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최근 나의 신경은 온통 3월 2일 초등학교 입학식에 쏠려 있었다. 잘할 수 있을까, 나의 아들은?
잠들기 전 바라 본 천장 위에는 온갖 나쁜 수민이들이 가득했다. 교실에서 난동을 부리다 혼나는 수민이. 친구와 싸우다 소리를 지르는 수민이. 성질부리다가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수민이. 선생님에게 시시해요라고 불평하다 찍혀버리는 수민이. 수업시간에 슬그머니 일어나 돌아다니는 수민이.
이상하게도 다시 첫아이를 임신한 초기로 돌아간 듯 했다. 그때는 주변에 다 임산부만 보였다. 길 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임산부가 많았다. 이렇게 주변에 임산부들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뉴스와 이야기들도 갑자기 늘어난 듯했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도 팔자’ 클럽에도 가입했었다. 산부, 초보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주워듣게 되는 수많은 우려와 걱정의 글들에서 나는 몹쓸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렸다.
당시의 나를 생각하면 괜히 측은해진다. 인터스텔라의 인듀어런스 타고 가서 ‘다 소용없어’라고 모스부호라도 날려주고 싶을 정도다. (내가 모스부호를 모른다는 건 함정)
그러나 역시 지나간 시절에 교훈을 못 얻는 나다. 아들의 초딩 입문을 앞두고 나는 다시 비슷한 증상들에 시달렸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주변에 갑자기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이 늘어났다. 요즘 아이들 수가 많이 줄었다는데, 괜히 내 주변엔 초등학생도 갑자기 늘어난 것만 같다.
언제 어디서건 초등학교 교육이나 요즘 초등학생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가 나올 때는 귀가 한 5배 정도는 커져서 이야기들을 엿듣곤 한다.
‘걱정도 팔자’ 클럽의 재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선생님과의 미묘한 관계를 제대로 컨트롤 못해서 아이의 초등학교 생활 전체를 망쳐버린 엄마 이야기. 1학년 때 만난 무서운 선생님 때문에 고학년까지 손톱 뜯어먹는 버릇이 생긴 아이 이야기 등등. 듣고 있자면 나는 또 괜히 불안하고 초초하다.
사실 지난 12월 나는 다시 이사를 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만의 갑작스러운 이사였다. 아이들은 다시 유치원을 옮겨야했다. 적응을 잘해주기만을 기도했다.
그런데 보름전 쯤 두달 다닌 유치원의 원장선생님께서 면담을 요청하셨다. 요지는 수민이가 걱정되신다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배려심, 집중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다. 학교에 가서 돌봄교실에 맡기는 것보다는 1:1 돌보미를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공들인 다고 들여서 키웠는데, 직장까지도 그만 두면서 아이의 안정에 신경을 썼는데,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사실 요즘 들어 수민이의 언행이 거칠어진 듯해 신경이 쓰이던 차였다.
나 때문인가? 문득 다시 나를 탓하는 질문이 솟았다. 내가 직장일을 시작한 시기와 묘하게 맞물린 수민이의 행동변화에 나는 다시 아득함을 느꼈다. 슬프고 묵직한 눈으로 아이를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정성과 희생을 몰라주는 것같은 아이에 대한 원망도 삐죽이 나왔다. 그게 자꾸 나를 찔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인들에게 물었고, 가족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물어보았다. 아이와 이야기도 조금 더 나누어 보았다. 물론 당장 눈앞에 해결책은 없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나는 다시 나에게 기대본다. 잘될거라는 무한긍정 파워 원적외선을 돌려본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걸어가다 보면 출구는 보이리라. 일단 첫번째로 내가 꺼내는 긍정 파워는 '믿음'이다. 아이에 대한 걱정하기 보다는 아이를 믿고, 장점을 더 키우려고 노력하자! 마음 속에 믿음 포스 불어넣기로 했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온우주가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지 않은가. 퐈이아!!!!)
사실 아이에게 지금 당장 달라지라고 다그치고 잔소리를 해봐야 수민이와 나 모두에게 상처만 는다는 것을 나는 매일 느낀다. 마침 내 눈에는 잔소리를 들을 때 청소년의 뇌가 멈춘다는 내용의 기사도 들어온다.(그렇지만, 느껴도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다. 가슴 속에 차오르는 '욱' 을 가라앉히기란 얼마나 힘들던가!!!!) 그 와중에 주변의 지인과 친정 엄마를 비롯한 많은 이들 역시 지금의 수민이는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용기를 주었다. 나는 일단 이 작은 변화에 기대본다. 사실 입학식에서 수민이는 제법 오래 앉아있었다. 물론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운동장에서 더 놀겠다며 땡깡을 부리다 입학식 후반부에 가족 모두는 눈물이 몰아치는 폭풍의 언덕을 넘나들고 말았지만 말이다.
아들은 요새 정말 듣기만 해도 구린내가 나는 이상한 엽기 노래를 입에 달고 산다. ‘아침마다 생각나는 후라이 X튀김. X사 밥에 비벼먹는 하이라이스’ 나의 아들이 초딩 월드에 입문하려고 한다는 전주곡이리라. (그런데 도대체 이런 노래의 원작자는 누구일까. 멜로디도 제법 멀쩡하다.) 신나서 엽기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말한다. 나는 너를 믿을 거야. 그게 네 엄마인 나의 지금 선택이야. 걱정보다는 그걸 하려고 노력할 거야. 물론 아직도 흔들리는 나의 눈에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