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울며 유치원에 갔다.

 

어젯밤 함께 책 놀이를 하다 늦게 잠이 들었고 일어나기 바쁘게 등원을 하려다보니

버스를 놓치면 안 되는 부모와 유치원 가기 싫은 아이 사이에 얼굴 찌푸리는 일이 생긴다.

 

등원전 대화는 이랬다.

아빠 뭐 먹을거 없어?”, “, 해솔아 토마토쥬스 먹고 갈래? 시간이 없어서 이것 먹고 가자”,

아빠 나 안 먹을래”, “해솔아, 그럼 물 먹고 가자”.

이때부터 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장난감 컵에 든 물 안 먹을거야”, “해솔아, 시간이 없어. 버스 왔으니까 가방에 든 물 먹어, 알았지?”.

대성통곡의 시작.

아냐. 나 집에 가서 물 먹고 갈거야아이를 안으며

버스 와서 기다린다. 어서가자. 우는 거 친구들이 보는데 창피하네하며 억지로 버스에 태웠는데

첫째는 창피함 때문에 더 울지 않을까싶다.

 

대화의 행간에 잠시 이런 생각도 스쳤다.

 

물을 먹이고 아이를 진정시키고 유치원에 자체 등원시키면 되지 않을까?’,

 

아이를 진정시키고 우는 이유를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는 아이가 우는 이유나 그 설명이 내 귀에 안들리면 어떻게 하나’.

 

가끔 첫째와  아침에 실랑이를 벌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일 것이다.

여섯 살 난 아이의 등원거부는 내가 일하러가기 싫을 때와  같은 이유인지라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가끔 이 시점에 둘째를 보느라 밤잠을 설친 아내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게 된다.)

 

대도시의 일률적인 삶을 피해 제주로 왔지만 나 또한 질서와 규율, 제도라는 틀 속의 안정감을 쉽게 버리기가 어렵다.

특히 학교는 개인을 벗어나 사회라는 틀을 알게 해주고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이 좁히고

 타인 혹은 제도와 타협하게 하는 도구인지라 더 그러하다.

여기서 가정의 역할이라는 것은 다양하게 있겠지만 규율의 진입단계로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가장 기본아닐까.

 

 아내와 아이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우리  부부의 양육방식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다양한 선택지를 주어서 아직 여러 가지를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주저하게 만들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둘 다 여린 부모인데다 첫째를 처음 키웠고 아마도 둘째 또한 처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면밀히 분석하길 좋아하는 아내는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강한 아버지훈육방식과는 정반대로

'아빠=친구'의 역할을 강조하다보니 첫째의 규율 적응을 어렵게 한다고 조언한다.

사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한 이유는 뽀뇨가 동생이 없고 친지 없이 제주에서 혼자 자라야했기에

아빠인 나라도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에겐 엄마 아니면 아빠라는 선택지가 주어지겠지만 

양육에 있어서 아내와 나는 한 배를 탔기에 우리는 팀플레이를 할 수 밖에 없다.

'아빠친구'도 버려야 할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된다고 본다.

 

아내가 "어릴적 아빠의 정을 느낀 적이 있냐?"고 다시금 물어온다.  

얼마전에 "느낀적이 없다"라는 내 대답을 들었다고 하길래

몇 개의 사례를 알려주었다.

 

- 아버지가 국민학교 6학년 수학여행때 사준 요넥스 상의와 청바지

- 중학교 2학년때 선물로 받은 CD플레이어

- 잠들어 있는 내 종아리를 엄마와 함께 쓰다듬던 거친 손

 

어떤 아빠로 남을 것인가?’. 

    

발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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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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