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6 0 50, 오랜 여정을 마친 남편이 늦은 밤 아파트 층계참을 성큼성큼 올라오는 소리를 시작으로 7주간의 독박 육아가 끝났다. 참 길고 지루한 7주였다. 예년과 달리 비가 자주 내려 날씨마저 우중충했던 6, 나의 낙은 남편이 며칠에 한 번씩 보내오는 음성편지를 듣는 일이었다. 그의 음성 너머로 복잡한 도시 서울의 소음, 우리가 잠시 살았던 어느 동네의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질 때마다 나도 그곳에 있고 싶단 생각이 (아주 잠깐이지만) 들었다. 그러다 7월 들어서는 거의 매일 아침, 남편과 인터넷 화상 통화를 하며 혼자 아이를 보는 고단함과 동무 없는 지루함을 달랬다. 그렇게 기다리던 남편이 오자 아이는 아빠가 없었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엄마를 밀쳐내고 아빠 껌딱지가 되었고, 나는 그 덕에 반 강제적인 어정쩡한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다.

 

여유롭게 맥주 한 캔을 손에 들고 밤 늦게까지 책을 읽고, TV를 보고, 미뤄두었던 집안 정리를 조금씩 하는 틈틈이 남편이 없던 그 고단한 7주를 돌이켜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7주 동안, 나는 온전히 홀로 육아하는 고달픔과 쓸쓸함, 서글픔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물리적으로 배우자와 함께 살아도 혼자 육아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엄마들은 물론이고 한부모, 미혼모 가정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겪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밥 먹고 잠 자는데 지장이 없기에 망정이지, 두 살짜리 아이를 남겨두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라도 한 상황이라면, 그래서 내가 하루하루 벌어 아이와 내 삶을 건사하며 살아야 하는 형편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더군다나 친정, 시댁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나 같은 사람이, 희소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지금과 같이 소신을 갖고, 애정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을까? 낮이고 밤이고 혼자 아이를 돌보며, 이렇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상을 해 본 적도 여러 번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나는 주변 친구/이웃들의 관심과 도움 덕분에 남편 없는 7주를 제법 수월하게 버틸 수 있었다. 우선 가까이에 사는 지인들이 시시때때로 먹을거리를 나눠 주었다. 모두 우리 아이보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지만, 내가 잘 먹고 지내는지 수시로 물어봐 주고 챙겨준 덕분에 일주일에 이틀쯤은 요리하지 않고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이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외식을 시켜주었고, 유독 이모를 잘 따르는 아이 덕분에 이모와 시간을 보낼 때만큼은 아이에게 신경을 덜 쓸 수 있었다. 이웃 할머니들도 일부러 식사 시간에 나를 불러 나와 아이를 먹이고, 남은 음식은 집에 가서 먹으라며 바리바리 싸서 내 손에 들려 보냈다. 부피가 큰 생필품을 사야 할 때는 친구에게 부탁해 마트에 직접 가지 않고 물건을 배달(!) 받았고, 궂은 날씨 때문에 놀이터에 나가기 어려운 날엔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시내에 나가 넓은 실내 공간에 아이를 풀어놓고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웃 할머니 중 한 분은 일주일에 한두 번, 여섯 살짜리 손녀딸이 오는 날에 우리를 집에 초대해 아이들끼리 놀게 하면서 내게 휴식 시간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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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할머니 댁 뒷뜰에서 노는 케이티. 이날 나는 아이가 노는 풍경을 멀리서 구경만 했다. 할머니들이 챙겨다주는 간식을 폭풍흡입하면서. > 

 

두레니 품앗이 같은 농촌 공동체 시절의 관습을 겪어본 적 없는 나이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개인주의가 뚜렷한 지금 미국에서 나는 오히려 그런 옛말들을 떠올린다. 내가 이번에 경험한 것들은 대부분 나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개인적인 도움을 받은 것이지만, 그것도 크게 보면 미국 육아 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동네 엄마들 모임에서는 회원 중 누군가가 출산을 하거나 입원, 사고, 상 등 큰일을 당하면 회원들이 돌아가며 그 집에 한끼 식사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식구가 여럿인 집에 새로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 혼자 힘으로 다른 아이들을 다 챙기기가 힘들다 보니, 한 가족이 모두 먹을 수 있는 한끼 식사를 누군가가 챙겨주면 참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가 하면 플레이데잇(play date)이라 불리는 놀이 소모임은 아이들을 자유롭고 느슨하게 놀 수 있게 하는 한편 엄마 아빠들에게도 조금은 헐렁한 여유 시간을 준다. 내가 이웃 할머니 댁에 초대되어 할머니 손녀와 우리 아이를 붙여 놓고 잠시 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난 번 어느 글에서 쓴 것과 같은 여자들의 밤이니 남자들의 밤이니 하는 것도 엄마 아빠가 육아를 잠시 다른 사람 손에 맡겨놓고 여성 연대’ ‘남성 연대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근 어디선가 소셜 마더링(social mothering) 에 대한 이야기를 스치듯 읽은 적이 있는데,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게 바로 소셜 마더링이구나 싶다. 소셜 마더링을 번역하면 사회적 양육정도가 된다. 이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독서를 한 것은 아니어서 잘은 모르지만, 내가 읽은 글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이 사회적 양육은 바로 내가 여기서 보고 겪은 것과 유사한 육아 형태인 듯하다. 육아는 아이 엄마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아이에게는 생물학적 친모 이외의 여러 엄마들이 있어 아이가 그 여러 엄마들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 자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이 사회적 양육론의 핵심이다. 이때 이 엄마들에는 가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웃, 시터, 보육 교사 등까지도 포함되며,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포함된다.


물론 더 넓게는 사회 전체, 국가의 역할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저소득 가구로 분류되어 여러 정부보조를 받고 있고 신체적 약자로 분류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에게 이 사회적 양육은 특히 중요한 화두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늘상 생각하는,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기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핵심이 아닐까. 내가 7주 동안 이 사회적 양육시스템 덕분에 먹고 사는 동안, 한국 사회에도 이것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려주는 여러 소식들이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이 이야기를 좀 더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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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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