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비 오네?’
하늘이를 업은 채로 우산을 쓰고 옥상에 널어놓은 이불을 걷어 내려오는데
1층 할머니가 말린다고 널어놓은 고추가 보인다.
‘이거 비오면 내가 걷어놓기로 했는데...’
저번에 비 오는 날에 산에 가셨다가 고추 때문에 급히 뛰어오셔서는
힘들어서 계단에 쭈그리고 앉으시는 걸 보고
다음에는 내가 걷어놓겠다고 나도 모르게 말을 해버린 것이다.
말하면서 ‘아차,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이니 어쩔 수 없다.’ 했다.
비는 오고, 하늘이는 업어서 재우고 있고, 바다는 자기를 안아달라고 울고 있는데 어떡하지.
아, 어떡하지.
고민하는 사이 빗줄기는 우산으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거세어져 버렸다.
그래도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늘이를 내려놓고 우는 바다를 뒤로 한 채
새 우비를 꺼내어 입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고추는 많았고 그 위에 모기장도 설치되어 있었고
한 번에 잘 안 옮겨져서 옆으로 흐르는 고추를 다시 손으로 주워 담으며 옮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큰산 같으면 고추 걷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나중에 할머니한테 아이를 재우고 있어서 못 했다고
쿨 하게 한 마디 하는 걸로 끝냈을텐데. 아니, 아예 걷어놓겠다는 말을 안 했겠지.‘
‘바다가 울고 있는데 고추를 걷고 있는 게 맞는 거야?’
‘다음에는 못 한다고 얘기를 해야겠지?’
이러면서 고추를 다 걷었고 흠뻑 비를 맞은 우비를 벗어서 문 앞에 걸어 놓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바다는 울음을 그쳤고 하늘이는!
그 새 잠이 들어 있었다. 와...!
내가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하늘이를 업은 상태에서 바다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을 것이고
둘 다 잠을 못 자고 엄청나게 울고 불고 했을 것이다.
하늘이 방문을 닫아주고 가벼운 걸음으로 바다에게 가서 안으며 생각했다.
‘이거 뭐지? 더 잘 됐네?
참, 계산하는 대로 안 된다. 할머니를 위해서 한다고 한 게 나를 위한 것이 되었네.
세상은 이렇구나. 이렇게 연결되어 있구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울타리 밖을 잘 못 보고, 잘 안 보고 있던 요즘.
신선한 경험이었다.
2015.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