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숙 님의 글 속에 등장하는, “육아가 그렇게 힘든가요?”라는 질문에 나는 단번에 이렇게 외쳤다. “!! 육아는 이렇게 힘들어요!!!” 라고. 최근 한 달, 굉장히 심한 무력감에 시달리던 터였다. 사물놀이 공연을 마치고 시커멓게 몰려온 허무함(뭐 대단한 게 아니었는데도 이런다), 매일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통학해야 하는 바쁜 학교 생활로 인한 피로도 큰 요인이지만 내 무력감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10초에 한 번 로 시작되는 질문을 던져대는,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재잘거리며 놀아야 하는 만 세 살 아이와 살아가는 이 엄마로서의 삶 그 자체다.

 

아이가 밤잠에 들고나면 나는 어김없이 심한 허기를 느끼는데, 그럴 때는 입 안에 우적우적 먹을거리를 우겨 넣어도 계속 허기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이건, 먹을 것으론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허기. 그 정신적 허기를 채워보고자 인터넷 서핑을 하며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아 주섬주섬 읽어보기도 하고, 별렀던 책을 펼쳐보기도 하고, 글을 쓰려 워드 창을 열어보지만 금세 피곤해지고 이내 짜증이 나서 집어 던지고는 미드나 한편 보고 잠자리에 들기 일쑤다. 학교를 가는 월화수목, 나흘간은 그나마 좀 덜한데, 학교를 가지 않는 금토일, 주말 사흘은 이 정신적 허기가 정말 극에 달한다. 저녁 시간과 일요일 오후 시간은 남편이 집에서 함께 아이를 보는데도 그런다.  

 

육아 4년차, 아직도 매일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잠과 밥에 관한 문제. 나는 고 3때도 밤을 새워 공부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수능 준비 막판에는 야자를 마치고 집에 와 11시에 잠들어서 4, 5시에 일어나 새벽 공부를 시도했지만 공부를 한 날 보단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반드시 7시간 수면을 취해주어야 다음 날 멀쩡히 살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제일 먼저 어그러진 게 바로 이 수면시간이었다. 기저귀를 떼기 전엔 얼른 기저귀 떼었으면, 했는데 기저귀를 떼고 나니 이젠 밤중에 쉬하러 가겠다고 일어나는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일이 참으로 성가시다. 잠들기 전 물도 마시고 미리 쉬도 하고 할 건 다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목이 말라~” 엄마를 불러대고, 새벽 세 시 한참 단잠에 빠져 있을 때 엄마, …” 이 아련하고 애절한 한 마디로 나를 소환한다. 조금 건조해지면 바로 기침을 콜록콜록 해 대고, KT쪽 다리가 조금 더워지면 바로 다리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니 불침번 서듯 졸다 깨다 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온다. 낮엔 나와 똑같이 아이의 충실한 노예인 남편이지만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하면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으니 밤중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차지다

 

밥은 또 어떤가. 요리를 못하는 엄마여서 이유식 때부터 아빠표 밥을 먹어 온 아이는 그 간단한 계란 볶음밥조차도 엄마가 해 주면 도통 먹질 않는다. 그것도 대놓고 맛없다는 말과 표정을 하면서. 이젠 말을 잘 하니 가끔은 정말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 밥 맛 없어. 엄마 요리 잘 못해라고. 아무리 내가 요리를 못하는 게 사실이라 해도, 면전에서 요리 못한단 타박을 듣는 게 기분 좋을 리 없다. 엄마가 한 밥과 반찬은 밀어내고 아빠가 고소한 참기름을 아낌없이 부어 비벼주는 계란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면 전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실은 자식 새끼 밥 먹는 것 보면 내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나다. 그래도 요리 실력에서 남편에게 뒤지는 게 못내 자존심 상해서 베이킹을 열심히 연마해 그나마 아이에게 점수를 따긴 하지만, 이거 뭐 세 살 꼬꼬마 점수 따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럴 땐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살지, 싶다. 밥 먹는 시간이 평화롭기라도 하면 또 몰라. 밥을 먹는 동안에도 내내 재잘거리며 말을 해대는 탓에 식탁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단 1초도 되지 않는다.

