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 살면서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을 만날 때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는 문화를 꼽을 수 있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는 문화에서 자란 나로서는 아무리 친한 이모, 친한 이웃 할머니라도 이름을 부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게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공들여 익히고 불러주는 모습을 보며 더더욱 확실해졌다. 내 이름은 이 곳 사람들이 정확히 발음하기에 그리 쉽지 않은 편에 속하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 열이면 열 모두 내 이름을 몇 번씩 물어보고 정확히 발음하려고 애 쓴다. 그래서 알고 지낸 지 3년이 넘어가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완벽한 한글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고 있고, 그 덕분에 나는 굳이 미국식 이름을 따로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공들여 불러주는 그 이름은 바로 ‘이슬’이다. 경상남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가친척들은 물론이고 학창시절에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선생님들이 별로 없었다. 지금 우리 세대야 그렇지 않지만, 선생님 세대만 해도 ‘쌀’ 발음이 제대로 안 되는 분들이 많았으니 ‘이슬’이란 이름 역시 ‘이설’로 발음되기 일쑤였다. 교복에 다는 플라스틱 명찰을 한자로 파야 했던 고등학생 시절, 한자어가 없는 순한글 이름 덕분에 선생님들 눈에 잘 띄어 툭 하면 문제풀이며 발표며 읽기를 해야 해서 성가시기도 했다.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면이 다분한 우리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이슬’이란 이름을 지었는지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잔병치레를 꽤나 했던 어린 시절, 친할머니가 ‘이슬’이란 이름이 약해서 그런거라며 ‘인실’이래나 뭐래나 하는 옛날 이름으로 바꾸라고 종용하셨다는데, 거기에도 아랑곳 않고 내 이름을 지켜낸(?!) 이유도. 그런데 내 자신이 엄마가 된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여섯 남매의 막내였던 아버지로서는 집안의 역사와는 별개로 자식들 이름을 짓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딸자식이야 어차피 옛날식으로 따져서는 별로 귀하게 취급되지도 못하니까, 예쁜 이름 지어 귀하게 여기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내 이름의 영향인지, 임신 중 아이 이름을 생각하며 내가 가장 염두에 두었던 두 가지 요소는 ‘식상하지 않을 것,’ 그리고 ‘의미 중심 보다는 이미지 중심일 것’이었다. 나는 특히 이 두 번째 면 때문에 내 이름을 굉장히 아끼고 좋아하며 살았다. 아침 이슬은 우리 친할머니 같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약한 존재이지만, 내가 내 스스로 그려낸 이슬의 이미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손으로 건드려도 쉽게 모양을 흐트러뜨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 나는 이슬의 이미지를 그렇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살아왔고, 나 스스로 그런 알차고 단단하고 투명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아이 이름을 고를 때도 한자어 의미를 조합하는 방식이 아닌, 이미지 중심의 특정 단어를 중심으로 찾아보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지금까지 ‘케이티’로만 알려진 우리 아이의 실제 국문 이름은 ‘산’이다. 흔히 산은 ‘큰 사람이 되어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지만, 내게 산은 그보다는 ‘넓고 깊은 품’의 이미지가 강하다. 넓고 깊고 무겁게 앉아 사람과 세상을 품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게다가 산은 인간이 언제라도 아무렇게나 가도 우리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존재, 우리가 만신창이가 되어 찾아가도 내치지 않고 받아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산은 엄마 같고, 엄마 뱃속 같다. 어쩌면 산은 굉장히 남성적인 공간으로 보이는 한편으로 동시에 그 무엇보다도 근원적인 여성성을 갖고 있는 곳 아닐까. 그런 남성성과 여성성의 공존, 산이 갖는 그런 특성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런 의미를 강요하고 싶진 않다. 내가 내 이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살아온 것처럼, 아이도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한자 의미에 치중해서 이름을 짓게 되면 혹여 그 의미에 자기 자신을 가두게 될까 봐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의미보다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면 아이가 자라면서 스스로 자기 이름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름을 공들여 짓고 또 내내 그 이름을 부르며 아이를 돌보는 건 부모이지만,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결국 아이의 몫이다. 다만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이 아이가 다 자라 꽃 피우기 전에 가지부터 꺾여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봄꽃이 만개하는 이 계절에, 그렇게 꺾여버린 꽃나무 가지들이 눈에 마음에 밟혀 마음이 쓰리다. 그 꽃나무 가지 하나 하나에도 이름이 있고 그 이름엔 부모들이 정성들여 짓고 닦아 온 소망들이 담겨 있는데, 우리는 그저 숫자로, 돈으로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잔인한 그 해 4월, 그 이후로 내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많은 이름들이 목에 걸려 자꾸만 목청을 가다듬게 된다. 내가 다 알지 못하는 그 이름들, 그 이름을 짓고 불러온 저 엄마 아빠들을 우리가 외면해선 안 된다. 내 아이가 자라 꽃피우는 데 그 아이들이 거름이 되어주고 있음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 한겨레 자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