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노키드'라는 내게 “아기를 꼭 가져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사람들은 엄청나게 날 축하해주겠지? 가족들은 놀라서 기절하지 않을까? 맏손주를 기다려오신 시부모님은 혹시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는거 아니야? 이 모든 생각은 전부 깡그리 나만의 착각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리는 작업을 마친 뒤에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인생을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괜히 내가 눈치보며 사는 것일 뿐!

 

 곤란이 011.jpg » 이미 언니의 두 자녀를 돌봐주고 있는 친정 엄마는 나와 여동생의 잇단 임신에 축하와 함께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댁 역시 동서와 시누이가 모두 둘째를 임신했으니, 양가는 바야흐로 '손주 홍수'의 시대다.
 

 

"그래, 축하한다" 오잉? 그게 끝?

 

임신 사실을 양가에 알리는 일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다. 여기는 다시 차 안, 우리 부부는 바로 5분 전 산부인과에서 나와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차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은 참이다. 별 수 있냐, 서로를 토닥이며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태명을 ‘곤란이’로 짓고나니 이제 뭘 해야할까? 그래, 양가에 전화를 해야지, 하여 핸드폰을 ‘밀어서 잠금해제’ 시켰다.


우선 산부인과에 가보길 강력해 권했던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얌.” “응… 왜? 응? 너 혹시 산부인과 갔다왔어?” 역시 엄마의 예감은 늘 정확하다. “응. ”“뭐래?” “임신이래.” “임신이래? 어머 지선이 임신했대!!” 전화 너머로 엄마의 비명, 이어 친정에 와있던 여동생의 “꺄, 언니 임신했대!” 비명, 이어 아빠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진짜 임신했다냐, 거봐라 등의 말이 오고간 뒤 남편을 바꿔주자 축하한다 등등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됐다. 축하는 많이 받았으나 임신 사실 확인 뒤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어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맏아들이 결혼한 지 5년, 늘 임신을 기대하셨으나 늘 실망하기만 하셨던 시부모님께 이 소식을 알리게 되다니,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다. “어머니, 저 지선이에요.” “그래, 더운데 잘 지내냐?” “네, 어머니, 저… 오늘 병원에 갔었는데 임신이래요.” 두둥…. 어머니는 이어 말씀하셨다. “응 그래 축하한다.” 오잉? 차분한 목소리, 뒤이어 아버님을 바꿔주셨다. “응, 그래 임신이라고? 축하하고 고맙다.” 끝, 그렇게 통화가 끝이났다.

 

시누이에 동서, 여동생까지 임신했다니!


알고보니 시부모님은 그 바로 며칠 전, 시누이가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게다가 동서는 이미 둘째 아이를 가져 만삭인 상태다. 시댁에는 임신 가능한 여성이 모두 임신한 상태였던 것이다. 맏며느리의 임신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손주 홍수'의 한가운데 있는 시부모님은 친정 부모님보다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하셨던 것이다. 시부모님은 시누이와 동서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계신다.

 
뒤이어 친정 여동생까지 임신을 하면서 양가에는 말 그대로 ’베이비 붐’ 현상이 발생했다. 이미 언니의 두 아이를 돌봐주고 있는 친정 부모님은 슬슬 "아이를 우리에게 맡길 생각 말라"며 선긋기에 돌입했다. 충격과 축복과 경탄으로만 채워질줄 알았던 우리의 임신 사실은 사실 우리에게만 어마어마한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곤란이 003.jpg » 양가 통화 후 현실을 직시하게 된 우리 부부는 조용히 집에 와서 우리만의 의식을 준비했다. 남편이 곤란이와의 만남을 기념하며 만든 특제 미역국에 밥을 먹으며 적당히 자축을 했다.

 

우리 부부의 아이 낳기 결정은 쉽지 않았으나 그것은 양가에 있어 참으로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적인 일일 뿐이었다. 이같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부부가 아기를 가지면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라도 솟을 듯 모두가 놀라 자빠질 줄 착각하고 산 것이다. 그러나 별일 아니었다. 그건 정말이지 별 일이 아니었다.


뒤이어 친한 친구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며 차츰 현실 감각을 찾아갔다. 이제 모두에게 알렸으니 곤란이의 존재는 더욱 확고해졌다. 노키드 부부에서 예비 엄마아빠로 변신하는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모두 산부인과 주차장, 차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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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한겨레21> 기획편집팀, 사회팀, <한겨레> 사회부 24시팀을 거쳐 현재 오피니언넷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 생각 없다”더니 한 눈에 반한 남자와 폭풍열애 5개월만에 결혼. 온갖 닭살 행각으로 “우리사랑 변치않아” 자랑하더니만 신혼여행부터 극렬 부부싸움 돌입. 남다른 철학이라도 있는양 “우리부부는 아이 없이 살 것”이라더니 결혼 5년만에 덜컥 임신. 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메일 :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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