,

하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근데, 나는 어느나라든 주류의 육아와 교육이 있으면

그와 대비되는 육아와 교육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찾고 선택한 방법은 소수가 선택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의외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있는 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이 한 두 개라도 '성공경험'을 쌓도록 돕는게 좋다.

이런 경험들이 있으면 공부가 아닌 다른 영역에도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시험공부를 성실함과 책임감,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 등

자기조절능력을 키울 기회로 보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예체능 중 한 분야만이라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게 있으면

아이 삶 전체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건 어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 아닐까.

육아와 살림을 야무지게 해 온 중년의 주부가 슬럼프에 빠져있다,

남편이 선물해 준 카메라 하나로 요리사진을 찍다가 파워블로거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야기라거나,

멀리 갈 것 없이 요즘 우리 친정오빠가 딱 이렇다.


오십이 가깝도록

늘 친정부모님의 근심 1순위를 차지하던 오빠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운동으로, 일상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몸과 마음이 엄청 건강해진 건 물론이고 직장생활도 더 긍정적으로 하게 되었고

같은 운동을 취미로 가진 사람들과 동호회를 만들어

때마다 즐거운 일들을 기획하느라 바쁘게 지낸다.

가족구성원이 건강하고 의욕적으로 살아가면

자신이 그렇게 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안심시킨다.


아이들 삶에도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예체능 교육에선 일단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부터 줄여야 한다.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 피아노콩쿨에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답게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즐기고,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우선시해야 한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일단 아이들의 작품부터 구경해보자.


크기변환_DSCN5656.JPG

우리집 아이들이 다니는 일본 공립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그린
<명작 패러디> 그림이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따라 그린 그림인데
평범한 4학년이 그렸음에도 원작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전에도 여러번 쓴 적이 있지만, 일본 학교에서는 미술대회를 열거나
순위를 정해 상을 주거나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잘했든 못했든 같은 주제로 그린 반 아이 전원의 그림을 교실 뒷벽이나 복도에
전시해 둔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평가가 아주 없진 않겠지만
상벌의 결과가 별로 없는 점, 틀에 박힌 그림을 강요하지 않는 점 등이
아이들다운 그림이 많이 나오게 하는 이유인 것 같다.

크기변환_DSCN5657.JPG

같은 4학년 아이가 그린,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약간 어설픈 느낌이 드는데도 너무 초등스러운 그림이라
보는 순간 엄마미소가 저절로..^^

어설픈 대로, 정성껏 원작을 보고 열심히 따라 그린 아이의 모습이 상상돼

이 그림 앞을 지나가는 엄마들마다  "어떡해.. 너무 귀여워."를 연발한다.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 아이를 만난다면,

꼭 끌어안아주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나만 그런가.^^


크기변환_DSCN6719.JPG

위의 두 그림이 잘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공통점은 아마 잘 그리는 기술이라기 보다
대상을 자기 나름대로 성실하게 보고 집중한 결과가 아닐까.
미술을 잘 하려면 '관찰'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이건 과학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관찰, 집중 이런 것이
그 대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호랑이를 스케치한 위의 그림은 올해 중1인 우리 큰아이가 그린 것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은 이 아이도
실은 잘 그리는 기술보다는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큰아이는 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동물을 주제로 한 책들을 참 많이 읽었다.
각 동물의 특성이나 습성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그림에 반영되다 보니,
잘 그린 것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막 끝이 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쓴 노희경 작가가
90년대에 드라마를 쓸 때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는데,
자기가 쓰는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 사진을 자기 방 벽에 붙여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며, "잘 잤어?" "밥은 먹었어?" 라며 말을 걸었다고 한다.
아마 노희경이란 작가의 대단함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 관찰, 사랑..
이런 태도의 깊이만큼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글이 나오는 게 아닐까.
글쓰기의 기술 면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같은 시기에 조기종영으로 서둘러 막을 내린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그림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주변의 미술교육이 뭔가 문제있게 느껴진다면
먼저 그림을 그리는 주체인 아이, 혹은 당신의 내면과 태도를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잘 그려야 한다는, 평가받게 된다는, 어차피 인정받지 못할 거란 생각이
대상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고 있진 않는지.
대상에 대한 겸손한 마음과 태도,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의지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제대로 길러졌다면, 자주 많이 그려보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글쓰기가 그런 것처럼 많이 그릴수록 그림은 는다.
적어도 초등까지는 즐기면서 자주 그리는 연습,
그리고 좋은 그림책 많이 보기, 다양한 체험, 미술관 나들이도 좋다.
그리고 획일적인 기술을 배우는 학원보다 자기다운 표현력을 기를 수 있는
미술 관련 행사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술을 즐기는 것은 삶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그림에만 미술이 있는 게 아니니, 매일 먹는 밥상에서도 아침에 골라입는 옷에서도
우리가 걷는 길거리나 건물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길 수 있다면
훌륭한 미술교육이 아닐까.
혼자 하기 어렵다면 관심있는 이들과 함께도 해 보자.
아이들과 함께 미술 세계의 주변을 맴돌다보니,
그림엔 문외한인 나도 꽤 눈이 높아진 걸 느낀다.
알고 이해하고 즐기며 깨닫는 기쁨은 삶에 생기를 더한다.
미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는 자기 나름으로 길러온  관찰력과 집중력으로
과학이나 국어, 음악 교과에서도 제법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과적이면서도 문과적이고, 예술적인 사람이 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아이들을 키울수록 확신하게 된다.

집안 곳곳에 붙여둔 아이들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참 행복하다.
아이들 성장의 흔적같은 그림들이 일상의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걸 느끼며
나는 물감 대신 요리로 그림을 그려야 겠구나, 생각한다.
흰 양파와 단호박을 으깨 스프를 만들며,
흰색과 주황색 물감을 섞어 이쁜 오렌지색을 만드는 연상을 하기도 하고
아이 도시락을 싸며 아이가 도시락 뚜껑을 열 때
크레파스 상자를 열어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면
어떨까. 상상하며 반찬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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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체능 교육은
삶과 따로 분리해 두었던 영역을 허물어
우리 삶 곁으로 데려오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음악과 운동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려니 너무 갈 길이 멀다.
음악이야기, 운동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쓰기로 하고..

7월의 첫 주말,
답답한 일상의 짐은 잠시 내려놓고
온가족이 오붓하게
예쁜 저녁밥 나눠먹으며
미술을 즐겨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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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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