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밖에 나가 걷고 뛰며 노는 아이가 갑자기 걷기를 싫어하며
안아달라, 업어달라 조를 때면 신발을 먼저 확인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어느 날 문득 걷기 싫어하는 느낌이 들어 신발을 벗기고 아이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오른발 엄지발가락 바깥 부분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직 여유 공간이 있어
보였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오른쪽 엄지발가락 부분 밑바닥이 닳아 그곳의 실밥이 터지고야 말았다. 온전치 않은 발, 절룩거리는 걸음에도 아랑곳 않고
신발이 닳도록 밖에 나가 논 결과다.
케이티의 오른발은 일반적인 발 모양과 완전히 다르다. 길이는 왼발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발바닥 너비가 넓다. 특히 발가락이 많이 부어 있어 발가락 부분의 너비가
내 발 너비와 맞먹는다.발등은 또 어찌나 높이 올라와 있는지,
275mm짜리 남자 신발이나 되어야 발을 완전히 신발 안에 넣을 수 있다. KT 환자들
중에 양쪽 발 크기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양쪽 사이즈만 다르게 신으면
해결된다. 그런 경우라면 디자인은 같고 크기는 다른 신발을 두 켤레 사서 한쪽씩 맞춰 신으면
된다. 일부 신발 매장에서는 그런 필요 때문에 신발을 두 켤레 사야 하는 사람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왼발/오른발 사이즈를 각기 다르게 해서 한 켤레로 짝지어 구매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케이티의 발은 KT환자들 중에서도 드문
경우여서 맞춤 신발이 아니고서는 신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6개월에 한 번, 맞춤
신발 회사에 신발 주문을 넣는다. 이 회사에 신발을 주문하려면 우선 온라인으로 원하는 색상을
선택해 주문하고, 종이에 아이 발바닥을 대고 그린 다음 발 각 부분의 치수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줘야 한다. 그러면 회사에서는 아이 발 치수에 맞춰 수작업으로 신발을 만든다. 주문에서 발송까지 약 3주가 걸리고, 비용도 10만원 가까이 드는 일이라 우리 형편에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겐 절박한 것이
아이의 신발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케이티 생애 세 번째 신발이 지난 주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 새 신발을 바로 신길 수는 없다. 이제는 엄마가 직접 신발을 손 볼 차례. 케이티는 왼쪽에 비해 오른쪽 다리가 길기까지 해서
왼쪽 신발 밑바닥에 깔창을 덧대어 주지 않으면 걸을 때 심하게 절룩거린다. 1년에 한 두 번 정형외과 진료가 있을 때 병원에서 깔창을 붙여주는데, 이번엔
신발 주문 시기와 정형외과 진료시기가 서로 맞지 않아 가내수공업으로 해결해야 했다. 케이티와
함께 산 지 2년 반, 신발 밑창 붙이는
것 정도는 이제 그냥 식은 죽 먹기다. 맞춤 신발 매장을 찾기가 어려워 집에서 신발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낑낑댔던 적이 있어 집에 각종 도구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 중에서도
예전에 친구에게서 얻어다 둔 헌 신발을 이용했다. 운동화 종류는 밑창을 분리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좀 얇은 가죽재질의 단화는 커터칼로 죽 그어 뜯으니
제법 깔끔하게 뜯어졌다. 분리된 단화 바닥 바깥에 얇게 붙어 있던 굽 한 겹도 커터칼로 뜯어내고, 얇은 소재를 한겹 깔아 넣어 편평하게
만든 다음 ‘컨택시멘트’라는 특수 접착제를 발라 새 신발에 붙였다.
그리고 닳고 작아져서 앞이 터져버린 헌 신발에는 구멍을 내어 샌들처럼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름용 샌들도 맞춤 주문해서 신겨주고 싶었지만 비용도 부담되고 한 철 신고나면 더 못 신게 될 거라 차마 맞출 수 없었다. 더운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앞뒤가 막힌 신발을
신어야 하는 아이가 못내 안쓰러웠는데, 이렇게나마 샌들 비슷하게 만들어 동네 산책길에라도 신길
수 있으니 마음이 한결 낫다. 이미 낡아버린 신발인데다 말이 샌들이지 구멍을 뚫은 게 전부여서 보기엔 영 예쁘지 않지만 그래도 제 눈에는 색달라 보이는지 잘
신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매일 번갈아 아이를 데리고 나가 걷고 뛰고 놀이터에 퍼져 앉아 노는 우리를 보고 친구들, 이웃들이
묻는다. 어쩜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하루에 몇 시간씩 밖에 나가 놀 수가 있느냐고, 체력이며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체력도 인내심도 아니고, 우리는 그냥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뿐이라고. 그러면서 내가 아는 한 엄마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KT쪽
다리가 아파 운동도 못하고 학교도 한 달 가량 쉬어야 했던 한 소년의 엄마는 나같이 어린 KT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당부했다. 아이가
아프지 않을 때, 마음껏 걷고 뛸 수 있을 때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 실컷 뛰어 놀 수
있게 해 주라고. 할 수 있을 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두라고.
우리에게 이런 얘길 해 준 이 엄마는 여력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아이를 설득해 휠체어에라도 태워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너무 잘 아는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엄마 아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밖에! 밖에!” 하고 소리치는 아이를 뿌리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걷고 뛰며 동네 곳곳을 누빈다. 나중에
언젠가 아이가 아파 걷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더라도 너무 많이 후회하지 않도록,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신발이 닳도록 ‘카르페디엠’(Carpe
Diem), 말 그대로 그날 그날을 붙들어 즐기는 중이다.
하루하루 징글징글한 만큼 또 예쁜 아이의 모습, 정작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이 아까운 시간들을 사진에 담아두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