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이 11.jpg

 

아홉살 아들이 드디어 방학을 했다.

드디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에서 해방되었다.

그동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세 아이를 깨워 옷 입히고 차 태워서 아들이 다니는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일을 해 왔었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아이들은  깨워도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막내는 그 바쁜 와중에

젖을 찾고, 더 자고 싶은 둘째는 자고 싶다고 징징거리고, 서둘러야 할 큰 놈까지

동생곁에 다시 누워 버리니, 겨울 아침에 아들 학교 보내는 일은 온 마을에 내 목소리가

쩌렁 쩌렁 울리는 일이곤 했다.

그래서 아들의 방학이 무엇보다 반가왔다.

 

그러나...

 

아들의 방학으로 엄마인 나는 특별 근무가 왕창 늘었다.

학원도 학교 프로그램도 전혀 없는 아들의 긴 겨울 방학동안 아들은 그동안 엄마에게

서운했던 것을 몽땅 받아낼 심산인 모양이다.

두 여동생은 매일 엄마 곁에서 놀고 저 혼자 학교 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큰 불만이었으니

이제 저도 엄마 곁에서 매일 매일 신나게 놀고 싶다는 것이다.

그거야 본인 맘대로 하면 되는 일이지만 아들은 엄마가 두 여동생들을 돌보는 것 처럼

자기도 돌봐주기를 원하니 문제다.

동생들 책 읽어주고 있으면 제 책도 읽어달라고 가져오고, 동생들이 안겨 있으면

저도 안아 달라고 매달리고, 밥 먹으면서 막내 반찬 심부름하면 '저도요'하며

밥 수저를 내미는 식이다.

보통 아홉살이면 이미 졸업했거나, 제 스스로 할 일들을 어린 두 여동생을 둔 큰 아이는

아직도 엄마인 내게 기대한다. 안 해주거나 네가 해라고 말하면 저만 차별하고, 저만

사랑하지 않는다며 펄펄 뛴다.

 

큰 아이가 막내 였다면 이런 일들이야 오래전에 끝났겠지만 늘 저보다 한참 어린

여동생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큰 아이는 매사가 서운하고 불공정하고 저만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

이웃에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있는데 그 집은 모두 연년생이라서 필규보다 어린

막내도 큰 누나들 따라 모든 것을 척척 해 낸다. 연년생들은 그게 가능하더라.

그러나 아래 동생과는 네 살, 막내와는 무려 일곱살이나 차이 나는 우리집에서는

큰 아이는 항상 억울한 모양이다. 막내를 업고 있으면 저도 업어달라고 매달리니...ㅠㅠ

 

너는 이미 컸고, 큰 오빠고, 곧 열살이 된다는 것을 누누히 얘기해도 먹히지가 않는다.

'또 그 소리예요?' 하며 버럭 성을 내고 만다.

게다가 두 여동생은 아직도 엄마가 같이 놀아주어야 하는 나이이다보니 큰 아이도

동생들과 함께 '숨바꼭질'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둥글게 둥글게'를

하며 방안을 빙빙 도는 것을 너무 너무 좋아한다.

이리하야 결혼 10년차가 되어 가는 나는 10년 째 아이들 꽁무니를 잡으러 쫒아 다니고

구석에 웅크려 눈감고 숫자를 헤아리고 아이들 손 잡고 방안을 춤추며 돌아다니고 있다.

나이 마흔 둘에 젊게 살고 좋겠다고 하겠지만 아들이 이 놀이에 끼면 강도가 달라진다.

두 여동생들은 살살 해줘도 좋아 죽지만, 아들이 끼면 세배 네 배 센 강도로 해 줘야

만족을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동생들은 몇 번 해주는 시늉 하고 은근슬쩍 그만두어도

만족해하지만  큰 아이는 제 성에 찰 때까지 수없이 해 달라고 요구하니

놀이가 노동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강도 높게 잠깐 몸 날려 놀아주고 집안일 하러 돌아서면 온갖 원망이 날아든다.

나도 정말 억울하고  힘들다.

 

거기에 펑펑 집에서 놀면서 맛난 반찬 내놓으라, 특별 간식 해 달라, 오늘은 탕수육을

해 먹자 등등 까다로운 요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마치 그동안 저만 학교 다니느라 힘들었으니 방학기간 동안은 모두 보상받겠다는 듯 하다.

단독 주택인 우리집은 한 겨울 나기가 제일 힘든 일이라 살림하는 일도 훨씬 어려워지는데

힘든 집안일을 도울 생각은 안 하고 (음식물 쓰레기좀 밭에 버리고 오라고 시키면 춥다며

펄쩍 뛴다. ) 놀고, 먹고, 뒹굴 생각만 하고 있으니 내 얼굴엔 주름이 더 는다.

 

아이들 낳은 후론 늘 살림만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방학이 새로울 것은 없다.

아이들이 모두 내 품안에 있는 것이 좋기도 하다.

눈이 많이 내리면 신문도 잘 안 오고 집 앞 길로 차도 잘 못다니는 우리 집에서

종일 우리는 지지고 볶으며 하루를 산다. 날이 좋으면 마당에서 눈썰매도 타고

친구라도 찾아 오면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힘을 내야지.

큰 아이가 엄마 찾고, 놀아 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짜피 어린 동생들이 있으니 조금 더 힘을 내 보는 거다.

이참에 슬슬 사춘기가 시작되려는 큰 아이와 끈끈한 정을 더 많이 나누는 것도 좋으리라.

결혼 10년 간 띄엄 띄엄 세 아이 낳은 엄마는 여전히 늙을 새가 없다.

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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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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