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으니 집안일이 두 배가 되었다는 글을 쓰고 며칠 안 되어 아이가 갑자기 기저귀를 떼버렸다. 그것도 낮 기저귀 밤 기저귀 모두 한꺼번에.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를 하러 화장실에 가겠다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변기에 앉히면서 보니 밤새 차고 있던 기저귀가 보송보송, 새것 그대로였다. 처음 며칠은 에이, 설마. 이렇게 갑자기?’ 싶은 마음에 좀 더 두고 보자, 했는데 열흘이 다 되도록 실수 한 번 없이 하루 종일 팬티를 입고 지낸다. 낮잠을 건너뛰어 많이 피곤한 날이 아니면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다시 잠든다. 남편 말대로 엄마가 기저귀 빨래까지 하는 게 아이 눈에도 안 되어 보였던 걸까? 갑자기 기저귀 빨래에서 해방되고 나니 얼떨떨, 기분이 묘하다.

사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그 배변훈련이란 걸 아직 제대로 시작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아이가 원하는 때에,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도와주면서 준비해왔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필요한 도구를 갖추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 시작은 아기용품을 중고로 사면서 덤으로 싼 값에 업어 온 아기 변기였다. 생각보다 빨리, 15개월 무렵에 장만하게 된 예쁜 꽃분홍 변기를 우리는 그저 무심히 집 한 구석에 방치했다. 놓아둘 곳이 마땅치 않아 젖은 천 기저귀를 모아두는 공간 아래에 변기를 넣어두었다. 아이도 우리도 그 변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17개월 차에 들어선 아이가 때때로 변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블록이 다글다글, 시끄럽게 부딪는 소리가 나서 보면 아이는 모양 블록을 이 꽃분홍 변기에 쏟아 넣고 손으로 휘저으며 놀고 있었다. 그래도 변기인데, 변기라는 인식 정도는 있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던 차에 우연히 배변연습과 관련된 동화책 하나를 갖게 됐다. 그 책을 몇 번 보여줬더니 17개월 차에 두 번 정도, 꽃분홍 변기에 앉아서 응가를 한 적도 있다. 물론 기저귀를 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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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선 한참을 잊고 지냈다. 그 사이 변기는 이리저리 채여 뒹굴다가 결국 벽장 어딘가에 처박혔다. 아이는 정신 없이 놀다 갑자기 얼음, 자세를 취하고는 선 채로 혹은 엎드린 채로 기저귀에 응가를 했고, 우리는 아이가 일을 마치면 늘 하던대로 곧장 아이를 들어 안고 화장실에 가서 씻겼다. 22개월 차, 한 단어로 된 말을 조금씩 할 줄 알게 되었을 때 아이가 똥 누는 자세를 취할 때 마다 , 우리 아들 똥 하네?”하고 말로 일러줬더니 곧 아이도 똥을 눌 때 !’하고 외칠 수 있게 됐다.

이 때쯤 처음으로 좀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했다. 아이들은 똥을 자신의 일부라고 여겨 그것이 물에 쓸려 내려가는 걸 보면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할 수도 있다는 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다음이었다. , 그렇단 말이지? 그럼 우선 그런 공포감을 덜어내는 일부터 시작해 볼까? 마침 우리는 천기저귀를 쓰고 있으니 어차피 아이가 똥을 누면 기저귀를 바로 빨아야 하는 처지. 원래는 아이를 먼저 씻겨서 내보내 놓고 기저귀는 욕조에서 빨았는데, 이 때부터는 아이가 일을 보고 나면 같이 화장실에 가서 기저귀를 벗고 변기에 똥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물을 내리며 아이를 보고 말했다. “, 똥 빠빠이! 잘 가! 해주자그렇게 몇 번 했더니 아이는 곧 손을 흔들며 똥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우리는 저 작별의식 외에는 특별히 다른 훈련이라 할 만한 것을 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볼일을 볼 때 화장실에 따라 들어오면 꼬박꼬박 너도 조금 더 크면 이렇게 앉아서 하게 될거야하고 말해 주긴 했다. 그 영향일까, 24개월 차에 들어서자 갑자기 아이가 화장실 변기에 올라가 앉고 싶어했다. 벽장에 처박아 둔 꽃분홍 변기를 줘 봤지만 그건 한사코 거부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화장실 변기에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유아용 변기 시트를 마련했다. 그런데 문제는, ‘똥이 나올 정확한 때를 잘 몰라서인지 아님 다른 심리적인 이유에서인지 아무튼 똥 한 번 누려면 화장실을 몇 번씩 들락거려야 한다는 것.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발까지 굴러가며 , 해대는 통에 급히 화장실에 데려가 앉혀주면 아이는 얼마 못 있고 다시 내려오곤 했다. 기저귀를 다시 채워라, 바지를 입혀라, 등등 아이가 시키는 대로 다 해서 화장실 밖으로 나오면 또 1분도 안 되어 다시 아이는 내 손을 잡아 끌고 화장실로 종종걸음을 쳤다. 많을 때는 열 번까지도 들락거리다가 결국 똥은 엉거주춤한 자세, 난처한 표정으로 서서 기저귀에다 눴다.

