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일이 별로 없는 요즘 뉴스들 속에서
유난히 빛이 났던 소식이 있었다.
한국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 상 수상!

오소희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번 수상 소식을 기뻐하며
한강의 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 어떤 과시함이나 칭얼댐 없이
한국 문학을 가장 공들여 직조해 온 작가가 있다면
바로,
그녀다.

한강의 글을 읽다 보면
한 자리에 앉아서
순도 높은 가루가 될 때까지
언어와 씨름하는 작가정신이 뭔지 알게 된다.

이미 우리 사회 속에 있던 보석들을
외부의 시선을 통해 이제야 관심갖게 된다는 게
늘 아쉽지만,
그래도 무척 다행스럽고 기쁘다.

무슨 일을 하든
작은 걸림들에 투덜대지 않고
환경 탓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분야에 집중하는 힘과 태도야 말로
진정한 재능이란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하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친이신 한승원 작가의 인터뷰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다른 작가들의 부인들은 자녀를 키울 때
작가의 길보다 더 성공할 수 있는 안전한 길로 가도록
일찍부터 '교통정리'를 했는데,
자신의 아내는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고 한다.
"가난한 글쟁이가 되는 것을 말리지 않은
우리 아내한테 감사한다."

글쓰기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 사회에서
한강의 맨부커 상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암울한 우리 출판 현실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과연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한달에 몇 십만원도 되지 않는 원고료로,
그것마저도 매달 일정하지 않는
직업의 길을 가는 걸 마음 편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

아이가 자라면서 특정한 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건 분명 반갑고 기쁜 일이다.
처음엔 그 남다름이 신기하고 부모로서 황홀한 기분을 맛본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란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글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공부든..
좀 잘 한다 싶어 한 발짝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다보면
각 분야의 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아이가 과연 여기서 돋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아이들이 동경하는 아이돌들의 세계만 봐도,
수많은 연습생들 속에서 데뷔를 준비하는 팀에 들어가는 것도 정말 어렵고
데뷔 준비를 오래도록 해도, 데뷔를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고,
어린 나이에 수많은 고생을 해서 데뷔를 했다해도 성공할 수 있는 건
극히 드문 몇몇에 불과하고, 거기서도 프로로 살아남는 건
더욱 더 극소수일 것이다.
연습생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가장 힘든 건,
어려운 연습 자체가 아니라, 지금의 노력과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닐까.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들의 마음도 참 답답하다.
뭐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적극적으로 밀어줘야지.. 아이가 많이 어릴 땐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아이가 갈 길을 선택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그게 또 그렇게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4등을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1,2,3등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듣지만
4등이 가진 애매함과 고민을 다룬 내용이라니, 무척 관심이 간다.
어떤 의미에선, 어떤 부분에서든 특별한 재능도 없고 잘 하는 게 없는
아이들에겐 4등만 해도 부러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한 분야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그것이 생업이 될 수 있으려면 더 잘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확신이 없는 어정쩡한 재능이면 어떻하나.
빨리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나은걸까,
좀 더 해 보는 게 나은걸까.

크기변환_DSCN6634.JPG

초등 고학년 때부터 부쩍 그림을 좋아하더니
중학교에 들어가고서부터 큰아이의 그림 실력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사진은 과학 수업시간에 아이가 그린 민들레 꽃 그림이다.
과학 교과 담당인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그린 동, 식물 그림이 가득한 공책을
반 아이들에게 큰 티비 화면에 비춰 보여주며 감탄했다고 한다.

크기변환_DSCN6635.JPG


과학 공책인지, 미술 공책인지 모를 정도인

아이의 각 교과 공책들은 국어에서 배우는 한자도, 영어의 알파벳도

문자라기 보다 그림들처럼 섬세하고 조형감이 넘쳐났다.


그렇다면..

아이의 미래를 미술 쪽으로 초점을 맞춰봐도 괜찮을까..

그런데 그건 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자신도 미술이 자신에게 꼭 맞는 분야라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훨씬 더 잘 그리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많다.

일본은 디자인 강국이라 그런가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큰아이의 절친 중 한 명만 봐도 알 수 있다.

연필만 잡으면 쓱쓱 즉석에서 어마어마한 그림을 그려낸다.

노력형인 아이들에겐 늘 동경의 대상인 '타고난' 아이들인 것이다.


이제 겨우 열 서너살에 뭔가 한가지 잘 하는 걸 발견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게 아니니

천천히 좀 더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면서

사춘기를 즐겼으면 좋겠다.


얼마전, 강남구 님의 글에서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며

한걸음씩 노력해 가면 된다던 글이 인상적이었다.

어른에게도 무척 위로가 되는 글이라 고마웠다.

근데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걸로 또 충분하다고도 생각하지만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아주 잘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은

그런 어정쩡한 재능이 생계를 받쳐주지 못 할 때,

그땐 어떡해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잘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자신이 만족하는 것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잘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으니까..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이

'순도 높은 가루가 될 때까지 언어와 씨름'한다 해도

작가 한강과 같은 성과를 모두가 낼 수는 없을 테니..


크기변환_DSCN6631.JPG


아이들과 공원에 갈 때면

커다란 나무 위에 손이 닿을 만큼 높은 정글짐 위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보곤 한다.


넓은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무얼 하고 살아야 나도 행복하고 세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그 하나를 발견해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 자체가 삶의 재능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을 한다 해도

만족과 기쁨은 잠시,

슬럼프는 찾아오고 이 길을 계속 갈까 그만 둘까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그런 과정을 수도 없이 겪으며 견디는 게 바로 삶이다.


이제 아이들이 마냥 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스스로 제가 갈 길을 선택할 만큼 크지도 않은

시기라 이런 어정쩡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무엇을 하든, 아이들이 10대까지는 마음껏 꿈꾸고 경험해 보면 좋겠다.

불안한 부모의 마음을 최대한 작게 접어 넣어두고

하루하루를 즐기며 사는 아이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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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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