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jpg

 

인터넷에서 '며느라기'라는 웹툰을 찾아서 보라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들었다.
'민사린'이란 여자가 '무구영'이란 남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후 시가와의 관계속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는데 연재 후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웹툰이다.
2017년 5월부터 올 해 1월까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연재되는 동안 리뷰와 댓글, 팔로워 수가
대단했단다.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 웹툰을 모니터로 보는 일이 불편하기도 해서 모처럼 생각난 김에
단행본을 주문했다. 나도 읽고 애들도 읽게 하자.. 는 생각이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이다....
라고만 생각한다면 완전히 틀렸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싼 무수한 인간관계를 내 삶으로
들이는 일이다. 나의 행복은 남편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남편의 가족과의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
물론 남편에게도 내 가족과의 관계가 중요한 요인이 된다. 우리끼리만 행복할 수는 절대 없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 물론 그렇게 사는 부부도 있긴 하다만 쉬운 일 아니다)

결혼과 동시에 여자에게는 시가 식구를 바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친밀하고 따듯한
관계를 만들 것을,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할 것을 요구받는다. 어제까지 몰랐던 사람과
오늘 같이 사이좋게 부엌일을 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이런 요구가 남자에게는 그닥 강하게 요청되지 않는다)

주인공 '민사린'은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애 쓴다.
그런데 민사린이 시가에서 받는 기대와 시가 식구들이 원하는 행동 방식대로 애쓰는 동안
조금씩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관계들, 일 들 속에
남편의 모습도 차츰 낮설어진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명절 전날부터 시가에 가서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제사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치루고 간신히
집에 돌아온 며느리인데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한다.
애써서 저녁 따로 차리지 말고 해 놓은 음식 많으니 여기 와서 같이 먹자는 것이다.
곤해서 누운 아내에게 눈치없는 남편은 또 저녁 먹으러 본가에 가자고 한다.
그 저녁은 누가 차리고 누가 치울까. 내 집에서 간단하게 차려 먹는 것과 다시 어른들과 같이
식사할 저녁상을 차리고 물리고 치우는 일 중 어떤 일이 더 편하고 좋을까.
물어볼 것도 없다.

전 날 장보고, 며느리 일어나기 전 부터 일어나 먼저 음식 준비를 시작하고 종일 같이 일을 했던
시어머니는 저녁 만큼은 아들 내외와 외식을 하고 싶다고 한다. 손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만큼
고단한 그녀에게 완고한 남편은 냉장고에 넘치는 음식, 차리기만 하면 되는데 뭐 하러 돈 쓰러
나가냐고 타박한다.
냉장고에 넘치는 음식은 누가 차리고 누가 치우나. 푸짐한 저녁상은 가만히 있으면 내 앞에
오나? 마음 상한 아내속도 모르고 남편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 "리모콘 좀 가져와" 한다.

시가에 안 간다는 아내를 두고 혼자 본가로 간 '무구영'을 본 여동생은, 그런 오빠를 보고
자기 남편도 다시 저녁 먹으러 시가에 가자고 할까봐 마음이 불편해진다.
딸 자식은 붙들면서 며느리가 일찍 친정에 가려는 것은 못마땅한 시어머니, 자기는 그렇게
안 하면서 직장 다니는 새 언니가 엄마 생신에 아침상을 차려주기를 바라는 시누이,
본인이야 말로 제 부모와 다정한 얘기도 나누지 않으면서 아내에게는 시어머니와 같이
쇼핑하고, 찜질방 다니고, 수시로 어울리며 유쾌한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남편..
사위가 해외 출장가는 것은 안스러워서 보약을 해줘야겠다면서 며느리가 해외 출장 간다는 말에는
우리 아들 밥은 누가 해주냐며 눈을 똥그랗게 뜨는 시부모까지..
읽다보면 정말 고구마 백개의 답답함이 가슴을 누른다.
내가 겪어 온 결혼 생활과 다르긴 하지만,  내가 겪어 온 감정들과 많이 겹쳤다. 읽다보면
모든 며느리들이 비슷한 감정이 들 것이다.
'며느라기'는 결혼생활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가부장적 문화가 끼치는 폭력, 친밀함 속에 숨어 있는
무례함 뿐 만 아니라 남, 녀 차별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 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보면 모두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누구 하나 대놓고 나쁜 사람은 안 나온다.
그러나 모두가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한다.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나는 아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내 신혼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싶고, 결혼생활에서 내가 느꼈던 어려움도 나누고 싶고
 엄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 이라고 생각해서 건넸다.
장르를 불문하고 만화는 다 좋아하는 아들은 덥석 받아 내 앞에서 읽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휙휙 책장을 넘기는가 했는데 갑자기
"엄마, 엄마는 절대 이런 시어머니 되면 안되요!!" 하며 부릅뜬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다.

