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여름 밤이면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끔 동네를 들었다 놓았다.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오신 날이면 어머니의 목소리는 달구어진 프라이 팬에 기름이 타 들어가는 듯 했다. 그럴 때면 난 속으로 아버지 편을 들었다. 술에 취하신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남달랐으니까. 여름이면 어린 마음에 창문을 슬쩍 쳐다보기도 했다. 문이라도 좀 닫고 싸우시지. 사실 싸움이랄 것도 없었다. 어머니 앞에서는 항상 작아지시는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어머니의 쓴 소리에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술이 원수라는 어머니의 말씀, 난 그럴 때면 속으로 생각했다. 하느님 아버지, 왜 인간이 술을 발명하게 만드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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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30년이 지난 지금 하느님에 대한 다른 원망 하나가 생겼다. 하느님 아버지, 왜 휴대폰을 인간이 발견하도록 냅두셨나요, 란 원망. 조금 더 원망을 해 본다.


하느님, 그거 아세요? 지난해 수학능력시험에서 여학생의 국어 영어 수학 평균이 남학생 평균을 앞섰다는 거. 수학 평균까지 넘겨준 건 처음이랍니다. 제 아이는 남자 아이거든요. 휴대폰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으시면 저 나중에 논문 쓸 겁니다. 휴대폰 게임의 보급률과 남학생들의 성적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요. 연도별 PC방 개점 수와 남학생들의 성적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사할 겁니다. 


