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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바쁘게 3월을 보내고 나니 4월이 온통 푸릇하다.

컴퓨터 앞에 매달려 이런 저런 문서 작성하고 글을 쓰다 고개를 돌리면

창문 넘어 보이는 산자락이 아스라한 연두빛으로 물들고 있다.

마당은 여기 저기 노란 민들레 꽃이 환하고 앵두꽃이 벌써 벌어졌다.

그래.. 봄이구나. 시내보다, 도시보다 한참은 늦게 오는 우리 마들이

비로소 봄에 풍덩 빠졌구나.

 

마당 있는 집에서 살게 된지 5년째, 어둑신했던 내 눈도 조금씩 밝아졌다.

풀인지 달래인지 구별도 못하던 내가 이곳 저곳 조금씩 무리 지어 자라난

달래싹을 알아보고, 화단에서 돋아나는 둥글레 새순을 반기거나, 뒷마당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는 쑥과 돌나물을 기다리는 것만 봐도 참 기특하다.

 

자연속에 살다보니 계절을 기다려 맛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진작부터 쑥부침개를 기다렸다.

봄에 돋는 어린쑥으로 부친 부침개의 향긋한 맛을 기억하는 것이다.

딸들은 진달래 화전을 만들 수 있는 진달래 꽃이 뒷산에 피어나길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 때가 온 듯하다.

 

올 봄에는 처음으로 망초나물을 해 먹었다.

눈에 띄는 어느곳이나 피어나는 풀이라 너무 흔해서 관심도 없었는데

망초나물이 좋다는 말을 듣고 오신 친정엄마가 마당에서 한가득 캐서

다듬어 주고 가셨길래 삶아서 무쳤더니 아주 맛있는 나물이었던 것이다.

꼭 시금치 같아서 아이들도 잘 먹었다.

내년 봄엔 망초 나물도 기다리게 생겼다.

해마다 새로 만나는 맛이 있다니

참 멋진 일이다.

 

봄맛.jpg

 

tv에 나오는 방랑식객은 봄철에 기운이 없을때 겨울 지나고 돋아난 움파로

국을 끓여 먹으면 힘이 번쩍 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윗밭에 올라가 움파 잎을 뜯었다.

지난 겨울 김장거리 수확할때 제일 시들하고 볼품없어 그냥 놔뒀던 파들이

겨우내 숨 죽이고 있다가 살아나서 끈적한 진액을 잔뜩 품은 통통한 움파가

되어 있었다.

멸치 다시마 육수에 무를 썰어 넣고 움파 잎을 계란물에 풀어 듬뿍 넣고 끓였더니

정말 달큰하고 맛있는 국이 되었다.

환절기에 기침하던 아이들도 맛있게 잘 먹었다. 남편도 뚝딱 비웠다.

나를 위해서도 끓여 먹었다. 진하고 달달한 움파국...

돌아오는 봄마다 챙겨 먹어야지.

 

봄맛4.jpg

 

윗밭에 있는 부추밭에 새 싹이 돋기 시작할때부터 첫 수확을 기다렸다.

겨울 지나고 돋아난 첫물부추는 약성이 워낙 좋아 남편도 안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봄 비 푹신 지나고 나서 밭에 올라가보니 실같이 가늘던 부추들이 쑥쑥 자라났다.

어찌나 이쁘고 대견하더지 쓰다듬으며 살살 거두었다.

첫물부추를 듬뿍 넣고 오이를 무쳤다. 알큰하니 맛있다. 몸을 따듯하게 하고

독을 없애주는 부추... 첫물부추는 알뜰하게 다 챙겨 먹어야겠다.

 

봄맛2.jpg

 

잘 익은 김장김치도 물려갈 즈음이라 무를 썰어 석박지를 담궜다.

멸치, 다시마, 무, 대파를 넣고 우려낸 국물에 찹쌀풀을 쑤어 액젖과 고춧가루

, 마늘, 새우젓, 매실액을 넣고 버무렸는데 아이들이 맛있다고 야단이었다.

대파대신 마당에서 캐낸 달래를 넣어 만든 석박지다.

처음 해보는 거라 자신없어서 조금만 만들었는데 한개 두개 집어 먹는 아이들

때문에 식탁에 올리기도 전에 절반이나 사라졌다.

무김치를 싫어하는 필규까지 모닝빵을 반 잘라서 석박지를 끼워 먹으며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고기를 좋아하고 짜장면과 라면을 너무나 애정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엄마손맛을 사랑하니 고마울 뿐이다.

 

봄맛3.jpg

 

요즘, 쪽파가 한창 나오고 있다.

알알한 쪽파로 파김치를 담궜는데 필규의 요청때문이었다.

커가면서 마늘장아찌나, 파김치 맛을 알게 된 필규는 엄마표 파김치를

아주 아주 사랑해준다.

라면을 끓여서 파김치와 같이 먹을때, 너무 행복해한다.

사춘기 녀석이 파김치를 사랑해주니 열심히 레시피 뒤져가며 애를 쓸 맛이 난다.

톡 쏘는 매운맛 사이로 젓갈의 감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파김치..

환절기에 시들시들한 몸을 번쩍 깨어나게 하는 봄맛이다.

 

저녁에는 쑥부침개를 수없이 부쳐서 온 가족이 맛나게 먹었다.

조금 있으면 돌나물로 물김치로 담글 수 있겠다.

민들레도 무성해지니 민들레 겉절이를 만들 날도 머지 않았다.

계절을 기다려서 먹을 수 있는 봄 맛이 마당과 밭에 넘쳐난다.

 

무디고, 둔하고, 어설픈 내 솜씨도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계절의 맛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오래 기다린 맛들이 반가와서

바쁜 시간 쪼개 밭으로 달려간다.

어린 쑥도 캐고, 부추도 뜯으며 두릎나무의 새순은 언제 나올지

뽕나무의 새순은 또 언제 나올지 설레이며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 밭에는 겨울 지나고 다시 살아나 힘차게 벋고 있는 딸기 새싹이

한창이다. 비닐하우스가 키워낸 딸기는 거의 먹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딸기맛은 땅에서 햇빛받고 바람 맞으며

자라나 익어서 맛보는 그 새콤하게 진한 맛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입에 넣을 수 있는 바로 그 맛을 기다리며

아이들은 매일 딸기밭을 둘러보러 간다.

 

돈 주고 사서 먹는 맛이 아니라, 기다리고 고대해서 느끼는 맛..

계절이 담뿍 들어 있는 그런 맛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런 봄날엔 살아있는 것도 고맙고, 생명있는 것은 다 이쁘다.

 

봄이다.

맛보고, 느끼고, 새 힘 채워서 한 계절 기쁘게 감사하게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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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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