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오디션 프로를 보며

육아의 힌트를 얻곤 한다.

수많은 가수 지망생들 중에 TOP10을 가려내는

모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가,

얼마 전에도 귀가 번쩍 열리는 말을 듣게 되었다.


실력있는 한 참가자을 두고

두 심사위원이 나누는 심사평을 들을 때였는데,

처음보다 두 번째로 부른 노래가 더 나아지고 늘었다며 칭찬하는 이에게

다른 심사위원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라, 점점 지."


요즘 들어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육아와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표현해 준 듯한 이 한 마디에

무척 놀라면서도 공감이 갔다.


큰아이가 이제 해만 바뀌면,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고 보니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게 참 많다.

좋은 육아는

아이에게 없는(결핍된) 부분을 부모가 채워주려 애쓰기 보다,

아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란 생각이 점점 더 강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치, 가을이면 노랗고 빨갛게 변하는 나뭇잎들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 나뭇잎의 색깔이 변하는 이유를 설명한

과학책을 읽으며 무척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온통 초록색으로만 보이던 나뭇잎이,

계절이 변하면서 전혀 다른 색으로 변하는 건,

전에는 없던 색들이 새롭게 생겨난 게 아니라

이미 나뭇잎의 세포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색들이

그제서야 나타나는 것이라고.. 


초록색이 노랑, 주황, 갈색 등의 색소 층을 덮고 있어

햇빛량이 많은 봄과 여름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실이

당시의 어린 나에게는 무척 신선하고 놀랍기만 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뭇잎이 때가 되면 그 속에 품고 있던 본연의 색들을 드러내는 것처럼,

아이들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자신 본래의 색깔과 매력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울까.


자연의 순리에 맞춰 서서히 자라기 힘든 요즘 아이들에겐

자기가 본래 가진 색이 어떤 빛깔로 나타나는지 지켜볼 여유가 없으니

그게 참 안타깝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를 볼 때만큼은

왠지 '희망'이라는 단어가 자주 생각난다.


타고난 재능과 개인적인 노력 때문이긴 하겠지만,

수많은 참가자들 중에서 자신만이 가진 실력과 매력으로 빛이 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야무지고 독특한 아이들이 세상 곳곳에는 아직 많구나.. 싶다.

30,40년 전의 노래들을 자기다운 감성과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부르는 그들의 노래를 듣노라면,

우리에게 새로운 세대가 필요한 이유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좋은 음악기획자가 좋은 가수를 알아보듯

좋은 편집자가 좋은 작가를 발굴하듯

부모들도 아이가 가진 본연의 성향과 재능이 잘 나타나도록

꾸준히 지켜보고 격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세대에겐 없었던, 진화된 감성과 지혜를 가진 아이들이
세상을 더 새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아이의 뇌를 완성시키는 것은

조기 지능계발 프로그램이나, 고가의 사교육이 아니라

부모와의 끊임없는 관계라고 한다.


우리를 둘러싼 육아현실이 만만치않은 건 사실이지만,

이 어린 사람들과 하루하루 쌓아가는 끊임없는 관계 덕분에

가을날 나뭇잎이 물들어가듯,

그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슈퍼스타K7에서 개성있는 세 명이 함께 부른, 홍이오의 <가을이 오면>.

그리고 현역 아이돌인, 샤이니의 온유가 히든싱어에서 부른 <그대와 영원히>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30년 전의 이문세 버전 그대로도 충분히 완벽하다 싶었던 노래들이

이렇게도 세련되게 진화될 수가 있구나 싶다.

가을 거리에 쌓여가는 색바랜 나뭇잎들을 보며 듣는

새로운 세대의 재능들이 너무 반갑다.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멋지게 자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13살과 7살, 이 아이들의 저 어딘가에 숨어있다

언젠가는 서서히 나타나게 될 그 순간을 지켜보고 싶다.


육아는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이 잘 나타나도록 도와주는 것.
요즘, 오디션 프로는 나에게

생생한 육아 참고서가 되어주고 있다.^^



DSCN561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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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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