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0019.JPG » 금방 만든 레고작품이나 과자 속에 들어있는 조그만 장난감을 늘어놓는 곳. 집안 곳곳 장난감들이 비집고 들어앉아 있다.

 

어느덧 새해다. 연말 정리목록이 매듭지지 않은 채 또 새해로 이월됐다. 우리집의 시급한 정리목록은 바로 장난감. 우리집에는 장난감이 넘쳐난다. 그중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건 내 장난감이고, 그 다음이 앙큼군 장난감이다.

   

내 장난감은 바로 책, 사용빈도로 따지면 공간 비효율은 더 커진다. 회사일에 육아에, 지원군도 없이 버티는 일상에서 책 읽기를 여유롭게 하기란 쉽지 않다. 사놓고도 책등만 관람하는 책도 많다. 그렇다고 언젠가 보겠지 하는 미래형 취미를 위해 책공간을 그대로 두자니 한 공간에 사는 가족이 희생을 치러야 한다. 굉장한 독서광이 아닌 이상 지금으로선 정리하는 게 맞다는 데 동의한다.

 

책에서 나는 냄새가 좋아서였나, 책을 한두권씩 들고 들어오다 보니 어느샌가 집안의 모든 벽면을 차지하게 됐다. 집안은 백제 무녕왕릉 무덤처럼 전축분이 됐다. 아주 끔찍한 일은 책을 모아온 15년새 이사를 7번이나 했다는 것이다. 거의 2년꼴 이사였고, 이 집에선 2년째 살고 있다. 집없는 서울살이는 참으로 한곳에 뿌리박기 어려웠다. 부동산 거품기에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기에, 살고 있던 집이 툭하면 팔려나가는 불운이 2년마다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집없는 이가 책 욕심을 부린 것 자체가 중죄였다. 외국인 노동자를 끼고 1팀씩 이룬 이삿짐 아저씨들께 그간 참으로 못할 짓을 했다. 나에게는 그저 이쁜 책들이지만, 이 분들에겐 뼛골 빼는 짐짝이 아닐 수 없었다. 책짐 때문에 단내나는 일수를 뛴 방글라데시 일꾼 아저씨께 너무 미안해 남편은 남는 컴퓨터 모니터를 챙겨드린 일도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뭐니뭐니해도 십수년을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남편이다. 그는 그동안 무던히도 참았다…… 터졌다…… 참았다…… 터졌다 하다 최근(이미 지난해가 됐다) 최후통첩을 했다.

 

이대로는 못살겠어! 난 깔끔하게 살고 싶어! 이 집에서 내 공간은 저 방 책상 하나밖에 없어. 보지도 않는 많은 책들 때문에 공간이 안나잖아. 애 방도 책짐 때문에 쓰레기장이 됐고, 거실도, 안방도, 내 방도, 베란다도, 모두 책으로 가득 찮잖아. 언제까지 치울거야? 최소한 이 거실 한 벽 분량은 다 버려.”

 

알았어. 연말까지 버릴게.”

 

휴우, 결국 연말까지 못치웠다. 괴로움이 쌓이고 쌓여 격하게 터져 나온 말에 나는 그러마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멋진 인테리어는 하지 않더라도 휑한 빈벽이 주는 비움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게 한 것으로 미안하다. 다만 버리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책에 대한 애착과 추억과 미련을 걷어내는 심적 부담은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자꾸 지연시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올 때도 1천권가량을 이미 헌책방에 보냈다. 대학때 전공책, 대학원 전공책, 미디어 관련책(신문사 근무한다는 이유로), 소설, 역사, 생태, 예술서 등은 살아남았지만 이제 그런 구분도 무의미한 시점이 됐다. 당시 그 분량을 줄이는데도 한달쯤 걸렸다. 정리한답시고 들쑤셔져 엉망이 된 기간동안 나는 수시로 시달렸고, 깔끔한 남편은 너저분한 그 상태가 괴로워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남편은 얼마 전 ESC 지면에서 소개한 정리 꿀팁’(1. 가진 물건을 다 꺼내라 2. ‘수납 지도를 그려라 3. 포장을 뜯어라 4. 수납용품을 들이지 마라 5. ‘살 빼면 입을 옷은 따로 모아 보관하되, 한 계절이 지나도 못 입는다면 정리하라 6. 모든 물건에 제자리를 만들어라 7. 수량의 상한선을 정하라 8. 블로그 따라하지 마라 9. 이름표를 붙여라)을 어지간히 지키고 사는 사람이다. 특히 모든 물건에 제자리를 잘 지킨다. 나는 그중 하나도 못지키는 정리치에 가깝다. 그러니 싸움의 절반은 정리문제, 나머지 절반은 앙큼군 밥상머리 편식문제다.

 

IMG_0018.JPG » 앙큼군이 아끼는 변신로봇들. 갖고 놀 때마다 새로 산 기분을 느끼려 언제부턴가 상자를 버리지 않고 있다.