24개월, 25개월, 26개월을 모두 그렇게 보냈다. 이틀에 한 번, ‘그 분이 오시는 날엔 아이를 따라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면서 내 혼마저 들락날락 하는 기분이었다. 열 번씩 기저귀를 벗겼다 입혔다 하는 게 너무 힘들어 팬티를 한번 입혀볼까 했지만 아이는 새 팬티를 개구리 인형에게 떡 하니 입혀놓고 제가 입으려 들지는 않았다. 어떤 때는 좀 진득하게 변기에 올라가 앉아 있기도 했는데, 변기 앞에 아이와 마주 앉아 우두커니 그 분을 기다리는 그 기분도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똥을 누겠다고 왔다 갔다 할 때는 남편도 나도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다. 무거운 아이를 들어 변기에 앉히는 게 힘이 들어 소리가 절로 났고, 만사가 귀찮아 어차피 결국 기저귀에다 할 거, 화장실 들락거리지 말고 그냥 하면 안 되겠니싶을 때도 많았다

도저히 더 못 하겠다, 이거 언제 끝나나 싶던 즈음, 27개월 차에 처음으로 아이는 기저귀를 벗고 변기에 앉아서 똥을 누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딱 한 번이었다. 28개월 차엔 네 번 연달아 성공했지만 그것도 딱 네 번으로 끝이었다. 계절은 어느새 한여름에 들어섰는데, 밥을 먹자마자 놀이터에 나가 놀아야 하니 그 흔한 벗겨놓고 지내기따위는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기저귀가 푹푹 젖어도 갈아달란 말도 안 하고 그저 놀기 바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내 가방 속에는 늘 언제 어디서든 갈아 입힐 천기저귀와 기저귀 커버, 여분의 바지가 들어 있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열흘 전부터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누가 요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갑자기 한 순간에 사라졌다. , 이렇게 오고야 마는구나. 기저귀를 벗는 그 날이! 아무것도 훈련시키지 않고서도 이렇게 해 낼 수 있구나!

내가 종종 뒤적여보는 한 육아서의 저자는 배변훈련이라는 용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렇게 겪고 보니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영어로 배변훈련은 potty training인데, 이 저자는 배변과 관련된 일련의 성장과정은 양육자가 주도하는 training이 아니라 아이가 주도하는 learning, 즉 아이가 스스로 익히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 아이를 기르는 데 가장 필요하고도 어려운 일이 기다려주기라고 하는데, 평소 한 인내심, 한 끈기 하는 우리 부부의 성향 덕분에 장장 13개월여에 걸친 배변연습을 아이와 함께 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은 기다려주기보다는 그냥 같이 기다리기가 될 때, 아이도 부모도 즐겁게 조금씩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 하나를 가뿐히 풀어낸 기분이다. 또 함께 기다리면서 풀어나가야 할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사뭇 기대가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밤, 30개월간 매일같이 해 온 기저귀 빨래에서 해방된 남편과 축배를 들고 싶다. (그런데 남편은! 대체 언제 오는 거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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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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