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동네의 자폐지원센터 소장이 엄마들 모임에 나와 동네 엄마들과 함께 자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주말에 하는 자원활동 프로그램에서 자폐아 둘과 다운증후군 아이 하나를 만나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 수업에 직접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보니 아직 이런 발달장애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높지 않다. 그래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모임에 나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엄마들 모임에는 나보다도 더 경험이 없는 엄마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백인 중산층/고학력자 가정이어서일까, 아니면 아직 한창 육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어서일까. 생각보다 자폐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이 많이 오갔다.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를 큰 충격에 몰아넣은 것은 미국 내 자폐 발생률이었다. 요즘 미국 의학계에서는 자폐 환자에 대해 '자폐증'(autism)이라는 용어보다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라는 용어로 진단 내리고 있다. 즉 자폐의 가장 경미한 정도를 가로축의 한 끝에 놓고, 가장 심한 정도의 자폐를 다른 쪽 끝에 놓아 그 사이에 다양한 정도와 증상을 보이는 자폐 환자군이 존재한다고 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이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아동 68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에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로 불리던 질환도 이제 모두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진단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범주가 넓어진 탓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1:68의 비율은 굉장히 높게 느껴졌다.
그 다음으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자폐 원인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었다. 올해 초 미국 내 대규모 홍역 발생으로 한국에도 보도되었듯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이야기가 크게 돈 적이 있는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아직 자폐의 원인으로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추측과 가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 날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자폐지원센터 소장은 생각보다 고학력자 부모를 둔 자폐 아동들이 많은 점과, 각종 환경 유해물질의 폐해를 우리가 다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조심스레 지적했다. 이 곳 대학은 엔지니어링 계열로 미국 내 최고 순위를 자랑하는데, 센터에 찾아오는 부모들의 상당수가 이 대학 엔지니어링 쪽 교수/강사들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접촉보다 기계, 컴퓨터로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 폐쇄적이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더 크고 오래된, 온갖 공해의 주범 아니던가. 대량생산과 소비에 길들여진 지 오래인, 과대포장과 오염된 각종 식재료, 가공식품과 유해물질의 천국이라 할 만한 곳이 바로 미국이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답은 없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들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건 그만큼 이곳의 자폐 발병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곳은 자폐아동에 대한 지원 체계가 한국에 비해 훨씬 잘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동네마다 있는 전문 인력 센터와 환자/보호자로 이뤄진 자조그룹, 주정부와 연방정부에서 보조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이 부모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있다. (우리만 해도 KT 진단을 내린 병원에서 아이의 특수보험 가입을 대신 처리해주고 각종 의료/복지 관련 기관에 우리를 연결해 주어 우리가 진단 이후의 일들을 비교적 쉽게 대처해 나갈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병원에서는 진단만 내릴 뿐 추후 조치는 대부분 환자/보호자의 몫으로 남겨지는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각종 희귀질환/장애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환자/보호자들이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해나가야 하다 보니 그 짐이 버거워 결국 삶을 등지는 일마저 흔히 벌어진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임에도,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어디를 찾아가야 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어느 곳에서도 알려주지 못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가족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모를만큼 우리가 이런 문제에 무감각한 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최근 <우리 균도>라는 책을 낸 이진섭 씨는, 바로 그런 우리 현실에 뛰어들어 우리에게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있다. 유아기에 자폐 진단을 받고 어느새 이십대 청년이 된 발달장애인 이균도 씨의 아버지 이진섭 씨는 균도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11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아들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없어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기도, 취업을 하기도 불가능한 현실 속에 놓인 아들을 붙들고, 그 아들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인 '걷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냥 무작정 걸을 수는 없었기에 균도 씨를 기르며, 아니, 균도 씨의 자폐와 함께 '살며' 가족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였던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요구하며 걸었다.
그냥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개인적인 '여행'에서 그칠 수도 있었던 이 두 사람의 '걷기'에 불을 지핀 건, 뜻밖에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원전에서 고작 3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난 균도 씨, 직장암에 걸린 아버지와 갑상선암에 걸린 어머니. 위암에 걸린 외할머니. 이쯤 되면 균도 씨 가족의 삶에 원전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아픈 아내를 위해서도 한번쯤은 소리쳐봐야겠다고 생각한 균도 아버지 이진섭 씨는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건강권 소송을 하기에 이른다. 애초엔 그저 '아들과 손잡고 걷기'였던 것이 어느새 장애인'운동'이 되었고, 마침내 탈핵운동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내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언론에서 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길목에서 쓴 글을 모아 엮은 것이 이번에 <우리 균도>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많은 장애가족들이 이 두 사람과 함께 걸으며 위로와 감사를 주고받았다. 장애가족 뿐이 아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다른 많은 곳에도 균도와 균도 아빠의 발길이 닿았다. 그렇기에 이것은 이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균도는 균도 아버지만의 자식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자식, 우리 균도이기도 하다. 장애가, 희귀질환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아직도 너무 모른다. 그게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온 환경 때문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런 질문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런 질문이 너무 불편하다면 좀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봐도 된다. 생명이란 너무도 신비해서, 찰나의 순간에 생긴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매우 다른 모습으로 탄생할 수 있다. 케이티를 키우며 생물학 공부를 틈틈이 하고 있는 내가 깨달은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 모두가 장애를 그렇게 이해한다면 각자의 생김과 능력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이해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균도를 '우리의' 자식으로 품어 키워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동안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수많은 <우리 균도>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것이다. 그 흔치 않은 기회가 우리 앞에 이렇게 성큼 다가와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일은, 얼른 이 책을 집어들고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동네 도서관에 구매신청을 해 여러 권 구비해 놓고 마음 맞는 동네 엄마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고, 내친 김에 동네 도서관에 건의해 균도 씨와 아버지를 직접 모셔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비록 멀리 있지만, '우리' 균도와 '우리' 케이티가 세상을 향해 기쁘게 나아갈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균도와 케이티가 우리와 함께 걸을 그 길을 이렇게나마 조금씩 조금씩 닦아주고 싶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기'가 이렇게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결국 읽기와 쓰기에 관한 그 모든 것은 그것이 '내 삶'과 얼만큼 맞닿아 있는가, 하는 문제인가보다. 균도 씨 덕분에, 케이티 덕분에 나는 또 이렇게 하나 더 깨치고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