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성윤이는~ 성윤이는~ 자동차가 되고 싶어요.”



   “뭐야?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 박사겠지.”



   “으응 아니야, 자동차 되고 싶어요.”



    한사코 자동차가 되겠단다. 의지가 굳다. 아내는 “그래, 트랜스포머도 있으니까. 성윤이 훌륭한 자동차 되세요”라며 장단을 맞춰 주었다. (참고로 “엄마는 커서 뭐가 될 거 같냐”고 하니, 로봇 박사님이 될 거라고 했고, “아빠는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으니, 할아버지가 될 거라고 했다. 헉!)



    어찌 보면 자동차가 되겠다는 녀석의 포부가 그리 허무맹랑한 것도 아니다. 꼬마버스 타요는 승객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고 있고, 로보카 폴리는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짠’하고 나타나 사람들을 구하기 때문이다. 녀석, 언젠가 <트랜스포머>를 보게 되면 입이 쩍 벌어질 게다...



3bc84cdb5e01fd99dedbcd99d5279a00. » 생후 6개월, 녀석의 식탁 위에서 미니쿠퍼 자동차 한 대가 포착됐다.

    여느 남아처럼 녀석도 일찍이 자동차에 몰입했다. 언제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아내의 미니홈피 사진첩을 뒤져보았다. 생후 6개월 쯤에 처음으로 장난감 자동차가 등장했다. 그때쯤부터 녀석은 자동차를 좋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녀석의 자동차 사랑은 100여대가 넘는 장난감 자동차 개수로도 증명된다. 일반적인 소방차, 경찰차부터 명품 외제차 미니어처, 리모컨 자동차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친척 형아, 삼촌들한테서 받은 자동차도 있지만 대부분이 새로 산 것들이다. 물론 내가 사준 자동차는 없는 것 같다.



    장난감 자동차는 성장기의 녀석에겐 ‘삶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잠들기 전에 칭얼거릴 때 고사리 손에 자동차를 쥐어주자 녀석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어린이집에 처음 들어가서 불안해할 때도 녀석은 자동차를 손에 쥐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일찍이 국산 자동차 이름을 섭렵한 녀석은 요즘 수입 자동차에 푹 빠져있다. 아빠에겐 벤츠, 엄마에겐 폭스바겐 한 대씩을 사주겠다는 녀석의 말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지난주 어린이집 하굣길에 아내와 녀석은 닛산, 폭스바겐, 크라이슬러 매장을 들렀다고 했다. 꼬마 손님이 귀찮기도 했을 텐데 딜러 아저씨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녀석은 경외의 눈빛으로 아저씨의 설명에 귀기울였다고 했다. 그날 녀석은 수입자동차 카달로그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내가 대학원에 가야 했던 지난주 수요일, 녀석은 잠자기 전에 자동차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요즘 엄마와 그렇게 잠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급조했다.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에 가기로 했어. 그런데 가는 길이 너무 심심한 거야. 그래서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고속도로에서 경주를 하기로 했어. 벤츠가 먼저 시속 120으로 쌩하고 앞서갔어. 크라이슬러도 속도를 높여서 벤츠를 앞질렀지.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재밌게 달려갔지. 그러다가 중간에 안성휴게소가 나와서 쉬어가기로 했어. 배가 고파서 기름을 넣었어. 기름이 빵빵해야 잘 달릴 수 있거든. 둘은 휴게소에서 기름을 넣고 다시 출발했어. 그런데 견인차가 쌩하고 벤츠랑 크라이슬러를 앞질러 가는 거야. 얼마 안 가서 보니까 아우디랑 폭스바겐 자동차가 사고가 나 있었어. 경찰 아저씨도 출동했고. 벤츠가 경찰 아저씨한테 “아저씨, 사고가 왜 났어요?”하고 물어봤더니 아저씨는 “응. 아우디랑 폭스바겐이 경주를 하다가 사고가 났단다. 너희들도 고속도로에서 안전운전 해야 한단다”라고 말씀하셨어. 벤츠랑 크라이슬러는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어. 그뒤로 벤츠랑 크라이슬러는 규정속도를 지키면서 부산까지 무사하게 도착했단다.



    뭔가 교훈적인 해피엔딩을 자아내려고 머리를 굴렸다. 쌩구라였지만 반응은 좋았다. 녀석은 흐뭇해하며 잠이 들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구로동 롯데마트에 들렀다. 지난 어머니 칠순 때 촬영한 가족사진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진관은 국내 최대 장난감매장 토이저러스가 입점해있는 지하 1층에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녀석은 내 손을 잡아끌고 토이저러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모형 기차와 자동차 안에서 잠깐 놀더니만 더 안으로 들어가잔다. 나는 단호히 녀석을 안고 매장 밖으로 나왔고 녀석은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녀석을 일단 달래야 했다.



   “집에 자동차 많잖아. 사실은 엄마가 크라이슬러 자동차 사놨어.”



    새 장난감 자동차가 도착해있다는 말에 녀석은 울음을 뚝 그쳤다. 녀석의 네 번째 생일을 맞이해서 아내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크라이슬러 장난감 자동차는 실제로 배달돼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잠이 든 녀석은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아빠, 크라이슬러 어디 있어요?”



   “성윤이 생일이 6월7일이잖아. 두 밤만 자면 성윤이 앞에 나타날 거야. 기다리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아내는 녀석의 생일을 맞이해서 크라이슬러 C300, 그랜저 TG, 마티즈 장난감 자동차를 주문해놓았다. 이제 웬만한 명품 자동차는 모두 수집된 것 같다. 물산이 풍부한 시대, 이제 아빠가 제동을 걸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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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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