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청소한 게 언제였더라 ...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자잘한 얼룩들,

야채실에 뒹구는 양파껍질이랑 흙 부스러기들,

가장 만만하게 믿었던  냉동실마저 그동안 방치당했던 흔적들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자주 발견되고 있다.


굳이 안을 열어보지 않아도 냉장고 문 표면은
두 아이가 과격하게 열고 닫으며 묻혀놓은 손자욱과 얼룩으로

보기가 민망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식품저장고 속에 질좋은 유기농 식재료를 사다 넣어둔들,

제대로 된 신선도를 유지할 수나 있을까?

그렇잖아도 냉장고만 바라보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요즘인데

각종 포털 사이트 메인화면에는 


- 장마철, 냉장고 속을 믿지 말자.

- 아이들 장염과 식중독 예방은 냉장고 관리부터.
- 냉동실 관리를 잘못하면 식중독 균의 온상이 된다.

 

는 식의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너무 잘 아는 이야기에,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뉴스들이라

그렇지 뭐.. 하고 지나칠려고 하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대충 알고 있던 사실에

'확인'이란 과정을 한번 거치고 나면 그냥 무시하기가 힘들어진다.

냉장고 청소라는 고지를 향해 무거운 내 엉덩이를 움직이게 만든

가장 강력했던 말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냉장고 관리, 특히 냉동실 청소를 소흘히 하면 일반 식중독균 등이

변기나 개수대보다 더 많이 자라는 수도 있다."

뭐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다.

손에 자주 닿고 늘상 쓰는 물건들이

오히려 화장실 변기보다 세균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입으로 들어가는 식재료들을 그런 공간에 장기간 넣어두고 있다는 것,

더구나 아이들 건강과 직결되는 공간이 바로 우리 가정의 냉장고라는 사실,

1학기가 점점 마무리되어가는 요즘, 더위와 습기에 부쩍 피곤해보이는

아이들의 몸을 생각하니 더 이상 청소를 미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냉장고 청소가 생각보다 중노동이라는 사실.

속에 별로 든 게 없으면 청소도 수월할텐데.

생협 물건이 도착하면, 마트에서 장을 봐오면, 뭐든 좀 먹다 남으면,

무조건 냉장고로 고고씽시키다 보니.. 아마 엄격하게 분류해보면 다시 조리해서

먹기가 꺼려지거나 처분해야 할 식재료가 몇 분의 1 정도는 될 것 같다.

다 돈 주고 산 거니, 아까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음식들을

냉장고에게 그저 떠맡겨 버린 건 아닐까.

습기와 비오는 날이 많은 일본은 드디어 긴 장마철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냉장고 청소를 과감하게 시작했는데

체력과 지구력이 급격히 떨어진 40대 엄마인지라,

냉장실/야채실/냉동실로 하루씩 나누어서 매일 조금씩 청소하는 방법을 적용해 보았다.

냉장실 안에 필요없는 것들은 버리거나 치우고, 달걀이나 음료를 보관하는 케이스들을

모두 꺼내 씻어 말린 뒤 다시 세팅하고 나니,

와우!  이 얼마만에 보는 비주얼인가! 실내가 훤하고 넓어져서 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냉장고 용량의 70% 이상, 너무 꽉 차게 식품을 보관하면

냉기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구석에서 음식이 상할 수 있다는 게

이래서 그렇구나, 하는 걸 가뭄에 콩나듯 청소를 할 때마다 실감하게 된다.

아직 냉동실과 야채실 청소가 남아있긴 하지만

7월을 싱그럽게 시작하는 의미로 오늘 내일 중으로 끝내기로 마음먹어 본다.


냉장고와 씨름한 시간을 보낸 뒤, 텃밭에 다니러 갔을 때

밭은 정말 훌륭한 천연 냉장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한 수분과 최고의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자연의 냉장고.


밭에서 금방 딴 채소들이 가장 수분 함량이 높고 맛이 좋다는 것,

작물들이 밭에서 생산자를 거쳐 중간 상인을 거쳐 상품화되어 소비자에게 이르기까지.

소비자가 구매한 뒤에도 가정의 냉장고에서 장기간 보관된다는 것,

그 전체 과정을 생각하면 우리가 먹는 식재료는 비싼 돈을 주고도

가장 신선도가 떨어진 상태로 만들어 먹게 되는 건 아닐까.

냉장고 청소를 하다

식재료와 냉장고와 우리 가족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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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거둬온 채소들은 되도록 그때그때 조리해서 먹고,

다른 식재료들도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구입해서 만들어 먹기.

백만년에 한번 한 듯한 냉장고 청소지만,

깔끔하고 훤해진 냉장고를 보면

잠시동안은 그런 부엌살림 의욕이 샘솟곤 한다.


텃밭 냉장고에서 막 따온 채소들과 고기를 뜸뿍 넣어 만든 군만두.

비오는 여름날, 새콤달콤한 간장에 찍어먹고 싶다.

쾌적한 냉장고와 건강한 음식으로 아이들과 이 장마철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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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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