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집이 가까워질수록 내 눈은 창밖을 샅샅이 살핀다. 혹시 마중 나와 있을까. 아! 저기 눈에 익은 생물체가 아른거린다. 그렇다.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 성윤이다. 짜식, 오늘은 나와 있었구나. 버스에서 내리자 녀석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안긴다.
9월1일. 인사명령이 떨어졌다. ‘김태규, 사회 부문’. 검찰·법원을 담당하는 사회부 법조팀으로 4년 만에 돌아왔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인사였건만, 당장 현장으로 나가려니 오늘 같은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 ‘왕창육아의 시대’는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인가?
아빠 반갑다고 싱글벙글 웃는 녀석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읽어달란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책부터 꺼내드는 녀석이다. 그런데 내일부터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책을 읽어줄 여유가 없을 것이다. 녀석과 생이별하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가슴이 아려온다. “아빠 내일부터 법조팀으로 나가. 그러면 성윤이랑 놀 시간이 많이 줄어들 거야. 그래도 잘 지낼 수 있지?” “응~.”
미안한 마음에 1시간 동안 꼬박 책을 읽어주었다. 아내는 나의 인사 소식에 “우울하다. 오늘이 마지막으로 놀 수 있는 날”이라며 술 한 잔 하고 들어오겠단다. 녀석의 몸을 씻기고는 바로 침대에 눕혔다. 녀석은 뭐가 좋은지 잠자리에서도 싱글벙글이다. 참 많이 컸다. 2년 동안 많이 키웠다.
녀석을 재우려 침대에 같이 누웠다. 깜깜한 방 안에 조용히 누워있으니 맘이 더 울적해진다. 생경하지 않은 기분이다. 언제였더라... 그래, 군대 가기 전날도 이랬다. 꼭 군대 다시 가는 기분이다.
그 순간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울린다. 사회부 차장의 전화다. “야, 낯익은 번호가 떴으면 바로 전화를 받아야지, 전화도 안 받냐.” 애 목욕 시키는 중에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집안에서 내 휴대전화는 녀석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 항상 ‘매너모드’로 맞춰져있었다. 물론 퇴근 후에 시급을 요하는 전화가 걸려온 적도 없었다. 매일 내가 맡은 면 편집하고 퇴근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현장으로 나가는 내일부터는 이런 행태는 용납이 안 된다. 조간신문의 특성상, 현장기자의 전화기는 밤새도록 살아있어야 한다.
“인사 났는데 신고도 안 하냐. 사회부장한테 전화 드려.” 살짝 쫀다. 내가 좀 의전에 약하지만, 이런 감도 떨어진 모양이다.
적당한 양의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며 즐거웠던 지난 2년이었다. 나도, 아내도, 성윤이도 모두 행복했다. 이제 고강도의 업무와 예측불가능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바야흐로 ‘짬짬 육아’의 시기가 도래한 셈이다. 훌륭한 기자와 못난 기자, 훌륭한 아빠와 못난 아빠. 과연 어떤 조합이 이루어질까? 분발을 다짐하며 녀석에게 이 편지를 띄운다.
아들, 보아라.
» 지난 월요일, 휴가를 내어 실내 수영장을 찾아 "파이팅"을 외쳤다.
성윤아. 아빠는 이제 편집부 생활을 마치고 취재현장으로 돌아간다. 지난 2년, 참 보람찬 시간이었다. 나날이 쑥쑥 커가는 성윤이의 하루하루를 두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 성윤이가 건강하고 밝은 아이가 되는 데 아빠도 한 몫 했다는 자부심에 뿌듯하기도 하다. 이제 성윤이는 아빠보다는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야. 그런데 성윤이가 엄마한테 너무 심하게 장난을 걸어 걱정이구나. 엄마한테 몸을 던지고 안아 달라 조르고 이유 없이 떼쓰고... 성윤이도 많이 컸으니까 엄마를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아빠는 그래도 성윤이와의 끈끈한 애착관계를 믿는다. 아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항상 성윤이 생각한다는 점 명심하고 지금껏 그래왔듯 항상 즐겁게 재밌게 웃으며 컸으면 좋겠다. 언젠가 한글을 깨치게 되면 아빠가 쓰는 기사도 읽을 수 있겠지. 현안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도 대환영이다. 우리 앞으로 더 열심히 살자꾸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