"....왜? 니 마누라 고생시킬까봐?"
"네!!!!" (1초라도 망설이다가 대답할것이지 아주 빛의 속도로 되받아 치는구나!!!)
"만약 이렇게 하신다면 저를 밟고 지나가셔야 할 거예요"
"뭐라고!!!!"
아들은 지금 당장 내가 지 마누라를 괴롭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글이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단호한 표정을 쏘아대고 있었다.

아이쿠야.. 이런 녀석 같으니...

엄마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해를 해달라고, 결혼 생활에서 여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좀 느껴보라고
책을 건넸더니 언제 데려올지 모르는 미래의 지 마누라를 먼저 생각하는구나.
아이고..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겨우 열여섯살에 미래의 마누라를 걱정해??
이녀석 정말 나중에 아주 볼만하겠네...ㅜㅜ

"야!! 언제 결혼할지도 모르면서, 어떤 여자를 만날지도 모르면서 벌써 마누라를 챙기는건
너무하잖아. 우선 니 엄마가 겪어온 시절들을 좀 이해하려고 해야지"
"아무튼요, 이런 시어머니는 절대 안되요!!"

아들은 다 읽고 나더니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지만, '민사린'의 형님같은 사람은
(민사린의 형님은 맏며느리지만 시가의 제사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오고,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직장 다니는 동서가 차렸다는 말에 자식들은 다 뭐 하고 갓 결혼한
동서 혼자 그 힘든 일을 하게 했냐고, 무려 시어머니와 시이모님 등 시가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짚고 넘어가는 케릭터다. 첫 아이 출산 장면에 남편이 있어야 한다, 없어야
한다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시어른들 앞에서 그건 우리가 알아서 결정하겠노라고 딱 부러지게
얘기하는 며느리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당차고 멋진 사람이겠지만 전체 관계에서 보면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란다.
자기야 제사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여겨서 안 올 수 있지만 그만큼 민사린이 고생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만화책 뒷 편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네티즌들의 댓글 퍼레이드를 읽더니
몹시 표정이 안 좋아졌다.

"댓글들 읽어보니 어때? 의견들이 다양하지?"
"이건 완전 꼴페미들 댓글인데요?"
"뭐? 꼴페미?"
"네. 다들 무구영만 잘못했다고 욕 하잖아요. 한남들 어쩌고 하면서요"

 댓글중에는 남편이 잘못이라는 글이 많았다. 이래서 한남들한테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댓들도
있었다. 가부장에의 모순, 여자들에게 더 불합리한 결혼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이 만화에 공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많았으므로 당연히 댓글은 남자들에 대한 성토가
많았다. 그것이 필규를 자극한 모양이다.

" 남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서 그래, 사실 결혼생활에서 아내와 시가 식구를 이어주는 게 남편이야.

남편이 중간에서 적절하게 선을 그어주고, 잘 설명해주고, 정리를 해야 아내들이 괜한 오해 안 받고
결혼 생활이 덜 힘들어지는 거라구...
아빠도 그걸 잘 못해서 엄마가 신혼초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
"그래도 이렇게 혐오 표현으로 도배를 해 버리면 이 책 전체가 남혐을 조장하는 책으로 읽힐 수
있다구요. 이런 댓글을 실어놓은걸로 봐서 저는 이 책이 남자를 혐오하는 책으로 보이기를 의도
했던 거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어요"
아들은 격앙되어 있었다.

아이고... 이게 아닌데...

최근들어 아들은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노골적인 적개심을 종종 드러낸다.
스마트폰으로 어떤 기사와 댓글들을 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아들의 입에서 나온 '꼴페미'라는
말은 나를 화 나게 했다. 어떤 의미로 여기고 있는지, 그런 말들이 왜 나오게 됬는지, 그 사이에
여자들이 겪고 느껴온 차별들은 정말 없다고 생각하는지, 혐오를 퍼뜨리는 세력들이 진짜
누구인지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았지만 그런 주제로 아들과 토론하기에 아들은 아직 어리고
충분하 정보와 공부도 안 되어있고, 그런 미숙한 토론으로 아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나는 만화 내용에만 한정해서 부드럽게 이야기를 마쳤다.

내 품안의 자식이지만, 이제 내 품 밖의 생각과 주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들이 커 감에 따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도 관계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나도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
이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어봐라. 좀 더 배우고, 좀 더 생각이 자란 후에 ..
그때는 네가 꾸며갈 가정생활과 엄마 아빠의 결혼생활과, 이 땅에 사는 무수한 여자들이 겪고 있는
모순들이 더 잘 보이게 되길 기대한다.

곧 추석이다.
이 땅의 모든 며느리들이 마음 안 다치고, 행복할 수 있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나 저나...
이담에 며느리는 꼭 데려올건가보지?
기대할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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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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