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12480_P_0.jpg »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주 일요일 한국방송에서 방영된 과학정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장영실 쇼’를 며칠 지나서야 봤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통합 아동 엄마들이 같이 식사를 했는데, 아이들 대부분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평도 좋았다.

 

아이를 재우고 프로그램 동영상을 다시 찾아 보았다. 대부분의 자폐성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마지막 결론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었고 신학과 교수인 패널 한 분의 얘기는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신화의 영웅이나 종교의 큰 인물들은 반드시 혼자 보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 때 괴물을 만나고 괴물을 이기면서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을 얻게 되죠. 그 괴물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혼자 있는 사람에게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창조력이 잠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잠재력이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가 좀 더 보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프로그램이다. 자폐스펙트럼을 미화하지 않고, 그렇다고 괴물로 보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의학, 교육, 사회 복지 등 여러 분야가 맞물려 있고 새로운 연구와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지라 여러 가지 복잡한 이슈들을 잘 정리해서 3편 정도로 나누어 자세히 다루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까지 났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그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고, 이는 뇌의 작용, 인간의 정신에 관해 인간이 아는 부분이 아주 미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자폐라고 진단 받는 영유아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어디서 어떻게 치료해야 할 지 정보를 얻기는 너무 힘들고, 그러나 효과가 적게나마 있다고 검증된 치료법(ABA – Applied Behavior Analysis 응용행동분석에 의한 치료, 나중에 별도의 글로 자세히 다루겠음)이 있다고 해도 너무나 노동집약적이고 제대로 된 치료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정교한 훈련이 필요한지라 치료사를 찾기조차 어렵다.

 

영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영국에서 살면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올 때 종종 만나는데, 나의 상황을 얘기하고 나자, 그녀가 말했다.

 

“나도 보조교사 시절에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를 도와준 적이 있어.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중에도 아스퍼거 신드롬 아이들도 있고. 학교와 교사들은 그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고, 공부에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배려하지. 사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만 배려하는 건 아니고, 학습장애, 난독증, 한국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갖가지 진단명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있더라고. 난독증 아이에게는 의사가 알려준 대로 그 아이에게 가장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색깔의 종이에 적합한 글자 크기, 폰트로 인쇄된 시험지를 따로 주는 거야. 자폐성 장애 아이 하나가 낯선 장소에 굉장히 예민한데, 실험 장비가 그 아이네 반이 쓰는 실습실에 없어서 다른 과학 실습실로 옮겨서 수업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 그런데, 선생님이 그 아이 때문에 우리는 실험실을 예고 없이 갑자기 옮길 수 없다고 했고, 결국 장소를 옮기지 않고 필요한 장비를 기존의 실습실에 새로 사줬지. ”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엄마로서 내가 원하는 건 이렇게까지 특별 대접에 가까울 만큼 배려를 받는 것이 아니다. 먼 훗날 이런 배려가 가능하다면 물론 감사하겠지만, 지금은 그저 다른 아이와 마찬가지로 기회를 주면 좋겠다. 가까운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는 기회,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기회…..  

 

물론 내 아이를 비롯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말과 행동은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 한국 사회처럼 다름을 ‘열등함’이라고 여기고 배척하는 문화에서 가지고 있는 장애에 편견까지 더해져 그만큼 더 힘들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아이들의 소통방법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모두가 더 행복하고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한다는 말은 여기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다행히 현장의 뜻있는 선생님들, 여러 의사 선생님들, 치료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아이들의 생활은 즐겁고 행복해지는 중이다.

 

원래 이번 주에는 아이가 처음 진단받을 무렵의 얘기를 하려 했는데, TV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두서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고, 글 솜씨는 짧다. 뭐든 하다 보면 좋아지겠지, 어제보다 오늘 나아지면 된 거지, 하는 근거하는 자신감이 내 삶을 지탱해 온 힘이니, 글에 나의 마음이 제대로 담길 때까지 좀 더 애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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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가다
다이나믹한 싱글생활을 보내고 느지막히 결혼하여 얻은 아들이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고 생애 가장 큰 절망을 경험했으나, 천천히 나무가 자라듯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에 벅찬 환희를 느끼는 일이 더욱 많다. 남과 다른, 심지어 자신과도 다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시행착오이지만, 모든 걸 일상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면 할만하다는 자신감으로 오늘도 씩씩하게 살고 있다. 말도 많고 오해도 많으나 실제 일상 생활은 알려지지 않은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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