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알게 된 <뽀로로와 노래해요>라는 동영상 속에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가사가 등장한다. “착한 어린이는 울지도 않아요, 누가 누가 뭐라 해도 하하하 웃지요.” 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뽀로로에 관심이 빨리 떨어져서 아이가 그 영상을 더 이상 찾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 전에 이 동영상을 볼 때면 일부러 이 노래는 건너뛰거나 듣는 내내 아이 옆에서 구시렁거렸다. 그때 그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저 한 소절뿐 아니라 사실 가사 전체가 다 내 귀에 거슬렸다. 다쳐도, 친구와 싸워도 하하하 웃어야 착한어린이라고 설파하는 내용이라니. 어린이는 꼭 착하기만 해야 하나? 착한 어린이는 장난도 안 친다고? 장난을 안 치면 그게 어린인가? 삼십 년 전 나 어릴 적 가사라면 또 모를까, 요즘도 이런 식의 가사가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고 표현하는 것, 특히 가정 내에서 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런 감정적 소통을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내 감정은 무시되거나 인지조차 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기질 탓에 나는 평소 감정 기복이 다소 있는 편인데, 그런 내게 엄마는 왜 잘 놀고 들어와서는 괜히 짜증이야!” 하고 다그쳤다. 그리고 주로 안 힘들지? 괜찮지?” 하고 묻던 아빠는 나의 힘듦을 알아채지 못하고 늘 그렇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때마다 나는 이해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서운했지만, 엄마 아빠는 서로간의 문제로 힘들다는 걸 이미 어릴 때부터 알았기에 나를 알아달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런 일들이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결과, 나는 감정을 숨기는 버릇이 들어버렸다. 마음을 다쳤을 때 그걸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해 말과 표정이 삐죽대기 일쑤여서 연애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힘이 들었다. 표정이 좋지 않아 사진 찍히는 것 마저 극도로 싫어했던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부터야 겨우 드러내놓고 울고 웃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 내게 케이티가 왔다. 나는 이 아이를 나와는 다르게 길러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많이 웃고, 많이 울고, 화 나고 짜증 나는 기분, 즐겁고 좋은 기분 모두 그때 그때 충분히, 깊이 느끼고 마음껏 표현하며 살아가는 아이로 길러내고 싶었다. 평범한 아이였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아이는 KT 때문에라도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감정 변화를 더 많이, 더 자주 겪을 수 있는데 그걸 무시하거나 모르고 싶지 않았다. 모른 체 하는 것이 더 나은 순간이 있으리라는 것도 알지만, 그런 순간에라도 아이가 겪는 그 감정의 파고를 알고 함께 넘어가면서 모른 체 하는 것과 전혀 알지 못한 채 아이 혼자 넘게 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임신 중에도, 또 출산 후에도 내가 아이를 돌보며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 이 감정과 관계되는 일인데, 요즘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생각한대로 잘 자라주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든다. 울 때도 짜증 나,” “싫어,” “슬퍼,” “아파하고 자기가 왜 우는지 말로 표현해 내고, 오랜 외출 끝에 집에 들어오면 침대 위를 뒹굴며 집에 와서 좋아하고 말하는 아이 덕분에 아이의 기분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어 좋다.

 

