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들.jpg

 

아홉살  큰딸 담임선생님은 한달에 한번씩 아이들 일기와 글이 담긴 '초록 꽃씨'라는

책을 만들어 가정에 보내주신다.

그달 일기 세 편과 매일 아침 쓴다는 짧을 글들과 아이들 동시가 실려 있고

그달 생일 맞은 아이들 사진과, 장기자랑 모습, 그리고 반 일정같은 것들이

듬뿍 실려 있다.

 

처음 받았을때 정말 감동했다.

스물 여섯명이나 되는 아이들 일기야 부모들이 입력해서 메일로 보낸다고 해도

매일 아침 아이들이 공책에 쓰는 비뚤비뚤한 연필글씨들을 일일이 입력해서

편집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텐데 1년에 한번도 아니고 매달 이런

책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정성일것이기 때문이다.

 

4월달에 처음 책을 받은 윤정이는 아주 좋아했다.

제 일기가 실린것도 뿌듯하지만 친구들 일기를 읽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기 쓰는 일을 지겹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매달 어느 일기를 골라서

보낼까.. 즐거운 고민도 생긴 눈치다.

일기를 쓰고 그 밑에 그림도 그리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한다.

선생님과 글로 소통하는 즐거운 통로다.

갓 2학년이 된 아이들 일기라는 것은 은밀한 마음을 적은 것들이 아니고

그야말로 매일 학교에서 혹은 집에서 동네에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새삼 내 아이 일기를 읽으며 웃고, 다른 아이 일기를 읽으며 또 웃곤 한다.

 

며칠전에는 6월달 일기를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는데 윤정이는 재미있는 일기가

너무 많아서 어느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같이 읽으면서 세 편을

골랐는데 요즘 윤정이의 생활을 고스란하게 느낄 수 있었다.

 

- 6월 4일 목요일 나무요정

날씨 : 햇님이 시무룩해요. 바람도 가버렸어요.

제목 : 친구들

 

방과후가 끝나고 윤지, 가람, 다연, 여원이, 워석이랑 같이 우리집에서 놀았다.

옷도 갈아입고 강아지 놀이를 했다. 원석이가 백설공주 옷을 입고나니까

아주 귀여웠다.

그리고 감옥탈출 놀이를 하고 앵두를 먹었다. 산딸기도 먹었다. 오디도 맛있었다.

친구들이 맛있어 하니까 나도 신났다.

원석이도 좋아한다. 내일은 소윤이가 오니까 신난다.

우리집은 참 좋은 집인 것 같다.  - 

 

윤정이의 일기엔 언제나 계절이  물씬 풍겨난다.

윤정이의 6월은 산딸기와 오디, 앵두의 달이었구나. 친구들과 집 안팎, 마을 어귀를

돌며 오디를 따 먹고, 산딸기 덤불을 찾아 헤매고, 앵두를 따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친구들도 놀거리가 넘치는 우리집을 좋아한다.

윤정이는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는 우리집이 참 좋은 집인것 같다며 좋아한다.

마음이 다 환해진다.

 

- 6월 24일 수요일 물의 요정

날씨 : 하늘이 우울하나봐요. 하늘이 흐릿해요.

제목 :

 

다연이 집에 놀러갔다 와서 집에 들어갈라고 하는데 현관에서 부스럭! 부스럭 각 각

삭작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니까 개 사료 안에 있는 것 같다.

개사료 안을 보니까 없다. 닭사료 안을 보니까 거기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다시 개 사료를 보니까 쥐가 나와 걸음아 날 살려가

하면서 쌩 하고 도망갔다.

나는 꺄아악!!”하고 소리질렀다.

지금 생각해보니 민망하고 웃기다.

왜 그랬을까? 그래도 나는 쥐가 제일 싫은 동물 중 5위다.

그땐 엄청 무서웠다.

이번 일기기 길어서 살짝 힘들었다. -

 

하하, 기억난다. 현관에 있는 사료푸대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기겁을 하고

들쑤시다가 눈 앞으로 쥐 한마리가 달아났던 어느날 오후의 놀랐던 가슴이 떠오른다.

제법 생생하게 윤정이는 그날의 사건을 일기로 적어 놓았다.

 

닭장 앞에서 뱀을 발견하곤 놀라기도 하고, 현관에 침입한  쥐 한마리때문에

큰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고, 아랫집 개가 새끼 여섯마리를 낳아서

매일 그 어린 강아지들을 들여다보느라 아랫집을 들렀다가 집으로 올라오는 것이

윤정이다.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고, 제 텃밭에서 익은 딸기를 하나씩

따서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에게까지 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매일 뭔가 신나는 일이  있고, 크고 작은 모험이 있는 날들..

일기속엔 그날의 소동과 모험들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윤정이 친구들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아주 소수다.

방과후 프로그램이 끝나면 운동장 놀이터나 친한 친구네집에 몰려다니며

노는 것이 주요 일과다.

키즈폰을 걸고 다니는 아이들 몇은 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는

한명도 없고, 조금씩 아이돌 가수에 관심을 주는 아이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학교에서 배운 노래들을  목청껏 부르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슬슬 수학도 어려워지고 있고, 3학년부터 배운다는 영어도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엄마들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노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나게  노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한다.

 

나는 딸아이의 아홉살이 놀이와, 모험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 정말 좋다.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뭐니뭐니해도 몸을 움직여 신나게 충분히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30분씩 걸어서 학교에  가고, 매일 매일 밖에서 뛰어 노는 동안

윤정이는 아주 튼튼해졌다. 친구들이 한 두번씩 감기에 걸려 학교를 빠지곤 해도

윤정이는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햇살과 바람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곧 '초록꽃씨' 6월호가 나온다.

어느새 나도 열렬한 애독자가 되었다.

아이들 입말을 잘 살려서 살아있는 글 쓰기로 인도해주시는 선생님도 고맙고

저마다 서툰 맞춤법으로도 신나고 즐거운 일기를 쓰는 반 아이들도 이쁘다.

 

이 다음에 이 기록들이 얼마나 즐거운 추억이 될까..

 

아홉살의 명랑일기를 오늘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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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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