 

아이가 만 세돌 생일을 넘긴 뒤 내게 더 가열차게 주어진 과제는 다름아닌 아이의 왕성한 수다와 신체 활동, 지적 활동 욕구 받아 주기다. 생후 78일차에 시작된 뒤집기를 시작으로 아이는 모든 신체활동을 빠르게 마스터했는데, 웬만한 신체활동 부문이 다 끝나자 이제 엄청난 언어 활동이 시작됐다. 요즘 특히 이 부분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데, 10초에 한 번씩, ‘로 시작되는 물음을 던져대는 아이와 하루 종일 놀다 보면 정말로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간다. 아이의 호기심과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해지는 언어 표현을 보며 경이로워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10초에 한 번 냐고 묻고, 그에 대한 대답에 다시 를 붙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의 질문 공세에 파묻히다 보면 어느새 나의 대답은 산으로 가고 있고, 내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다. 이를테면, 비 오는 날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흘러간다.

 


엄마, 비 왜 와?”

, 공기 중에 물기가 많아져서 물이 땅에 떨어져서 그래

왜 떨어져?”

무거우니까

왜 무거워?”

그러게, 왜 무거울까?”

 

(10초 후)

 

엄마, 비 맞으면 안 돼?”

, 안 돼.”

왜 안 돼?”

감기 걸리니까

왜 감기 걸리면 안 돼?”

..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못 먹게 되니까

왜 아이스크림 못 먹어?”

감기 걸렸는데 아이스크림 먹으면 기침을 더 하게 돼.”

왜 기침 더 해?”

그러게. 왜 그럴까?”

 

(10초 후, 다시 로 시작되는 다른 물음 세트 시작..무한 반복…)

 

놀이도 어쩜 꼭 대화를 다 받아내야 하는 역할놀이만 골라서 하는지, 병원/시장/부엌/퀴즈/소풍 놀이에 숨을 데도 없는 이 작은 원베드룸 아파트에서 밤마다 숨바꼭질도 해야 한다. 특히 이 언어/신체/지적 활동의 복합체가 내게 너무도 힘겨운 이유는, 아이와 나의 성격이 거의 정반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혼자 책 보고 노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어서 이렇게 수시로 놀이를 바꿔가며 다양한 활동과 말을 해야 하는 아이와 하루를 보내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힘이 든다. 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지, 왜 잠시도 혼자 놀지 않고 꼭 같이 해야 하는지, 왜 잠시도 조용히 있지 않고 쉼 없이 말하고 노래하고 (그것도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거나 섞어 쓰면서) 춤춰야 하는지, 평생을 정적인 사람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그래도 남편은 본인도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바깥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나만큼은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 나처럼 아이와 성격이 반대인 경우 육아는 때때로 고통스러워진다. 그럼에도 아이이기 때문에, 더욱이 내 아이이기 때문에 그저 참고 견디며 함께 놀고 말을 받아줄 수 밖에 없다. 때때로 즐겁지만, 종종 괴로워하면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말하고 노래하고, 발바닥이 아프도록 나가 놀고 춤추며 보낸 하루의 끝에 나는 어김없이 끝없는 공허함과 정신적, 지적 허기를 마주한다. 아 대체 이 생활은 언제쯤에나 끝나는 걸까.

 

얼마 전 학교 영어 시간에 글쓰기 과제로 독립선언문 쓰기가 주어졌다. 미국 독립선언문 전문을 읽은 다음, 각자 현재 자신의 삶을 속박하고 있는 무엇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속박의 상태를 통제하고 있는 누군가를 설정해 미국 독립선언문을 패러디해서 글을 써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단번에 이 독립선언문의 청자를 만 세 살 내 아이로 삼았다. ‘의 인간적 권리에 대해 변호하는 전문(preamble) 10가지 불만사항, 그리고 마지막 결의문을 써 내려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그리 힘이 들지도 않았다. 마지막 결의문을 쓸 때는 어떤 희열마저 느껴졌다.

 

따라서 이제 여기 나는 너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것을 선언한다.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방금 내린 따끈한 커피 한 잔을 온전히 마실 수 있는, 

그런 휴식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너를 네 아비에게 온전히 맡기고 자유의 몸이 되련다.  

이 지긋지긋한 노예 같은 엄마 노릇에서 벗어나련다. 

오, 이 달콤한 자유여, 

영원하라!


하, 이 엄마의 독립선언문이 현실이 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엄마의 날(Mother's Day)인 오늘, 

나는 언젠가 독립할 그 날을 꿈꾸며 다 식어빠진 커피 세 잔을 매 끼니마다 들이켰다. 

아이가 만들어 온(=보육 선생님이 만들어 준) '엄마의 날 카드'를 들여다보며, 

가만히 조용히 소리쳤다. 

"오 그 달콤한 자유여, 어서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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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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