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김연희의 태평육아 조회수 13629 추천수 0 2011.11.09 09:23:27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제 12월이면 딱 두 돌이 되는 예음이가 피를 본 것이다. 유치부에서 놀다 신발장에 부딪혔다고 했다. 사색이 된 엄마와 달리 예음이는 의외로 덤덤해 보였다. 예음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병원으로 갔다. 얼마 후에 예음이는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돌아왔다. 역시 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예음이 엄마는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왜 아니겠나? 예음이는 크게 울지는 않았지만, 피가 많이 나는 걸 보니 겁이 났다고 했다. 

1년 전에 나도 그랬다. 이른 봄이었다. 소율이를 안고 살얼음이 녹지 않은 음지의 비탈길을 걷다가 쿵 넘어졌다. 순식간에 아이가 내 품 밖으로 튀어 나가 나뒹굴면서 얼굴이 흙과 피로 엉망이 되었을 때 그 심정. 손발이 후들거렸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IMG_5576.jpg


그런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렇게 크게 울지 알았다. 상처도 저절로 아물었다. 한 번 그렇게 크게 놀라고 나니, 이제 웬만한 일들은 대범해진다. 막 걷기 시작한 토들러들의 필수품인 무릎보호대를 하지 않으니 무릎이 까지는 일은 예삿일이다. 무엇이든 손으로 만지면서 탐색하다보니 손에도 상처가 자주 생긴다. 행동반경이 수평에서 수직본능이 발동하니 상처는 일상다반사다.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나 되는 줄 아는 지 어디든 기어오르고,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한다. 그러다 꼭 떨어진다. 지난 주말에는 소파에서 책상으로 옮겨가려다 그 사이로 떨어져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고, 엊그제는 어른 자전거에 기어오르다 자전거가 덮치는 바람에 눈두덩이에 긁히는 상처가 생겼다.

부쩍 움직임이 많아진 아이가 처할 위험에 대해서 생각하며 동선과 행동패턴을 가만 지켜보았다. 언뜻 보면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위험이다. 범주가 있고, 패턴이 있었다. 때로는 도전적이지만, 그렇다고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아이의 자유와 모험을 보장하고, 어느 정도까지 아이에게 닥쳐올 위험을 예방해야 할까? 단지 지금의 고민이 아니라 앞으로의 그런 고민의 연속이 될 것이다. 나는 아이의 자유의지와 상처에 대해서 관대해지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가 처할 위험에 대해서 모든 걸 예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최소화하려고 노력은 해야겠지만, 매번 있을지 모를 위험을 생각하며 노심초사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아이가 큰 사고 없이 커주었으면 하는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봐, 흉이 질까 봐 아이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은 최소화하고 싶다. 처음에 아이의 얼굴에 흉이 졌을 땐 나도 모르게 ‘여자 아이 얼굴에…’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처나 흉이 그렇게 나쁜 건가?

나도 몸(물론 마음에도^^) 곳곳에 상처가 있고, 흉이 있다. 얼굴에 난 흉은 다섯 살 때 부스럼 때문에 생긴 흉이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난 상처는 (엑스 엑스 엑스…) 남자친구의 시골집에 놀러 갔다가 넘어져서 깊은 상처가 났다. 개구쟁이였을 것이 뻔한 남편에게도 상처가 많다. 자전거 타다가 찢어진 뒤꿈치 상처, 대학 때 데모하다 돌 맞아 생긴 이마의 상처는 지금도 가끔 이야기거리다. 어찌보면 상처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몸이든 마음이든 상처가 없으면 재미없다. 상처에서 관대해지면 자유로워지면 삶이 조금 편해지고, 삶의 지평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일주일 만에 예음이를 만났다. 보자마자 손가락으로 상처를 가리키며 불쌍한 얼굴(그런데, 너무 귀여워 죽겠는 얼굴)을 보였다. 자신의 아픔을 알아달라는 제스츄어다. 호~하고 불어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고 위로를 받는 예음이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상처가 생기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그런 게 인생이 아닐까 하고…  두돌짜리가 벌써 인생을 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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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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