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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졸업했다.

기분같아서는 태극기라도 걸고 싶었다.

내 나이 마흔하고도 일곱에 맞이한 첫 아이의 첫 졸업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은 잠시 다녔고, 유치원은 안 갔던 아들이기에 공식적으로도 이번 졸업이

처음이다. 나이들어 결혼해서 늦게 아이를 낳아 키운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의

졸업식은 처음이었으니 참으로 우리 가족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날이라 하겠다.

 

무슨 거창한 역경을 딛고 일어선 학업도 아니고 대단한 사연도 없지만

제도권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2년만에 나와서 다시 들어간 초등대안학교에서

4년의 배움을 마치고 맞이한 졸업이다보니 이날만 생각하면 한참전부터 울컥하곤 했다.

13년전 입학식에서 기쁘고 자랑스런 마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던 기억과, 2년 후 쓸쓸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그 문을

다시 나오던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로 옮긴 후 4년동안 필규는 성큼 성큼 자랐다.

학교 공부는 늘 질색이었지만 책을 엄청 읽고, 레고에 매일 빠져 있고

만화와 영화에 열광하고 방과후엔 야구에 빠져서 살았다.

그 사이 작고 귀엽던 아들은 코 밑이 거뭇해지고 키는 나보다 한참 더 커버린

상남자가 되어 버렸다.

그 아이가 졸업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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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있었던 졸업식은 후배들의 공연으로 문을 열었다.

졸업하는 네 명의 선배들의 학교 생활을 상황극으로 꾸며 노래와 연기로

보여주었는데 좋아하는 일엔 열심이고 해야할일엔 늘 시큰둥했던 필규 흉내를

내어 남편과 함께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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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4년간의 학교생활을 담은 사진들이 영상으로 흘러나올때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어리고 눈물많던 아들의 모습이 사진속에서 고스란했다. 이렇게 작았던가..

이렇게 귀여웠던가...  그 세월이 어느새 흘러갔구나..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서 연신 눈물을 닦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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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졸업생이 나와 준비해온 졸업 소감을 읽었다.

졸업식날 아침 방바닥에 엎드려 뭔가 적었던 필규는 역시 평상시 모습 그대로

짧은 글로 간단한 소회를 마쳤다.

 

필규 졸업 5.jpg

 

네 분의 선생님들이 네 명의 졸업생들에게 각각 졸업장을 수여하고 아이들 모습이

담긴 앨범과 동생들이 만든 한지 꽃다발을 안겨 주셨다.

졸업장은 동생들이 나무에 인두로 글씨과 그림을 새긴, 세상에서 하나뿐인

것들이다. 지난해 선배들의 졸업장을 만들며 부러워하던 필규는 이번에는 주인공이 되어

후배들의 정성이 담긴 졸업장을 받았다.

더불어 그동안 아이의 성장을 지켜본 선생님으로부터 따듯한 조언과 느낌도 들을 수 있었다.

 

졸업생 부모가 나와 졸업소감을 전해주는 시간도 있었는데 나는 준비해온 글을 읽기도 전에

눈물을 터뜨렸다.

내 육아 인생에 처음 맞는 첫 아이의 첫 졸업이다보니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쳐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범벅으로 소감을 마쳤다.

나중에 들어보니 필규도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이나 울음을 참느라

얼굴에 힘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그래... 우리 둘 다 모두 애썼지.. 그동안...

 

필규 졸업 6.jpg

 

마지막 순서는 졸업생들의 공연이었다.

아이들은 '혜화동'가사는 졸업에 맞추어 바꿔 불렀다.

여학생 두명이 기타와 우쿨렐레로 반주를 하고 필규는 오카리나로 전주와 간주를

했다.

- 오늘은 같이 지내던 6학년들이 졸업을 하네

좀 있으면 멀리 학교 간다고

덜컹 거리는 버스를 타고 활터 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얻고 살아 왔는지 -

 

감사하게 고맙게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다. 이곳에서의 생활동안

많은 것을 누리고 얻었던 시간들을 아이들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식이 끝난 후에는 재학생 엄마들이 한가지씩 마련해 온 음식들로

맛있고 훈훈한 식사 시간이 있었다. 작년까지 나도 이런 준비에 참여했지만

이번엔 대접받는 입장이 되어 넉넉한 사랑을 누렸다.

졸업하는 아이들을 위한 정성과 배려가 가득한 따스한 잔치였다

 

필규 졸업 7.jpg

 

선생님들이 주시는 선물과 졸업생 선배들이 안겨준 선물들까지

두 손 가득 선물을 안고 필규는 졸업식장을 나왔다.

늘 동생들과 야구를 하던 잔디동산도 인사를 하고

귀여워하던 고양이들과도 인사를 했다.

 

4년간 초등대안학교 학부모로서 뒷바라지 하느라 많은 애를 썼던 내 생활도

이제 지나갔다. 3월부터 필규는 도시속에 있는 작은 중등대안학교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다.

멋진 선배들을 벌써부터 동경하고 있는 필규는 새 생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배움은 더 깊어지고 어려워지겠지만 필규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커서

마음이 놓인다.

이젠 어디서든 제 몫을 다 하며 잘 해낼것을 믿을 수 있다.

아프지 않고 잘 커준 것이 제일 큰 선물이다.

 

초등의 날들은 아이를 키우는데 가장 큰 변화와 성장이 있는 시간이었다.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좋은 시간들이었다.

부모로서 우리도 13년간 많이 배웠다.

그 사이 아들은 든든한 친구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같이 가는 길들은

한층 더 좋을 것이다.

 

모든 부모에게 첫 아이는 영원한 첫사랑이다.

이 아이와의 일들은 뭐든 처음이기에 아마도 죽는날까지 그러할것이다.

첫 아이, 첫 졸업..

그리고 첫 중등의 날들...

좋구나.. 언제나 처음이니...

 

초등과정을 잘 마쳐주어서 고맙다.

앞으로도 잘 해 낼거라는 것을 안다.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제일 큰 행복이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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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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