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아이들의 생리대 문제와

지하철 안전문을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19살 청년의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신발깔창이나 수건으로 생리대를 대신했다는 소녀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일이' 하며 놀란다.

아니, '생리대 살 돈이 없다'는 말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회용이 아닌 면생리대를 사서 쓰면 되지, 하는 말도 나온다.


면생리대를 종류별로 갖추기 위해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걸 세탁하고, 건조, 보관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어른일 경우, 자신이 사용한 면생리대를 관리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아직 어린 소녀들일 경우, 문제는 좀 달라진다.


언젠가 이효리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면생리대 사용을 권장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직접 써 보니 일회용에 비해 이런이런 좋은 점이 있더라, 소개하며

마지막에 덧붙인 말,


단, 면생리대는 꼭 밤에 혼자 빨아야 합니다.

세면대에 담가둔 걸 식구들이 보다 기겁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이효리의 일상에서는 귀여울 수도 있는 이런 일상이

비좁은 가옥구조에 사는 저소득층의 소녀들의 현실 속에서는

좀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른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면 생리대 관리를

아이들이 혼자 세탁하고 말리고 하는 과정을 잘 하기도 힘들 뿐더러

함께 도와줄 어머니나 성인 여성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더더욱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친환경이나 건강을 위해서란 말들이

가난과 연결지어졌을 때는 사치나 공허한 말이 될 수도 있다.


큰아이가 초경을 시작하고 나니,

이번 생리대 문제의 사회화가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가난은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아이들 중에서도 여자 아이들에게

더 민감하고 깊게, 불편함과 상처를 안길 수 있다.


빈곤층 소녀들에게 매달 중형 생리대 얼마쯤을 공급해야 한다는 보도에도

청소년기 딸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는 '그게 다가 아닌데..' 싶어 안타깝다.

생리 시작과 끝에 걸쳐, 또 체육시간이나 밤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다른 크기의 생리대가 필요한 점이나

위생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이라거나 심리적인 돌봄도 필요할텐데..


늘 어리게만 느껴지던 딸아이가 크고 나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이가 생리를 시작하게 되면,

엄마는 한 달에 두 번의 생리를 치르는 기분이 된다는 걸.

나 자신의 생리 한 번, 그리고 딸의 생리 한번.

달력에는 우리 둘의 그날의 날짜가 기록되고,

둘이서 번갈아 하다보면 한달의 절반이 다 지난다.

혼자만 쓰다 두 배로 늘어난 생리대 사다 채워넣기 바쁘다.


아직 어린 10대니, 조금 가격이 비싸더라도 소재가 좋은 걸 사야하지 않을까..

갓난 아기시절 매의 눈이 되어 기저귀를 고르던,

그때의 마음이 다시 부활하는 듯하다.

우리집은 그래도 딸이 하나니 이 정도지만,

둘 셋씩 딸을 키우는 집은 생리대 비용만 해도 부담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부쩍 많이 하곤 했다.

보통 가정에서도 이렇게 생리대를 둘러싼 비용과 부담을 무시할 수 없는데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겐 오죽할까.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생리대 뿐일까 - 라는

한겨레 신문기사 내용이 정말 와 닿았다.

생리대는 어쩌면 그 아이들 삶의 상징적인 물품일지도 모른다.

이번 문제가 화제가 된 것을 계기로

아이들의 삶과 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과 정서적인 돌봄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빈곤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일본은 최근,

빈곤 가정의 어린이가 전체 어린이의 1/6에 해당한다고 한다.

20년이 훌쩍 넘는 불경기와 저성장 시대의 영향으로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빈곤층이 형성된 탓이라 한다.

높은 이혼율로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늦은 저녁에도 혼자 밥을 먹거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밝힌 일화인데,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오며

아버지께 받은 매일 일정한 돈으로 스스로 세 끼 식사를 해결해야 했는데

사 먹는 것도 귀찮아서 과자를 한 상자 사다놓고 그것만 먹고 지내다

학교가는 길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음식을 사 먹을 비용이 있다 해도, 아이들에겐 건강에 도움될만한 식사를

스스로 선택하거나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돈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사먹을 수 있는 돈이 있다해도

아이들의 건강을 해칠수 있는 먹을거리를 차단시킬 수 있는

누군가의 판단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일본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형성되어 왔다.

그 결과, 최근 시민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움직임이 있는데

바로 <어린이 식당> 운동이다.


- 어린이부터 고교생까지는 무료로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곳.

- 혼자 밥을 먹는 어린이, 집에서 저녁을 먹기 힘든 어린이 누구나.

- 싱글맘도 직장맘도 아이들과 저녁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

- 식재료는 지역 가게들의 기부를 통해 비영리로 운영하는 곳.


올해 현재, 도쿄에만 수십 곳이 문을 열고 있는 이 어린이 식당은

어린이의 빈곤문제의 비상구가 되어줌과 동시에

지금의 사회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고 나누는 장이 되어주고 있다.


나는 이 <어린이 식당>시민운동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는데

이번에 드디어 우리 동네에서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지난주에는 이 어린이식당의 감격스런 첫 오픈기념식이 있었다.


크기변환_DSCN6668.JPG


숙제를 가져와도 괜찮아요

함께 놀면서 저녁을 먹어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따뜻한 국과 밥을 준비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가난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사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로와 희망이 되지 않을까.

도쿄의 한 어린이식당(가정집에서 여는)은 아이들이 원하면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욕실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우리 주변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몸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고 공평하게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돌봐주는 일은

우리 사회가 점점 나빠지는 악순환을 막는

작은 시작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 어린이식당이 시작된 날.

맛있게 저녁 한끼를 먹은 아이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다음번에도 오늘이랑 똑같이 만들어 주시면 안되요?

 밥, 국, 반찬 이렇게요."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매일 먹는 당연하고 기본적인 식사가

어느 아이들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부러운 것일 수 있다는 것.

세상에는 아직 이런 일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

내 아이와 엄친아들에게 향하던 시선을 조금만 더

낮고, 넓게, 펼쳐보면

조금 다른 삶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번 생리대를 둘러싼 시민들의 특히, 여성들의 공감대는

일단 생리대 가격인상을 멈추게 한 것 만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이럴땐, SNS의 발달이 참 고맙고 다행스럽다.

일본에 산 지, 16년이 되었지만 이 16년 내내 생리대 가격이

거의 그대로인데다 가격도 한국보다 훨씬 싸다.

한국의 생리대 가격과 연이은 가격인상에 어떤 다른 문제가 있는건 아닌지,

꼼꼼히 따져보는 시민들의 관심이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의 부당했던 경험과 내 주변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온라인을 통해서 발언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일만으로도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아이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의외의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

우리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의 경험담 한줄이, 댓글 하나가

기업들의 부당한 가격인상을 막고

지하철 안전문을 수리하는 청년들의 노동환경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그런 작은 실천들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좀 더

안전하고 희망적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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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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