 한 언론사 선배가 그랬다. 서류 전형을 했더니만 여학생이 많았다고. 그리고 필기시험을 보고 나니 압도적으로 여학생이 많았다고. 참 그러고 보면 기자들만큼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엄마들은 모두 다 아는 사실. 선배, 그럴 수밖에 없어요. 남자 아이들은 PC방에서도 게임하고 휴대폰으로도 게임하니까요. 그랬더니 선배는 여학생도 휴대폰이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폈다. 많은 여학생은 휴대폰으로도 카카 오톡하거나 페이스북도 메신저로 대화합니다. 쌓인 게 많으면 괜한 사람에게 화풀이다. 선배,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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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또 방에 들어간 아이가 소리가 없다. 난 아이를 키우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대개 아이를 키우면 부모의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에 공감을 한다던데 난 어머니의 분노에 공감이 갔다. 다만 분노의 대상이 어머니는 아버지였고, 난 아이였을 뿐. 조용한 아이의 방문을 빼곰히 열어 보았다. 아이의 까만 정수리가 보였다. 머리에는 영어 듣기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 사 준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그 헤드폰을 보는 순간 다짐했다. 인터넷 강의 듣겠다는 말에 아이패드를 사주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다짐. 문을 열고 자신을 한참 쳐다보아도 눈치를 못 채는 저 집중력. 핸드폰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선 레이저 빔이 나왔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마징가 제트의 눈이 생각났다.
 얼마 전엔 아이가 밤늦게까지 휴대폰 영상을 보다가 그 다음날 늦잠을 잤다. 결국 허겁지겁 뛰어나갔지만 결국 학교에 지각을 했다. 일부러 깨우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변화하기를 바랐으니까. 좋은 부모는 기다려주는 부모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기다렸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밤늦게까지 휴대폰을 보는 일은 계속됐다. 그리고 정리했다. 난 기다려주는 부모가 될 만한 성품이 없다고. 인정. 기다려 주다가 화병으로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시계를 바라봤다. 밤 10시가 넘어갔다. 10시면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이다. 아이 키가 걱정 된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시는 정성까지 보이시고 몇 가지 당부를 하셨다. 병원에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많이 보지 말라는 조언을 들으셨다고, 그러면서 키가 크는 것과 잠을 자는 것과는 연관이 깊다는 말씀까지 덧붙이셨다.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손주 키 걱정을 하시는 할아버지를 두었건만, 저 아이는 휴대폰을 바라보는데다가 아예 잠을 잘 생각도 안 했다. 시간은 10분이 흘러갔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다시 시간이 10분이 지났다. 그리고 결국은 터졌다.
 “강! 민! 호!”
 그런데, 대답이 없다. 순간 아이의 까만 정수리와 레이저 눈빛이 떠올랐다. 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 크기는 두 배 더 크게.
“강! 민! 호!”
이번엔 방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가 뛰쳐나왔다. 그러더니 거실에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는 내 옆에 섰다. 난 모니터만 바라봤다. 흔들리는 아이 눈빛을 보면 내 마음도 흔들리니까.
“몇 시지?”
“뭐?”
아이는 대답을 피했다. 목소리 톤을 높였다.
“몇 시냐고, 말을 못 알아들어?”
 평소 물을 때엔 종결어미 “~니?”를 붙이지만 당시 내 말투는 사회부 기자시절로 돌아갔다. 나름 혹독한 사회부 기자생활을 했던 경험은 반대로 상대를 어떻게 해야 무섭게 혼내는지도 배우는 시간이었다.
“10시 20분.”
  “얼마 전에 지각했지?”
… …
“얼마 전에 지각 했냐고 물었잖아!”
목소리를 더 높였다. 아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왜 지각했지?”
“늦게까지 핸드폰 보느라…”
“지금은 잠잘 시간인데 왜 잠을 안 자지?”
“핸드폰 보느라”
아이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손가락으로 거실의 한 구석을 가리켰다.
“저 문 열어봐.”
아이는 이례적으로 내 말을 따랐다. 그리고 신속하게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갔다.
“문 열었어.”
“거기 망치 있을 거야.”
“응. 그런데 왜?”
“가져와.”
“뭐?”
“가져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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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아이는 별 말없이 망치를 가져왔다. 망치를 거실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망치 옆에 아이 휴대폰을 놓았다. 아이는 나란히 놓인 망치와 휴대폰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래?”
“한 번만 봐주라.”
“그러니까 어떻게 할 거냐고!”
“숙제 다 하고 핸드폰 볼게.”
숙제를 먼저 하겠다고? 이 아이에겐 심리상담 재능이 있나, 어떻게 상대 마음을 잘 읽어낼까? 올라왔던 화가 반쯤 내려갔다.
“잠은 어떻게 할건데?”
“시간 맞춰 잘게.”
반쯤 내려간 화는 더 작아져 갔다.
“그 약속 안 지키면 어떻게 할래?”
“그 때에는 핸드폰 없앨게.”
아이의 마지막 다짐의 목소리에 화는 모두 사라졌다. 시종일관 노트북을 바라본 난 비로소 아이 얼굴을 바라봤다. 아이의 볼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망울은 흔들렸다.
“숙제 먼저 하고 늦게 잠 안 자겠다고?”
어느새 내 목소리는 부드럽게 변했다. 아이는 부드럽게 변한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흘릴 때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위 아래로 고개만 여러 번 끄덕일 뿐이었다. 아이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말에 아이는 소리 내 울었다.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으니 놀란 듯 했다.
때마침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아이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수화기에 대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민호야 무슨 일이니. 어머니는 큰 소리로 아이에게 물었지만 아이는 다만 흐느끼는 소리만 어머니께 들려주었다. 전화기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당장 애비 전화 바꿔라!”
아이는 전화기를 내 손에 안겨주었다. 30년 전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재현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맥락도 모르시는 어머니의 꾸지람이 아니었다. 집안의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이며 부엌 창문까지 모두 활짝 열려있었다. 젠. 장. 아이는 30년 뒤에 아빠는 자기를 혼낼 때 창문을 열어놓고 소리를 질렀다고 불평을 해도 할 말이 없었다.
 *
“민호야, 아빠 대학원 졸업식인데 같이 가자.”
 며칠 전 아이에게 소리를 질러 미안해 맛있는 걸 사줄 기회를 찾던 터였는데 마침 대학원 졸업식이 다가 오는 주말이었다.
“거기 가면 뭐가 좋은데?”
아빠가 부탁을 할 때면 치고 들어오는 협상력.
“맛있는 거 사줄게.”
“뭐?”
“초밥.”
아이는 초밥을 참 좋아했다.
“또?”
“너가 먹고 싶은 거. 햄버거, 콜라, 이런 것도 많으니까.”
평소에 잘 사주지 않는 메뉴 말에 아이는 졸업식을 따라 나섰다. 아이가 달리 느껴졌다. 아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작은 아이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대학 교정에 들어서니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졸업식에 아내의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꽃다발을 부러워한 적은 없었지만, 꽃다발을 건네주는 가족의 손길이 떠올라 옆을 바라봤다. 내 가슴 높이보다 작은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식장엔 생각보다 많은 가족들이 와서 장소 비좁아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행정직원의 말이 잇따랐다. 졸업식이 시작되자 이런 저런 이유로 수상을 하는 졸업생들은 대학원장님과 악수를 나누고 상패를 받은 뒤 객석을 바라봤다. 그러면 가족들은 핸드폰으로 사진기로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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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내 이름이 호명됐다. 대학원장님과 악수를 나누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대학원장님은 으레 객석으로 몸을 돌렸다.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수상을 하면 가족들은 연단 바로 앞까지 나와 사진을 찍지만 내 앞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대학원장님의 질문에 아이가 앉아 있는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바라봐줄 거라는 상상이 순간 들었다. 그러면서 아빠의 졸업을 보면서 아이가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과 그리고 때로는 쉬어가야 할 때에도 있지만 도전을 하고 굴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아이가 직접 사진은 찍지 않더라도 손이라도 흔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쪽을 보면 됩니까?”
대학원장님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어디 즈음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을 거라는 생각을 하시며 포즈를 취하셨다.
아이는 손을 흔들지 않았다. 그리고 감동의 눈망울도 보여주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아이의 눈코입이 아니라 아이의 정수리가 보였다. 까만 정수리. 짧지만 꽤 오래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느님 아버지, 제발 핸드폰 좀 없애주세요. 그러면 저 정말 열심히 성당 다닐게요..

 

 

휴대폰 전쟁.png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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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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