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정치인의 얘기다. 정치에 뜻이 있어 국회의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공천 심사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개인적으로는 큰 아픔이었는데 아내는 담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귀가해보니 엉엉 울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아이가 시험을 봤는데 여섯 개나 틀렸다는 게 통곡의 이유였다. 그 정치인은 아내에게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 검사의 얘기다. 중학교에 다니는 애가 있는데 아내는 남편이 술을 먹으면 12시를 넘겨서 오길 바란다고 했다. 일찍 마치고 귀가하면 아이와 마주치게 되는데, 내 새끼 예쁘다고 한 번 안아주고 쓰다듬으면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였다.




지난 주 서초동의 삼겹살집에서 검사 두 명과 기자 두 명이 자리를 함께 한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40대 부장검사는 “여자들이 나이 들면 강해지는 이유가 뭔지 아냐”고 물었다. 원래 그런 거 아니냐는 시크한 반응과 나이 들면 남성호르몬이 분비돼 그렇다는 과학적인 답변이 나왔지만 그가 생각하는 정답은 ‘애가 있어서’란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집착과 사랑이 ‘아줌마’를 강하게 만든다는 설명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10달이나 뱃속에 품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대하는 느낌이 달라. 그런데 남편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잖아. 그러니 남편이랑 아이는 비교가 안 되는 거죠.”




듣고 보니 그렇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더하면 남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생면부지의 남녀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도 수틀려서 헤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둘을 닮은 애마저 없으면 더욱.

엄마는 본능적으로 많은 것을 아이에게 걸기 때문에 아빠가 아무리 해도 엄마를 따라갈 수 없다, 애들은 엄마 편이다, 그래서 나이 들면 남자는 외로워진다 등등. 아저씨들의 처량한 한탄이 이어지자 난 태클을 걸었다.

“저도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아 아이 얼굴 보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1주일에 한 번씩 육아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요즘도 애한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타율이 반타작은 돼요. 저는 어려서부터 아이와 애착 관계를 맺어서 나중에 괜찮을 거 같은데요.”

“김 기자, 너무 자신만만해 하는데…우리 10년 뒤에 다시 만나서 얘기해봅시다. 후훗.”






녀석과 풍선놀이. 이거 반응 좋았다. » 녀석과 풍선놀이. 이거 반응 좋았다.




“육아일기요? 그런 걸 써요? 어디에요? 어떤 내용으로요?”라는 반응이 나오면 “저희 신문에서 운영하는 육아 사이트가 있는데요, 거기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라는 준비된 발언으로 베이비트리를 홍보하려 했지만 아저씨들은 그런 호기심마저 보이지 않은 채 ‘당신이나 나나 똑같다’고 결론 내버렸다.

이날은 밤 11시30분에 자리가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우리 신문사 노조가 초청했던  아빠놀이학교 교장 권오진 선생의 강의가 생각났다. 아빠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권 선생의 지론은, 아이와의 교감은 양보다 질이라는 것이다. 집에서 아이와 단 5분 동안만이라도 땀을 뻘뻘 흘리며 놀아주거나, 출장을 멀리 갔더라도 전화로 아이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원격놀이’도 좋다. 늦게 귀가했어도 자고 있는 아이를 쓰다듬어주고 “예쁘다”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아빠의 사랑을 느낀다는 말씀까지.




아이를 열 달 동안 뱃속에 품었던 엄마와 그때부터 멀찍이 떨어져있던 아빠. 모성과 부성이 확실히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차이를 순순히 인정하고 가정 내에서의 ‘은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건 곤란하다. 노후를 위해서라도 아빠들은 지금부터라도 아내와 아이에게 ‘투자’를 해야 한다. 사골국물에 혼자 밥 말아 먹으며 외로움을 곱씹기에는 남자의 인생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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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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