 

앙큼군의 장난감은 엄마 책에는 비할 바가 못되지만, 내 책과 함께 상승작용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아기때 장난감을 수시로 치워왔음에도 아직도 만만치 않은 분량을 자랑한다. 타요 텐트, 나무블록, 듀플러 블록, 기차놀이 세트, 또봇, 미니특공대 로봇, 헬로 카봇, 터닝메카드, 헝겊인형, 미술도구, 가베 세트, 보드 게임, 퍼즐, 다트, 자동차, 레고 시티 시리즈그리고 많은 어린이책들. 앙큼군도 엄마를 닮았는지, 제 물건에 애착이 상당히 강해 도무지 버리려 들질 않고 누구를 주는 것에 대해서도 질색을 한다. 아기 때는 몰래몰래 치우거나 나눠줘도 곧잘 잊어버려서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갈수록 기억력이 좋아지니 그 물건 어디 갔냐고 추궁하는 날이면 집안은 일촉즉발 상태가 된다. 아기 때 동영상은 그래서 보여주지 못한다. 동영상에는 장난감이 꼭 하나씩 등장하는데, 그게 어디 갔냐고 졸라대기 시작하면 그 끝은 버럭 제압뿐이다.

 

장난감이 너무 많아.jpg 언제나 유쾌한 데이비드 섀논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이주혜 옮김/나무상자, 12000, 2015)를 본 앙큼군은 그 결말에 굉장히 흐뭇해했다. 정리할 장난감을 어렵게 골라 상자에 담았던 스펜서는 이렇게 외친다.

엄마 말이 맞아요! 전 장난감이 너무너무 많아요. 하지만 이 상자만은 버릴 수가 없어요!”

장난감을 하나하나 상자에 담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앙큼군. 스펜서가 상자 내용물을 다시 엎어 방바닥에 늘어놓자 이제 됐다는 듯 하하하하하하며 방바닥을 굴러다닌다. 장난감을 다 쏟아부은 스펜서는 빈 상자 우주선을 타고 신나게 우주놀이를 한다. 엄마는 멘붕되건 말건.

 

이 책은 웬만한 집이면 벌이고 있을 장난감 전쟁을 실감나게 그렸다. 장난감을 지켜내려는 아이의 마음과 하나라도 더 없애려는 엄마의 마음이 팽팽하게 맞서다 아이의 어이없는 행동에 툭 끊어져 버리고 와하하 그냥 웃지요 한다. 언제나 아이 편인 듯한 작가 섀넌의 장난감 묘사가 볼 만한데, 장난감들은 모두 걸어나와 장난걸듯 개구진 표정들을 갖고 있다. 앙큼군은 그림책 속 장난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워한다.    

 

스펜서가 장난감이 얼마나 많냐면, 방바닥에도 가득, 옷장에 빼곡, 침대 밑에서 빽빽, 계단을 따라 거실까지 장난감이다. 뒷마당에는 큼지막한 것들이, 욕조에도 조그만 친구들이 있다. 동물원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동물 인형, 군대를 만들 만큼 많은 움직이는 사람 인형에 교통기관 박람회를 방불케 할 비행기, 기차, , 작은 트럭과 자동차. 악기놀이 세트, 미술도구, 퍼즐, 소리나는 책 등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이 준 장난감에다 생일에 친구들이 준 장난감, 햄버거 가게에서 준 장난감, 유치원에서 준 장난감, 병원에서 준 장난감 등등 정말이지 너무너무 많다.

 

레고조각이 발에 밟히고 기찻길에 넘어지고 급기야 골칫덩이가 된 장난감. 엄마는 싫증 난 장난감을 골라 상자에 담으라는 최후통첩을 한다.

 

장난감 전부를 상자에 넣을까? 아니면 일주일 동안 텔레비전을 안볼래?”

 

장난감 몇 개를 정리하는 협상은 눈물겹다. 스펜서는 더러운 토끼 인형도, 몇 년동안 안갖고 논 외계인 닌자도 다 안 된단다. 음매 아줌마는 살아남고  괴물 장난감, 꼬마 인형 등이 협박에 못이겨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달걀모양 해적을 정리할 땐 쿨하다. 엄마가 의아해하니, 그건 아빠장난감이란다. 입씨름 끝에 겨우 정리한 장난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토이 스토리> 앤디의 토이처럼 스펜서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는 함께 할까? 아니면 다른 상자에 넣어 버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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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순
일찌감치 결혼했으나, 아이 없이 지낸지 13년. ‘룰루나 행성’에서 꽃을 키우며 지내던 앙큼군은 우주 폭풍을 만나 어느날 지구별로 떨어졌다. 아이가 없는 집을 둘러보다 우리집으로 왔다. 어딜 가나 엄마들한테 ‘언니’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늙은 엄마’이지만, 앙큼군은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다행이야”를 달고 사는 여섯 살 소년으로 자랐다. 곰팅맘은 현재 한겨레 편집 기자이며, 책과 지성 섹션에 어린이청소년 책을 소개하는 기사도 쓰고 있다.
이메일 :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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