물론 이렇게까지 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이 과정이 힘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24시간 밀착 돌봄노동을 해왔기 때문에 아이의 감정 변화를 쉽고 빠르게 감지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아이가 격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예상될 때 미리 그 상황을 설명해 아이가 심리적으로 부담을 덜 가지게 하고, 아이가 실제로 그런 감정 상태에 빠졌을 때 그것에 대해 너무 과하게,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은 사실 아이가 생후 1, 2개월 때부터 큰 병원에 여러 차례 다녀야 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채혈을 해야 할 때, 레이저 시술을 해야 할 때, 다리 치수를 재야 할 때, 마사지를 할 때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늘 이야기 해 줬다. 그리고 아이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면 그저 말 없이 쓰다듬어 주었다. 아팠지, 힘들었지, 짜증났지, 하고 상황에 맞을 법한 감정 상태를 짐작해 가면서.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이는 오래 울지 않고 안정을 찾았다.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아이가 마침내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일이 한결 쉬워졌다. 아이가 놀다가 짜증을 부리면서 팔다리를 뻗어 휘저어대면 거기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각 감정에 맞는 이름을 일러줬다. 그러자 아이는 마침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직접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이 때 아이가 가장 먼저 내뱉기 시작한 말은 마음이 왔다가 갔다가 해였다. 유모차를 타겠다고 해 놓고 금새 내려 걷겠다고 할 때, 혹은 놀이터를 가겠다고 해 놓고 다른 방향으로 몸을 휙 돌려 걸어갈 때,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해? 엄마도 자주 그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어느 날 갑자기 행동이나 말을 바꾸고 싶을 때 엄마, 마음이 왔다가 왔다가 해하고 말했다. (왔다갔다, 가 아니라 왔다왔다, 라는 요상한 말이 되어버리긴 하지만.) 그리고 아빠가 7주간 집을 비웠던 지난 여름, 아이는 문득 “(아빠가 없어서) 슬퍼하고 말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블록을 갖고 놀다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 흩뜨리면서 짜증나!”하고 말하기도 하고, 뭔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오면 , 이제 마음에 들어!”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짜증나고 슬프고 힘들 때는 엄마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업어달라고 청해 스스로 기분을 달래려고 애쓴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림책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기 때 자주 꺼내 보던 <무지 무즈>(Moosey Moose)에는 긴 바지를 못 찾아 화가 난 무지 무즈가 바닥에 벌러덩 누워 떼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이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코 평수를 한껏 넓혀가며 온 바닥을 뒹굴어대며 씩씩거렸다. 그리고 아침부터 동생이 짜증나게 굴어서 심통이 난 벨라 누나의 이야기(My No, No, No Day)를 보면서 우리는 아이들이 짜증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상황—(어제는 잘만 먹었던) 계란이 (오늘은 갑자기) 싫어서, 쿠키가 부서져서, 옆집 할머니가 동생만 챙기는 것 같아서, 치약에서 치약 향이 너무 강하게 나서을 배웠다. 마지막에 벨라의 엄마가 누구에게나 그렇게 별 것 아닌 일로 짜증이 나는 날이 있다고 속삭여주는 장면을 보며 나도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 엄마도 그럴 땐 화가 나.” 하고


MooseyMoose_p010-011.jpg

<무지 무즈>(Moosey Moose)의 한 장면


 

그래서 나는, “착한 어린이는 울지도 않아요같은 가사에 내 아이를 물들이고 싶지 않다. 착하든 아니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울 일, 울고 싶은 일을 겪게 마련이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지 못하면, 화가 날 때 그 화를 받아 줄, 들어 줄 상대 하나 없이 혼자 속으로만 삭이면 마음에 깊은 병이 든다는 걸, 나는 내 어릴 적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옆에서 잠든 엄마에게조차 드러낼 수 없어 이불 속에서 숨죽여 눈물만 흘리다 잠들던 그 숱한 날들에 누구든 내게 다가와 괜찮다, “소리내어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더라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내 감정을 숨기고 억지로 꾸역꾸역 사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타고난 몸 때문에, 때때로 심하게 아프게 될 그 몸 때문에 언제라도 깊은 슬픔과 외로움, 분노와 고통을 겪게 될 아이이기에, 나는 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그에 따라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리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당할 때, 다리 때문에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극심한 통증에 힘겨울 때, 다리 때문에 사람을 잃고 다리 때문에 사랑을 잃게 될 때.. 나는 아이가 마음껏 울고 실컷 화내는 과정에서 자기 마음을 잘 다독이는 법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 마음을 함께 나눠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 아빠가 곁에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울어도 돼. 아이도 어른도, 누구든 울고 싶을 때가 있는 거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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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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